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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벼랑끝 노무현

‘재경선론’ 약인가, 독인가

노무현식 개혁정치 “한번 더 기회 달라” 시간벌기… 책임전가 시비 속 승리까진 ‘산 넘어 산’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재경선론’ 약인가, 독인가

‘재경선론’ 약인가, 독인가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8·8 재보선 후 후보 재경선’이라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승부수를 보는 당내 시각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노후보의 이날 발언은 ‘사즉생’(死卽生)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기회를 한 번 더 달라”는 말이다. 후보로 선출된 지 한 달 만에 치른 지방선거는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 8·8 재보선 때까지 남은 한 달여 기간 동안 당 내외의 의견을 수렴, ‘노무현식 정치’로 국민들로부터 새롭게 심판받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방선거 참패와 지지율 하락에 따른 국면전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런 여러 가지 문제를 ‘재보선 후’라는 하나의 해법으로 묶어버린 것이란 해석도 뒤따른다. 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일정한 ‘시간’도 벌 수 있다. 그 경우 재경선론은 약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동교동계를 비롯한 일부 비주류가 이를 거부할 경우다. 그 경우 노후보로서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충청권과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은 노후보 주장을 무시하고 즉각적인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 소집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설사 비주류가 수용하더라도 재보궐선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노후보로서는 외통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노후보의 선택이 독이 되는 경우다.

당초 노후보 진영은 이 같은 벼랑끝 전술을 생각지 않은 듯했다. 후보교체론이 밑바닥에서 조금씩 흘러다녔지만 “30%대의 국민지지를 받는 후보 교체가 가능하냐”는 자신감이 친노(親盧) 인사들 주변을 감쌌다.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쏟아진 지난 6월13일 오후 7시경, 당사를 나선 노후보는 김원기 정치고문과 함께 서울 마포에 있는 ‘쫛쫛사철탕’집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두 인사는 “당분간 후보로서의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뒤로 물러나 당의 입장 정리를 기다리자”는 여유로운 대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16일 오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등산을 하고 있던 노후보에게 “흔들기가 심상치 않다”는 급박한 사정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또 동아일보 등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대폭 하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새롭게 세웠다는 것.

상황논리에 밀린 노후보의 선택이지만 8·8 재보선 후 후보 재경선론은 지방선거 패인에 대한 분석과 상황 타개를 위한 각종 아이디어가 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노후보측은 당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가 선거 패배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부인하지 않는다. 한화갑 대표 등 지도부와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후보측의 한 관계자는 “후보로 선출된 후 한동안 당의 재정적인 지원이 없었다”며 그간의 고통을 피력했다. 대선후보로서의 역할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를 마련하는 데도 힘이 들었다는 것.

책임전가라는 오해를 우려해 입에 올리지는 않지만 노후보측은 서울시장과 경기지사 후보, 그리고 상당수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이 잘못됐다고 은연중 지적한다. 이 때문에 친노 진영에서는 8·8 재보선에서는 상향식 공천을 일시 보류, 노후보 중심의 공천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선거 패배 때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아들들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자기반성과 혁신은 외면한 부도덕한 언행이 민심이반을 부채질했다”는 판단에 따라 도덕성 재무장론도 거론한다.

노후보의 재경선론은 결국 이런 반성 위에서 나온 셈이다. 그렇지만 관문을 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위기돌파책이 자기 발목을 묶는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10여 군데 이상 벌어질 재보선은 이미 대선 전초전으로 그 성격이 규정된 상태. 한나라당은 당력을 총결집해 압승을 노리고 있다. 여기에 맞서 노후보는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맞설 계획이다.

그렇지만 지방선거를 거치며 확인된 민심에 짓눌린 정치 지망생들이 민주당의 부름을 흔쾌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 설사 이 벽을 넘더라도 그동안 관행으로 굳어진 계파 나눠 먹기식 공천 행태가 또 다른 부담으로 등장한다. 김상현 김중권 남궁진 진념 임창열 경기지사 등 당 내외에서 서성거리는 중진들은 이미 자천타천 출마를 강조하고 있는 상태다. 김상현 고문의 경우 광주(북갑) 출마를 비공식적으로 선언한 상태. 아직 굳어지지 못한 노후보의 카리스마가 이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은 의문이다. 아직까지 노후보의 정체성과 리더십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중진들의 자세도 교정 대상이다. 당이 일사불란한 대오를 형성해도 재보선 승리를 답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각종 난제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형국이다.

이런 부담에도 쇄신파는 노후보의 입장에 긍정적이다. “노후보가 당의 전면에 나서 당 쇄신과 DJ와의 절연 등 노무현식 개혁정치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설사 위험한 선택이라도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쇄신파 K의원은 “다른 대안이 있느냐”며 차선의 선택임을 인정했다.

그렇지만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는 노후보의 이 같은 제안을 일단 거부했다. “당장 사퇴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그 뒤에 ‘제3후보 영입론’ 등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특히 지방선거 이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 이회창 지지도가 역전되는 등 ‘노풍’(盧風)의 약화 추세가 뚜렷해지자 비주류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친노 대 반노세력의 파워게임 와중에 노후보는 스스로 양날의 칼날에 섰다.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면 재보선 때까지 대통령 후보로서의 위상이 보장되지만, 실패할 경우 당은 더 큰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주간동아 340호 (p22~23)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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