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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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솜씨 빌려 만든 ‘신들의 집’

  • < 노성두/ 미술사가·서울대 미학과 강사 > nohshin@kornet.net

    입력2004-09-21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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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솜씨 빌려 만든 ‘신들의 집’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죽 거슬러 올라가면 맨 끄트머리에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나온다. 가이아는 모든 신들의 어머니다. 아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다. 거대한 밤하늘 우라노스를 제 품에서 어영차 뽑아냈을 정도이니 엉덩이도 엄청 컸을 것이다. 가이아가 낳은 딸 가운데 큰 뱀 피톤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피톤이 두 살배기 아기가 쏜 화살을 맞고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기 이름은 아폴론. 이때부터 도시 이름이 델피로 바뀌게 된다. 그 전까지는 영험한 괴물뱀 피톤을 따서 피토라고 부르던 곳이었다.

    델피는 산세가 험준하다. 멀리 이테아 만을 감싸안은 파르나소스의 산악이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며 어깨를 거들먹거린다. 사방을 병풍처럼 에워싼 돌산에는 시커먼 솔숲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다. 솔숲은 언제부터 뿌리를 내렸을까? 눈먼 시인 호메로스도 이곳의 청정한 솔 향기를 맡았을 것이다.

    “눈 덮인 파르나소스의 발치에 크리사.

    서쪽 고개자락을 넘어서면

    벼랑이 허공에 달렸고



    아래는 까마득한 계곡이 숨가쁘게 달아나네.”

    (호메로스, ‘아폴론 송가’, 282)

    이처럼 누울 자리 한 뼘 없는 곳, 해발 500m의 산 벼랑에 델피가 들어섰다. 또 가파른 비탈을 타고 성역이 두 틀이나 들어섰다. 위쪽은 신탁으로 유명한 아폴론 성역이고 아래쪽은 아테나 성역이다. ‘파르나소스 산악의 발치 한 모퉁이에 달라붙은 천혜의 요새도시’라는 헬리오도로스의 말이 실감난다.

    벼랑 위쪽 아폴론 성역은 다 무너지고 난 폐허만으로도 웅장하다. 이곳 아폴론 신전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인들의 말씀을 새겼다고 한다.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탈레스부터 시작해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며 무식을 인식했다고 해서 최고의 현인으로 추앙받은 소크라테스까지 모두 일곱이나 된다. 이로써 일곱 현인이 난다는 옛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또 아폴론을 섬기는 무녀들의 신탁이 족집게처럼 들어맞았다고 한다. 하늘거리는 키톤을 걸치고 삼발이 청동 솥 위에 올라앉아 이래라저래라 아는 소리를 내뱉으면 다들 무릎 치며 혀를 내둘렀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의 말대로 델피는 ‘돌투성이에다 극장 무대처럼 움푹한 도시’였다니, 무녀가 외치는 신탁이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지지 않았을까? 또 무녀들이 거두어들인 복채 덕분에 밭뙈기 하나 없는 산중에 대리석으로 도배한 도시의 살림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의 솜씨 빌려 만든 ‘신들의 집’
    아폴론 성역에서 비탈 밑으로 내려오면 아테나 성역이다. 위쪽 아폴론 성역이 100평짜리 호화빌라라면 아테나 성역은 거의 지하 단칸 전세방 규모다. 이곳을 두고 고대에는 ‘먼저 본다’는 뜻에서 ‘아테나 프로나이아’라고 불렀다. 일찍이 아폴론이 큰 뱀 피톤을 제압할 때 아테나 여신이 도와주었다고 해서 성역을 따로 하나 챙겨드렸던 모양이다.

    1937년 비탈 아래 아테나 성역이 발굴, 복원되었다. 제단을 찾아 명문을 읽어보니 신들의 이름이 여럿 나왔다. 수공업을 관장하는 아테나 바르가나(vargana), 싸움 채비를 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아테나 조스테리아(zosteria), 도시의 안녕을 수호하는 제우스 폴리에우스(polieus), 보건의 여신 히기에이아(hygieia)와 출산을 돕는 에일레이티아(eileithyia) 등이다. 현재 신전 셋과 보물신전 둘이 모습을 드러냈고, 앞선 시대의 구조물도 여러 채 확인되었다. 그러나 언제, 어느 신전이 무슨 신에게 바쳐졌는지는 알 수 없다.

    아테나 성역의 신전과 보물신전들은 모두 빈터만 남아 있다. 훗날 인근에 수도원과 성채를 지으면서 대리석을 마구 뜯어 썼기 때문이다. 성역을 아예 ‘대리석 밭’이라는 뜻의 아테나 ‘마르마리아’라고 불렀을 만큼 석재 약탈은 심각했다.

    원형 신전에 들어서면 솔바람이 솔솔 분다. 한때의 눈부신 영광은 간 데 없고 이끼 낀 돌무더기 위에 마른 솔잎만 수북하다. 그리스 신전은 어디서나 바람이 잘 통하는데 그중에서도 원형 신전은 바람이 가장 잘 통한다. 모난 데 없이 원만하고 어느 방향으로나 두루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전의 구조는 마치 척추가 없는 대신 피부가 뼈의 구실을 하는 개미와 비슷하다. 보통 건축물 같으면 벽을 바깥에 두르고 기둥을 안에 버텼을 텐데, 그리스 신전은 안팎이 뒤집힌 셈이다. 건축과 자연을 한 호흡으로 맞추려고 그랬을까? 제작이 까다로운 둥근 기둥을 바깥에다 듬뿍 둘러치고 벽체는 안에 조그맣게 숨겨두었으니, 공간 효용만 따지면 낙제점이다. 그래도 그리스 신전의 건축 형식이 2000년 넘게 지속되는 것을 보면 누가 처음 생각했는지 정말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델피의 원형 신전은 계단을 세 칸으로 동그랗게 둘러 쌓고 그 위에 도리아식 기둥을 올렸다. 포카이아의 건축가 테오도로스의 솜씨다.

    원형 신전은 맨 아래 기단부도 동그랗다. 상부 기단의 지름은 13.5m, 내부 감실의 지름도 7m쯤 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훨씬 여유롭다. 기둥 높이는 5.93m. 도리아식 기둥치고 꽤 미끈하게 빠졌다. 기둥 위에 올린 들보의 높이도 관례적인 기둥 높이 3분의 1 대신 4분의 1 정도로 낮추어 가뿐하고 경쾌한 느낌을 더했다. 모두 스무 개나 되는 둥근 기둥이 뻣뻣한 열중쉬어 자세로 원형 신전을 에워싸고 있다. 꼭 늘씬한 미인들의 사열을 받는 기분이 든다.

    원형 신전의 지붕은 어떤 식으로 얹었을까? 남아 있는 파편 조각을 맞추어보니 지붕이 두 틀이나 나왔다. 두툼한 팔각형 지붕과 얇은 원추형 지붕이다. 내부와 외부에 지붕을 이중으로 겹쳐서 얹었을까? 그랬다면 감실 위에는 원추형 지붕을 올리고 신전 바깥 기둥 위로 팔각지붕을 씌웠을 것이다. 그러나 감실만 덮기에는 원추형 지붕의 크기가 잘 맞지 않았다. 결국 고고학자들의 의견은 처음에 무거운 팔각지붕을 얹었다가 가느다란 기둥들이 지붕의 누르는 힘을 버티기 어렵다고 보고 가벼운 원추형 지붕을 재시공했을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원형 신전이기는 하지만 상부 기단부의 가로 지름과 지붕까지의 세로 높이는 정면과 측면 기둥이 각각 6개와 13개인 전형적인 도리아식 신전 비례와 얼추 일치한다.

    신의 솜씨 빌려 만든 ‘신들의 집’
    델피의 원형 신전은 기둥이나 들보를 장식하는 사각형 판부조가 영락없는 도리아식이다. 판부조는 안팎으로 마흔 개씩 모두 여든 개나 된다. 바깥 판부조는 아마존과의 전투, 안쪽은 켄타우로스와의 싸움이 주제로 실렸다. 그런데 안쪽 감실 바깥의 벽 원주에는 코린토스식 기둥머리가 붙었다.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크레피오스 원형 신전의 코린토스식 기둥머리보다는 덜 진화된 형태다.

    안팎의 양식이 다른 신전은 또 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은 겉으로는 도리아식이면서 안쪽은 이오니아식 띠부조를 둘렀다. 그래서 델피의 원형 건축은 기원전 5세기 말의 파르테논 신전보다는 늦고 4세기 중반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보다는 이른 기원전 390~380년경에 세워졌을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건축가 테오도로스는 원형 신전을 지으면서 기막힌 재주를 부려놓았다. 바닥 기단부를 살짝 부풀려놓은 것이다. 원형 기단부의 가장자리를 낮추고 안쪽 복판이 가장 배가 부르다. 꼭 그래서는 아니었겠지만 물 청소할 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테오도로스는 신전 바닥을 부풀린 다음에 기둥도 살짝 밀어두었다. 둥근 기둥 스무 개가 하나같이 안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구조는 금세 눈에 띄지는 않지만 둥근 기둥의 배흘림 곡선과 더불어 신전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 같다는 느낌을 준다. 또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신전이 실제 크기보다 웅장하고 위엄 있게 보이게 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이처럼 반듯한 신전 건축을 조금씩 흔들어 시각적 환영에 임팩트를 더하는 기법은 이전에도 있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에기나의 아파이아 신전, 코린토스의 아폴론 신전도 바닥을 돋우고 기둥을 구부렸던 사례들이다. 그러나 원형 신전을 휘어놓은 것은 테오도로스가 처음이었다. 신전의 모든 부분을 한꺼번에 손보아야 했을 테니 네모꼴 신전보다 곱절은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 시대에 건축이론서를 쓴 비트루비우스는 건축가 테오도로스가 델피의 원형 신전에 대해 책까지 썼다고 말한다(비트루비우스, ‘건축 10서’, 7권 서문 12). 책은 비록 전해지지 않지만, 델피의 원형 신전은 신전 건축의 살아 있는 교과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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