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9

2002.01.24

‘강한 정부’ DJ … 1년 만에 “음메 기죽어”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입력2004-11-08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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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정부’ DJ … 1년 만에 “음메 기죽어”
    지금부터 1년 전인 2001년 1월11일. 김대중 대통령은 당당한 모습으로 연두 기자회견장에 등장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 지도자로서의 자신감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특유의 조크로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때 김대통령을 감싼 것은 ‘강’(强)이었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에 정면대결로 맞섰고, 그래서 나온 것이 ‘강한 여당, 강한 정부’였다. 안기부 자금유용 문제로 한나라당을 몰아붙이던 모습 어디에도 노(老)정객의 풍모는 찾아 보기 힘들었다.

    2002년 1월14일 10시 청와대 춘추관 2층의 연두 기자회견장. 김대통령이 1년 만에 그 자리에 다시 섰다. 그러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우선 표정이 달랐다. 짙은 청색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김대통령의 얼굴 표정은 어두웠다. 지친 듯한 얼굴이었다. 자신만만한 목소리는 간 곳 없고 쉰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대통령 특유의 조크도 선보이지 않았다. 청와대 한 비서관은 “감기가 들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회견 내내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이한동 총리를 비롯해 배석한 국무위원들도 밝지 않은 표정이었다.

    회견에 참석한 150여명 내외신 기자들은 김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신승남 검찰총장의 처리 문제 및 각종 게이트에 대한 김대통령의 해법이 주요 관심사였다. 그래서였을까. 이날 김대통령이 국민에게 던진 첫마디는 각종 게이트와 의혹사건에 고위 공직자와 청와대 직원들이 연루된 것에 대한 ‘사죄’였다. 김대통령은 이후 회견이 끝날 때까지 두 차례나 더 사죄 발언을 입에 올렸고 인사와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두고 ‘사죄회견’이라고 평가했고, ‘연성기조’로 갈 수밖에 없는 김대통령의 처지가 해설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사과에 이어 부정부패에 대해 강한 척결의지를 피력했다. 기자회견 중 가장 강한 어조였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이 부분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기자회견 때도 김대통령은 강한 어조로 부정부패 근절을 부르짖었다.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개각은 관심사였다. 지난해 개각에 대한 질문을 받고 김대통령이 한 대답은 “오늘 여기서 보따리를 다 풀어버리라고?”였다. 믿고 맡겨 달라는 자신감에 가득 찬 조크성 답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에 쫓기는 처지가 한눈에 드러나는 답변으로 대신했다. “매일 터져나오는 게이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무슨 일이 또 일어날지 걱정이 돼 솔직히 (개각문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실업률 3%대 유지에 대한 강조는 지난해나 이번에나 똑같았다.

    인사정책에 대한 답변 역시 김대통령의 부담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다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사를 해놓고 보니 잘 안 된 것도 있다 . 그렇지만 학연·혈연·지연을 배제하려 노력했다.” 인사 탕평책을 요구받은 지난해 답변은 “각 부처가 장관의 지연·학연에 따라 편중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인사쇄신에 포함시켜 개선할 것”이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입장은 확연히 달랐다. 작년에는 “여건만 조성되면 답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반대였다. “확실한 말을 할 수 없다. 불투명하다. 그렇지만 문서상 확실히 돼 있다. “

    정치에 대해서는 일절 손을 떼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정치와 선거에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그의 발언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정치개혁을 부르짖던 지난해 모습과는 판이했다. 특히 의원을 임대해 주며 자민련과 재공조에 나서던 모습과는 크게 비교되었다.

    김대통령은 회견이 끝난 뒤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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