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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법 개정’ 두 나라 세 목소리

한국 ‘걱정 속 환영’ 중국 ‘노골적 거부’ 조선족 ‘기대 반 우려 반’

  • < 강현구/ 베이징 통신원 > so@263.net.cn

‘재외동포법 개정’ 두 나라 세 목소리

‘재외동포법 개정’ 두 나라 세 목소리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재외동포법’(재외동포의 범위를 대한민국 정부수립 시점인 1948년 이후 해외로 이주한 사람으로 한정)이 위헌이라며 2003년 12월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는 결정을 내렸을 때 한국사회는 몇 가지 우려 속에서도 환영을 표시했다. 그러나 올해 초 재외동포법과 관련해 중국 현지에서 입법조사 활동을 실시하려던 국회의원들이 중국으로부터 비자발급을 거절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처럼 중국이 외교적 관례를 무시하면서까지 비자발급 거부라는 강수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사회는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재외동포법’을 받아들이지만 중국과 중국 내 조선족의 입장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조선족은 그들이 갖는 이중 지위, 즉 중국 국적의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성에서 출발하는 복잡한 제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그래서 흔히들 ‘뜨거운 감자’라는 말에 주저없이 동의한다. 중국이 한족을 비롯한 56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일 뿐 아니라 아직도 민족분규가 끊이지 않는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민족에 관한 일은 늘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재외동포법 개정’ 두 나라 세 목소리
중국에서 현대적 개념의 ‘민족’이 만들어진 것은 청나라 말기 반청운동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중국 역사는 동아시아에 산재한 여러 민족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청나라 말기 한족국가의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이미 확장된 중국 영토와 그에 근거한 국가 개념은 한족국가 건설로는 포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국민당은 오족공화(五族共和·오족은 한족, 만주, 몽고, 위구르, 티베트)를 내세워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상황은 국민당을 축출하고 등장한 공산당 지배의 신중국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내전에 참가한 각 민족에게 보상으로 연방제 구현을 약속한 공산당은 민족이라는 말만 나와도 가슴 졸이는 상황이었다. 결국 중국 공산당은 민족 앞에서는 늘 그렇듯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 각 민족의 독립적인 연방제 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은 사라지고 강력한 중앙집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거대인구를 자랑하는 티베트, 위구르, 몽고족과 중국혁명 과정에 조직적으로 참여한 조선족 등 무시 못할 세력을 가진 각 민족에 대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중국이 택한 대안은 당근과 채찍의 병행이었다. 먼저 채찍은 거대민족들을 무력화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개발을 명분으로 티베트, 위구르, 몽고 지역에 대규모 한족 이주정책을 실시했다. 각 지역마다 한족의 수적 우위를 통해 분리운동의 장애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다음은 내부분열 조장이었다. 통합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몽골과의 극심한 적대감정을 조장한 몽고족 사례와 아예 창장(長江) 남북을 기준으로 강북에는 중국 국적을, 강남에는 북한 국적을 부여한 조선족의 예는 그 대표적인 경우다.

채찍과는 별도로 소수민족에게 다양한 혜택도 주어졌다. 핵심이 자치구·자치주 설립과 일련의 소수민족 우대정책이었다. 소수민족 우대정책의 주 내용은 소수민족이 자신의 언어와 풍속을 보호받을 수 있는 각종 제도적 장치를 포괄한다. 예를 들면 소수민족은 자신의 언어를 쓰는 학교에서 교육받고 심지어는 대입시험도 자신의 언어로 본다. 또한 이 과정에서 상급학교 진학이나 직장의 배정, 가족계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혜택은 사실상 일반인보다 지식분자라 불리는 소수민족 엘리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컸고 실제로도 그랬다. 소수민족 지도층에 대한 노골적인 회유책인 셈이었다.



중국사회의 모든 것이 개혁·개방 이후 일변했듯 민족정책, 특히 소수민족 우대정책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월등해진 중국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소수민족에게 더 큰 혜택이 베풀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화가 가일층 전개된 1990년대 들어,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소수민족에 대한 특혜가 유명무실해지거나 폐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소수민족에 대한 우대정책이 특혜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과 시장화가 특혜에 대한 해소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결국 중국 정부의 대(對) 소수민족 정책의 중요한 수단 하나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점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중국 정부는 시장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수민족의 불만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의 조선족은 개혁·개방 이전부터 교육수준과 생활수준에서 중국 내 민족 중에서도 최고 수준을 자랑해 왔다. 항일전쟁 시기 조선인들의 쌀 모금으로 세워진 옌볜대학이 이 사실을 입증하는 것임과 동시에 조선족에게 자부심의 표상이기도 했다.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수적으로 많지 않은 조선족이 중국에서 이루어놓은 문화적 성과들, 특히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은 충분히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재외동포법 개정’ 두 나라 세 목소리
이렇게 중국사회의 모범이던 조선족 사회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 92년 이루어진 한·중 수교 전후였다. 수교를 기점으로 물꼬가 터진 한국행 러시는 중국 조선족 사회에 금전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부작용이 더 많았다. 물론 한국행이 아니더라도 많은 조선족이 베이징 등 외지에 나와 일자리를 찾고 있는데, 중국의 시장화와 그에 따른 농촌 해체가 근본 원인이다.

지금 조선족 사회에서 지적하는 자신들의 모습은 무척 심각하다. 공동화되고 있는 조선족 학교들은 견디다 못해 한족 학교와 통합을 추진중이고, 장가 못 간 농촌 총각 문제는 한국과 비슷해 청년층의 이농현상을 부채질한다. 조선족 지도층 일각에서 돈을 매개로 다른 민족 처녀들과 조선족 총각을 짝지우자는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주장할 정도로 조선족 사회는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부분은 조선족 사회 내부의 분열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다. 분열 현상은 ‘재외동포법’ 개정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완연히 드러난다. 이미 한국에 가 있거나 한국에 가기를 원하는 많은 조선족들은 당연히 개정을 원한다. 하지만 조선족 지도층 일각에서는 ‘재외동포법’ 개정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열린 ‘베이징 조선족 기업인 제5회 모임’에서 중앙민족대학 부속 소학교 정희갑 교수는 ‘재외동포법’에 대해 “조선족의 위상이 올라가 좋다”고 환영을 나타내면서 “그러나 중국의 조선족 동포들이 한국 국적을 가지면 150만 조선족 동포 농민이 땅을 내놓아야 하며 3만명 교원이 정리실업을 당하게 된다. 한국의 경제력으로는 우리에게 충분히 보상해 주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중국 조선족은 양면으로 궁지에 빠지는 비참한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한국 국적은 가질 수 없다고 명확히 써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외동포법’ 문제는 한국과 중국 정부의 정책방향과는 별도로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이미 한국과의 교류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다. 하지만 그것이 조선족 사회를 피폐하게 하거나 해체를 앞당기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교류는 수혜대상에게 좀더 근본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좀더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주간동아 319호 (p52~53)

< 강현구/ 베이징 통신원 > so@263.net.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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