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2002.01.24

”지금 대선판엔 인물이 없다”

이수성 前 총리 … ”이회창총재와 이인제 고문은 분열주의자”

  •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입력2004-11-08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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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대선판엔 인물이 없다”
    이수성 전 총리가 이원집정부제 개헌론 제기로 다시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남후보 대상 중 하나로,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총재직 제의설로 끊임없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를 1월14일 만나 현 정치구도와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신승남 검찰총장이 중도하차했는데….

    “좋은 사람인데, 미리 사퇴했으면 좋았을걸 그랬다. 시간이 맞지 않아 그랬겠지. 별의별 동생이 다 있게 마련이지만 도의적 책임이 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이 전 총리와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논의한 것을 밝혀 관심을 모았는데….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아주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 왔다. 책임정치라는 측면에서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우리 실정에 가장 낫다고 본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있으면 권력 분산도 되고, 대통령이 미처 챙기지 못한 일을 챙길 수 있고…. 차선책은 (이원집정부제로) 대통령부는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방, 외교를 책임지고 필요할 때 비상대권을 갖고, 내각은 총리가 책임지는 식으로 2원화하는 것이 내각책임제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해 왔다.”



    -사실 이원집정부제는 지금의 헌법에서 약간만 손질하면 되는 것 아닌가.

    “바로 그렇다. 조금 가미하기는 해야겠지만. 순수 내각책임제는 아무래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의 수준이라는 것이…. 표 하나 얻으려고 무슨 짓이든 하고, 남을 모략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이런 선거 풍토, 이런 국회의원 자질 가지고는 우리나라가 어렵다. 우선 애국심을 가진 좋은 국회의원들이 나와야 한다. 제발 잘난 체 좀 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김종필 총재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가.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김총재가) 내각책임제를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우겠다고 해서 이원집정부제로 생각을 고쳐보시죠. 남북 분단 상황에서는 대통령부가 존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김총재는 ‘그것도 논의할 수 있는 문제죠. (이원집정부제도) 일종의 내각제니까. 그럴 때는 비상대권까지도 대통령에게 줘야 합니다’고 말씀하셨다. 그 얘기로 끝냈다.”

    -이원집정부제 개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가.

    “가능하고 말고 여지가 없다. 어떤 사람이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것이 가장 낫다고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선거에 나갔을 때 국민이 그 사람을 뽑으면 개헌하라는 표시이자 국민의 의사 아닌가. 그렇다면 국회를 해산하고, 대통령 자신도 그만두고, 대통령은 국회에서 간선하면 된다.”

    -이원집정부제가 현재의 지역분할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방편이라고 보는가.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이 논의해야겠지만, 이원집정부제를 하려면 중대선거구제나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돈 없으면 못 견디는 지금의 더러운 선거풍토가 없어지게 된다. 지금 국회의원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다. 선거에서 8000만원 썼네 1억원 썼네 하지만 그게 사실인가. 제도가 국회의원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그러면서 깨끗한 척하고 남 타박하고…. 그럴 권리가 없다.”

    -김종필 총재와의 회동에서 이 전 총리가 자민련 총재를 맡는 방안도 논의되었다고 하는데….

    “그건 내가 지금 얘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 있으니까 얘기하기가 거북하다.”

    -한때는 민주당 대표로도 물망에 오르지 않았는가.

    “그건 내가 사양했다. 나는 국민이 화합해 단결된 힘으로 국제경쟁에 임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 양쪽의 어느 축에 섞이면 지역을 분열시켜 득표에 유리한 상황만 생각하는 갈등주의자가 된다. 어느 한 축에 섞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래서 국민회의 대표도 사양했고, 민주당 초기 때도 그렇고….”

    -아직 민국당 고문을 맡고 있는데….

    “선거 직후 탈당계를 냈다. 그런데 김윤환씨가 ‘그렇지 않아도 상처를 많이 받았는데 상처가 더 커지지 않겠느냐면서 그냥 두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까지 상처 줄 일은 없기에 그냥 두라고 했다.”

    -김윤환 대표는 현재 대규모 정계개편에 힘을 쏟고 있는데, 그런 방식의 개편에 동의하는가.

    “나는 그 양반이 무슨 정계개편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모르니까 동의하고 말고가 없다. 내가 원하는 정계개편이 있다면 자기 욕심이 없고 거짓말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 정계에 많이 진출하는 것이다. 나머지는 다 떨어뜨리고….”

    -현재 김종필 총재가 추진하는 ‘내각제 연대’의 성사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잘 모르겠다. 나는 정치의 세력화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국가의 장래나 우리 후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호소해 국민이 인정하면 그것이 바로 정치의 승리고 새로운 정치의 기틀이 되는 거지, 내각제다 대통령제다 이원집정부제다 세력화하면 추잡한 싸움만 된다.”

    -계속 영남후보론의 대상으로 거명되는데….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당선돼 속으로 참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호남이 핍박받았으니까 이제는 대통령이 국가경영을 잘해 모두 좋아졌으면 했는데, 처음부터 그게 잘 안 됐다. 영남후보라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은 영남인이 나서 호남을 껴안고 충청을 싸안고, 기호지방을 싸안고… 이런 정도로만 생각한다.”

    -어느 당이든 이 전 총리를 대통령 후보로 옹립하겠다면 응할 생각은 있는가.

    “깊이 생각중이다. 정치인들이 국가는 생각지 않고 권력다툼만 하는 지금은 나라 망친 조선조의 사색분당 시대와 똑같은 상황이다. 이걸 극복하지 않으면 나라에 미래가 없다. 극복할 수 있는 사상과 의지와 철학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밀어주겠다. 그러나 내 단견인지 오만인지 그럴 분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나서는 사람 모두 분열주의자고, 어느 한 축에 속해 있는 사람뿐이다. 국민에게 호소할 계제가 되면 나를 던질 수도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신당을 만들 생각은?

    “없다. 창당에는 돈이 필요하다. 내가 창당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당이 창당된다면, 신뢰가 가면 밀어줄 수 있다.”

    -지금 대구·경북(TK) 지역의 정서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한나라당 강재섭 부총재가 TK 역할론을, 김만제 의원이 당권을 넘기라고 주장했다.

    “김만제씨는 국가 경영을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이다. 그 사람은 국가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것이고… 나머지는 글쎄… 맹주 밑에 충견이 있듯, 그럴 수 있겠지. 그런 정도로만 볼 뿐 별 관심 없다.”

    -TK에서 박근혜 부총재의 인기가 상당한데, 만난 적이 있는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신문 보도로만 보면 다른 정치인보다 화합과 단결을 외치는 점에서 나와 생각하는 바가 일치한다. (정치인 중에서) 가장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워진 것은 여당에 일차적 책임이 있겠지만 야당도 책임을 면하긴 어려울 듯하다. 이회창 총재의 리더십을 어떻게 보는가.

    “이회창 총재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고…. 몇 년 사이 사회의 도덕성이 거의 붕괴된 상태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다. 고려대학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민족정신이 강한 곳이다. 고대생의 51%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덕성의 붕괴는 여당 책임이 훨씬 크지만 오직 권력만을 위해 나라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야당 책임도 크다. 갈등주의, 분열주의로 나가는 것은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분열주의가 이기느냐 통합주의가 이기느냐, 여기에 국가의 미래가 걸려 있다.”

    -각종 게이트로 권력 핵심 인사들까지 줄줄이 거론되는 상황인데, 이렇게까지 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워낙 소외돼 있던 분들이라 인적 자원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너무 오래 고생했으니까 자리를 주었는데, 줘야 할 자리가 있고 주지 않아야 할 자리가 있다. 그런데 함부로 자리를 주었고 자제력과 스스로의 엄격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비리가 시작된 듯하다.”

    -현재 대선 지형을 보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고문이 경쟁하는 구도인데, 이런 구도가 대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예측하긴 어렵다. 그러나 변하길 바란다. 왜냐하면 두 사람 다 분열주의 쪽에 서 있으니까.”

    -만약 한나라당에서 입당을 권유한다면?

    “가지 않겠다. 한나라당의 현재 시스템으로는 국가 장래를 책임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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