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2

2002.05.03

해학과 인정이 한 상에 가득!

  • 송수권

    입력2004-09-22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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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학과 인정이 한 상에 가득!
    안동 헛제삿밥과 진주 헛제삿밥은 빼놓을 수 없는 선비들의 밤참거리로 쌍을 이루던 허드레 음식이다. 이 때문에 헛제삿밥집 ‘까치구멍집’은 안동을 대표하는 명물 향토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까치구멍집이란 옛 건축 양식에서 따온 말. 굴뚝이 따로 없고, 부엌 연기가 방벽을 거쳐 천장을 통해 지붕의 양쪽 구멍으로 흐르게 돼 있으며, 봉창이 없는 게 특징이다. ‘까치구멍집’은 까치구멍식으로 지어졌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임하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안동댐 민속촌으로 옮겼다가 지난해 봄 다시 안동댐 입구로 옮겼다.

    한밤중 걸쭉하게 헛제삿밥을 한 상 차려 먹고 안동댐을 산책해도 좋고, 탈춤 마당놀이나 세계유교문화축제(10월31일까지)에 참가해 보는 것도 안동 선비문화를 이해하는 데 색다른 흥바람이 있을 듯하다.

    헛제삿밥은 제사 음식이 그렇듯 고춧가루와 마늘 등 자극적인 양념을 쓰지 않는다. 대신 깨소금, 참기름, 토속 간장 등으로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헛제삿밥엔 또 탕, 반 그리고 그 유명한 간고등어, 돔배기(상어), 각종 나물이 오른다. 어물과 육류는 싸리나무 꼬치에 끼워 산적을 만든다. 진주 헛제삿밥과의 차이는 산적꼬치가 많다는 점이며, 탕은 산적을 하고 남은 고기와 무를 넣어 토종 간장으로 맛을 낸다.

    ‘까치구멍집’(054-821-1056)의 헛제삿밥 상물림은 상단 오른쪽이 상어적(돔배기포)이고, 고등어, 쇠고기, 동태, 북어 산적과 호박전, 두부전 등이 왼쪽에 차려진다. 유독 붉은색 음식은 안동 식혜다. 안동 식혜는 겨울철 별식이기도 하지만, 새콤 달콤 매콤하여 헛제삿밥의 건조한 맛을 깊은 맛으로 끌어올리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구실을 한다. 남도 3합처럼 음식 궁합을 살리면서도 안동 음식의 전통 손맛을 낸다. 밥에다 무, 고춧가루, 생강즙 등을 넣고 엿기름물로 발효시켜 무의 시원한 맛과 고춧가루의 맵고 달큰한 맛이 어우러진 이 식혜는 진주 헛제삿밥과 구별되는 특별한 꾸미다.

    해학과 인정이 한 상에 가득!
    우리 음식엔 이처럼 악의 없는 거짓음식 치레도 있다. 선비들이 밤에 글을 읽다 배가 출출하면 이웃과 아랫것들을 속임수로 몰아넣고 제삿밥 핑계를 대며 해먹었던 것이 헛제삿밥이다. ‘까치구멍집’ 주인에 따르면 ‘지난번 제사 때 남은 음식’의 뒤풀이로 비빔밥이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하기야 비빔밥이나 한솥밥의 유래를 여기서 찾는 이들도 있다. 하고많은 제사 중 4대 봉사는 예사고, 직계 조상들의 묘소를 찾는 시제(時祭)까지 친다면 연간 20여일은 제사에 매달린다. 이처럼 기제사나 차례 뒤 먹는 뒤풀이 음복으로 제상에 올렸던 나물, 탕채 등을 밥에 비벼 먹는다. 그러니까 이 제삿밥을 제사가 없는 날 숨어 차리는 게 곧 헛제삿밥인 셈이다. 때문에 양반골 안동에서 헛제삿밥 상차림이 나타난 것에 절로 수긍이 간다. 하회탈 놀음이 벌어지거나 남사당패(줄패) 꼭두쇠가 양반가의 댓돌 아래 엎드려 곰뱅이를 트는 날 들병이란 아웃사이더 여성이 끼어들었듯, 헛제삿밥 또한 아웃사이더로서의 해학을 지닌 하회탈과 함께 웃음을 자아내는 먹을거리라 할 수 있다.



    탈마당에서 먹는 밤참으로는 유명한 ‘건진국수’를 든다. 이는 밀가루 반죽을 홍두깨로 얇게 저며낸 국수를 삶아 찬물에 ‘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안동 지방의 옛 가정에서 즐기던 음식이다. 정선ㆍ영월 지방의 콧등치기국수(감자옹심) 또는 봉평 지방의 올챙이국수에 버금가는 향토 음식이기도 하다.

    탈마당에 나오는 음식이야 으레 ‘건진국수’였겠지만, 선비들이 야심한 밤 그윽한 서당방에 숨어들어 들병이나 꼬셔다 놓고 먹었음직한 헛제삿밥엔 옛 안동골의 훈훈한 효심과 인정미가 배어 있다.

    그러나 전통과 거리가 먼 ‘안동찜닭’이 헛제삿밥 대신 영주 지방이나 죽령마루의 ‘죽령주막’(대표 안정자ㆍ054-638-6151)에까지 번진 걸 보면 염량세태(炎凉世態)의 유행을 거듭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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