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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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바친 두 눈 … 세상 밝힌 ‘후배 사랑’

前 동아일보 사진기자 김용택씨, 월남전 고엽제 피해보상금 등 1억원 사진기자협회에 쾌척

  • < 정읍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11-08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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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 바친 두 눈 … 세상 밝힌 ‘후배 사랑’
    아직도 사용하던 라이카 M6 사진기를 가끔 꺼내 손질하곤 해. 찍을 수는 없지만 만지는 것만으로도 옛 기분을 느낄 수 있거든.” 1967년 월남전 종군기자로 전선을 누비다 당한 고엽제 피해로 시력을 잃은 전 동아일보 사진기자 김용택씨(70). 전북 정읍의 내장산 자락에서 부인과 함께 노후를 보내는 그는 새해 초 후진 양성을 위해 한국사진기자협회에 1억원을 맡겼다. 95년 말부터 정부에서 받은 고엽제 피해 보상금을 모은 8000만원에 사재 2000만원을 보탠 거금이었다.

    “닥토 전투, 홍길동 전투 등 전선이 열릴 때마다 뛰어들어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늪을 헤치며 사진을 찍어댔지.” 시력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도 월남 종군을 했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서슴지 않고 “당연히 갔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게 사진기자야.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목숨 거는 거라고.”

    시력 상실 등 건강 이상 ‘열정은 여전’

    사진에 바친 두 눈 … 세상 밝힌 ‘후배 사랑’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사진기를 갖고 있던 친구가 부러워 카메라를 장만한 무렵부터 운명이 결정된 것 같다고 김 전 기자는 말한다. “담요로 창을 막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현상하던 시절이었지. 그 독한 현상액 냄새가 그렇게 좋았거든.” 54년 광주신보사에 입사해 자유신문·경향신문을 거쳐 63년 동아일보로 옮긴 뒤, 74년 건강 악화로 퇴사할 때까지 뷰 파인더를 통해 역사의 순간들을 노려보며 현장에서 보낸 21년이었다.

    “내가 현장에 나서면 타사 기자들이 모두 긴장하곤 했다”고 말하는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자랑스런 특종은 65년 2월 대일 굴욕외교 항의시위 장면. 국회의원들의 시위 앞줄에 있던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찰의 진압봉에 맞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조작된 사진”이라며 그를 연행하기 위해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으로 쫓아온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피해 다니며 몇 달을 보내기도 했다. 67년 베트남에서 찍은 ‘베트콩 검문소’ 사진으로 보도사진전 대상을 수상한 일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명실공히 ‘당대 최고의 특종기자’였다고 자부하는 김 전 기자의 초점 잃은 두 눈에 자긍심이 어린다.



    88년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정읍시 맹인협회 지회장을 맡을 정도로 정력적으로 움직여온 것은 숨가쁘게 살아온 지난 세월의 관성 탓일까. 당뇨와 신장장애까지 생겨 부인이 놓아주는 인슐린이 없으면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됐지만 아침 기상시간은 어김없이 6시30분. 라디오 뉴스와 부인이 읽어주는 신문 기사를 들으며 세상에 대한 관심도 놓지 않고 있다.

    “용택씨, 안 춥소?” 아직도 남편을 ‘용택씨’로 부르는 부인 염영자씨(66)는 후배 기자를 만나 흥이 난 남편이 걱정이다. 신명에 들떠 옛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는 모르지만 밤에는 끙끙 앓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두고 전장을 향해 떠났던 남편, 부인 혼자 이사를 끝내면 약도 보고 새집을 찾아올 만큼 집안일에는 무심했던 사람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이제는 원망도 다 잊어버렸다”며 부인 염씨는 허허롭게 웃는다.

    사진기자협회는 그가 맡긴 기금으로 ‘김용택 기자상’을 제정해 그해 가장 뛰어난 보도사진을 찍은 후배 기자들에게 시상할 예정이다.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갑자기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우리 때는 기자들이 자존심이 있었어. 요새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기가 막힌다고.” 벤처와 일부 언론인의 유착에 대해 밤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분통이 터진다는 이야기였다. “좀 제대로 하소. 나 같은 사람 서럽지 않게.” 사진기자에게는 생명보다 값지다는 두 눈을 기자정신을 위해 바친 노 언론인의 추상같은 일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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