주간동아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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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밀어내기 … 총 맞고 피 흘렸다

서해도발 DJ ‘4대 수칙’ 명분 심각한 훼손… 국토 방위·긴장 완화 軍 딜레마 확실히 정리해야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입력2004-10-18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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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모한 밀어내기 … 총 맞고 피 흘렸다
    6월29일 오전 9시54분 북한 경비정은 서해안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NL)을 지나 남쪽 3마일까지 침범해 들어왔다. 한국측 해군은 357호, 358호 등 2척의 고속경비정을 출동시켰다. 2척의 한국 경비정은 지난 99년 6월의 연평해전 때 확립되었던 밀어내기 작전을 시도하기 위해 북한 경비정에게 다가섰다. 돌아가라는 경고방송을 했다.

    오전 10시30분 돌연 북한 경비정은 85mm 함포를 357호에 기습 발사했다. 포탄은 357호의 조타실에 명중했다. 조타실에 있던 윤영하 정장(대위), 서후원 하사가 전사했고 한상국 중사는 실종됐다. 357호는 더 이상 조종이 되지 않았다. 화염에 휩싸인 채 제자리에서 오른쪽으로 빙빙 돌기만 했다. 이후 약 1000발의 탄약을 모두 소진한 총격전 끝에 357호의 중간, 후방 포대에 있던 조형천 황도현 하사가 전사했다. 조타실의 한 병사는 결국 다리를 절단했고 다른 전투원은 왼손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이날 전투로 357호 승조원 24명이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됐다. 배도 침몰했다. 357호를 선제공격한 북한 경비정은 북측으로 돌아갔다. 북한측 사상자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적이 먼저 공격해야만 대응공격 가능

    7월1일 국립묘지에 4명의 전사자를 안장한뒤 군과 정치권에서 본격적인 ‘복기’가 이뤄지고 있다. 이날 전투는 ‘패배’로 귀결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한 패배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군 통수방식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해상도발은 6월만 되면 반복되는 경향이 있었다. 99년 6월 연평해전을 비롯해 2001년 6월에도 북한 상선이 제주해협을 침범했고 동-서해 NLL을 월경했다. 올 6월에도 네 차례나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 상태였다.



    6월29일 침범한 북한 경비정은 만재톤수 215톤, 50명 탑승, 85mm포 무장 규모였다. 연평해전 때보다 화력이 월등히 좋은 배였다. 그런데 이를 막기 위해 출격시킨 한국측 경비정 357호, 358호는 156톤, 28명 탑승, 40mm포로 화력이 북한측에 훨씬 못 미쳤다. 북한 경비정과 상대가 될 수 있는 한국측 초계함(1200톤, 76mm포)은 전투현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6월만 되면 반복되는 북한의 도발 경향, 최근의 잦은 침범, 보강된 북측 전투능력을 고려했을 때 해군력의 증강배치가 필요했는데 해군 수뇌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휩싸이게 됐다.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은 “처음부터 초계함을 내보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해 NLL 부근 한국 해군은 적이 먼저 공격해 올 경우에만 대응공격하는 교전수칙에 따른다. 이 때문에 한국군측은 북한 함정에 충돌해 NLL 밖으로 밀어내는 차단기동이라는 특이한 전술을 구사한다. 한국군이 차단기동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군 통수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이 99년 지시한 4대 수칙 때문이었다. 4대 수칙은 북방한계선을 지킬 것, 선제공격하지 말 것, 상대가 발사하면 격퇴할 것, 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 것 등이다.

    격침된 357호도 밀어내기를 위해 북한 함정에 다가섰다가 치명적인 포 사격을 받았다. 따라서 이번 패배는 한국 해군의 차단기동 전술이 얼마나 무모한 군사작전인지 뼈아프게 보여준 사례가 됐다.

    무모한 밀어내기 … 총 맞고 피 흘렸다
    KF16 전투기 2대는 이날 오전 10시38분쯤 교전현장에 도착했다. 357호를 격침시킨 북한 경비정에 보복공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군측은 의도적으로 공격을 피했다. 이남신 합참의장은 “전면전으로 확전되는 것을 우려해 격침시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역시 김대통령의 4대 수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6월29일의 패배는 한국 해군 차단기동전술의 치명적 약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차단기동전술의 상위개념이며 국토 방위의 근본 원칙으로 여겨졌던 4대 수칙은 남북한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줄여온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4대 수칙도 그 명분과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받게 됐다. 적함이 자국의 영해를 무단침입해 휘젓고 다녀도 적함의 포신에서 연기가 날 때까지 방치해야 하는 전술, 자국 군인 수십명을 사상시킨 적함을 눈앞에서 보고도 보복하지 못하도록 한 전술로 과연 ‘평화’가 지켜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단기동전술과 4대 수칙 이외, 국토 방위와 긴장 완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모두 만족시켜 주는 대안이 있을까.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군 수뇌부의 고민은 여기서 절정에 이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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