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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숭연이는 왜 소림사로 갔나

구제불능 말썽 치유 2년 전 조기 무술유학 …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바르게 성장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악동 숭연이는 왜 소림사로 갔나

악동 숭연이는 왜 소림사로 갔나
숭연이는 2년 전 초등학교 2학년 때 중국으로 유학 갔다. 목적은 무술. 1년 뒤인 2001년 6월 숭연이는 소림사 무술학교가 개최한 무술대회에서 소년규정권 종목 5위, 소림규정도는 8위를 했다. 짧은 무술연마 기간을 감안하면 수백명을 제치고 두 종목에서 5, 8위를 차지한 것은 놀라운 성적이었다. 다가오는 4월 ‘부처님 오신 날’에 왕쑹 사부와 전남 보성 대원사에서 소림무술 시범을 보일 예정이다. 1년 만의 귀국. 오랜만에 숭연이를 만나는 사람들은 말썽꾼, 악동, 장난대장 숭연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 씻고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오죽하면 중국에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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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용범씨(43)와 어머니 정혜선씨(38)는 모두 국악 전공자로 울산에서 음악을 가르친다. 조용한 성격에 난 가꾸기가 취미인 부모와 달리 첫아들 숭연이는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말썽꾸러기였다. 특히 두 살 아래, 정확히 19개월 늦게 태어난 동생 충연이에 대한 주먹질은 도를 넘어 동생 때리기가 취미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집에 있을 때는 벌을 주는 무서운 아버지를 의식해 조용히 지내는 편이었으나 대문을 나서는 순간 숭연이는 180도 변했다. 어머니 정씨의 표현에 따르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장난을 쳤다. 아버지의 회초리, 어머니의 꾸지람도 한두 번. 말썽꾸러기 숭연이는 찍힌 김에 더 활개를 치고 다녀 전교에서도 유명한 장난대장이 되었다.

게다가 숭연이는 공부에서도 ‘아니올시다’였다. 수학은 반에서 꼴찌, 국어는 꼴찌까지는 아니라도 못하는 축이었다. 잘하는 것은 오직 하나 체육. 그러나 결국 숭연이에게 무술에 대한 꿈을 키워준 것은 부모였다. 숭연이네 가족은 며칠씩 걸려 20여편짜리 무협영화 비디오를 독파하는 무협영화광이었던 것이다.



악동 숭연이는 왜 소림사로 갔나
숭연이가 일곱 살 되던 해 11월, 아버지 이씨는 중국어라도 제대로 가르쳐 보자며 아들 손을 잡고 베이징에 갔다. 베이징 도착 사흘째 아버지와 삼촌(베이징대학에 유학중)은 한 가정집에 숭연이를 두 달 예정으로 맡기고 돌아섰다. 그러나 숭연이의 울음소리가 골목길 어귀까지 들렸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이씨도 함께 울었다. “벌을 주고 엄하게 대한 일이 떠올라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더군요.” 결국 다시 아들의 손을 잡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더욱 천방지축이 된 숭연이. 참다못한 이씨는 다시 아들을 유학 보내기 위한 계획을 짰다. 사실 이씨는 공부에 유난히 취미가 없는 숭연이에게 오로지 공부만 강조하는 한국의 교육현실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이의 건강도 염려스러웠다. 숭연이는 운동감각은 타고났지만 몸이 약해 겨울만 되면 기관지염, 비염, 폐염 등을 끼고 살았다.

중국 사정에 밝은 삼촌이 어느 날 무술유학을 제안했다. 숭연이에게는 자질이 있었다. 몸이 유연하고 또래들보다 참을성도 있었다. 숭연이도 무술을 배우러 중국에 가는 데 동의했다. 석 달 동안 소림무술을 지도해 줄 왕쑹 스님, 중국어 교사인 샤오판 선생과의 맹훈련이 시작되었다.

악동 숭연이는 왜 소림사로 갔나
숭연이를 가장 괴롭힌 것이 다리 찢는 연습이었다. 처음에는 응접실 한쪽 벽에 붙여놓고 억지로 두 다리를 벌려 가랑이가 쫙 펴지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열흘 만에 다리가 한 일(一)자가 되더니 나중에는 발 뒤꿈치 아래 책을 8권씩 쌓아올리고 V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오전에는 다리 찢기 훈련, 통배권과 소림무술 기본 동작을 배우고, 오후에는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 가서 연습을 했다. 왕쑹 사부는 이 과정을 통해 숭연이의 가능성을 읽었다. “아무리 힘겹고 괴로워도 일그러지지 않는 인품. 나는 그게 덕(德)이라고 생각한다. 무술인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품을 숭연이는 타고난 것이다.”

한달만에 중국어가 뚫리다

샤오판 선생은 따라하기 힘든 중국어 발음이 나오면 잘될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 주었다. 처음 중국어 병음(倂音) 공부를 할 때는 48가지 발음 하나마다 100번씩 연습했다. 샤오판 선생은 숭연이를 시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물건 고르고 사는 법을 가르치고, 산책하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끊임없이 새로운 단어를 가르쳤다.

또 매일 2시간씩 ‘손오공’ 만화영화CD를 보았다. 처음에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던 중국어가 보름쯤 지나자 주인공 호우커의 목소리가 조금씩 귀에 들어오고, 한 달이 지나서는 그 내용을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지만 샤오판 선생은 글자를 가르치지 않았다. 숭연이 스스로 간판의 글자를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까지 기다렸다.

악동 숭연이는 왜 소림사로 갔나
베이징에서 한 달, 쓰촨에서 한 달, 소림사 견학 등으로 석 달을 보낸 후 숭연이는 울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정신없이 놀다 보니 어느새 중국어가 까마득해져 서둘러 중국으로 돌아갔다. 왕쑹 사부는 쓰촨성 시골마을 칭캉춘의 산기슭에 초막을 치고 맹훈련에 들어갔다. 날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통배권 30번, 아침 먹고 다시 통배권 120번, 낮에는 새로운 무술 익히기, 저녁에는 소림동자공 연습, 저녁 9시에는 더운물에 발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듬해 봄 숭연이는 소림사 무술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정식입학이 아니라 석 달만 배우기로 하는 조건부 입학이었다. 숭연이네 반은 5세에서 17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35명이 함께 공부한다. 목표는 6월1일부터 5일간 계속되는 소림사무술대회 참가. 영화 ‘황비홍’의 이연걸이나 ‘중국용’에 나오는 꼬마영웅 석소령(소림사 무술학교 출신이다)처럼 되겠다는 꿈을 간직한 아이들이 집결하는 대회였다.

숭연이는 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9월 무술학교에 정식입학을 허락받았다. 훈련 도중 팔이 부러지는 사고도 있었지만 잘 견뎌냈다. 지금은 겨울방학인데도 귀국하지 않고 베이징에서 수련을 계속한다. 왕쑹 사부가 한국에 돌아가면 마음이 흐트러진다며 귀국을 만류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닦는 공부

악동 숭연이는 왜 소림사로 갔나
“정말 무술인으로 키울 생각이세요?” 숭연이 부모는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숭연이가 워낙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행동하는 아이여서 걱정이 많았죠. 한편으로는 세심하고 어른스러운 점도 있어 무엇을 시킬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무술은 그것을 업으로 삼으라는 뜻이 아니라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고 생각했던 겁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는 게 쉽지 않겠죠. 부모처럼 돌봐준 두 분 선생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아버지 이용범씨)

이씨 부부는 숭연이가 중국으로 떠날 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매일매일 단 한 줄이라도 일기를 써라. 그러면 나중에 책으로 만들어주겠다.” 숭연이의 일기는 ‘훈련이 힘들다’ ‘돼지고기가 먹고 싶다’ 수준이지만, 왕쑹 사부가 숭연이의 성장과정을 꼼꼼하게 기록(글과 사진)했다. 이를 토대로 이숭연의 중국무술 체험기 ‘숭연이, 소림사 가다’(호미 펴냄)가 나왔다. 한국에서는 구제불능 말썽꾸러기였던 숭연이가 올해 석가탄신일에 눈빛 초롱초롱한 무술인이 되어 돌아온다. 그 사이 이씨 부부 사이에 숭연이를 꼭 닮은 막내 유민이(6개월)가 태어났다.





주간동아 319호 (p46~47)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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