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5

2001.12.27

소리까지 고소한 지리산의 별미

  • 시인 송수권

    입력2004-12-14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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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까지 고소한 지리산의 별미
    웃고 있는 돼지머리는 분명히 상서롭고 해학적이며, 그 주둥이에 지폐를 물려주는 ‘고사’ 행위는 부의 상징을 의미한다. 하나같이 무슨 복권에 당첨됐거나 횡재했다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돼지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200, 300근 나가는 흰 돼지가 아니라 100근 미만의 흑돼지 꿈이다. 이른바 토종돼지 꿈이다.‘진서’(晉書)의 숙신씨(肅愼氏)편에는 식생활과 관계된 기록이 보이는데, 그것은 시체 매장법에 관한 기록이다.

    “그들은 돼지의 고기를 먹고,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기름을 몸에 발라 추위를 막았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돼지를 잡아 관 위에 올려놓았으니, 죽은 사람의 양식으로 바치는 습속이 있었다.”

    이는 고구려의 영토가 된 만주지방에 살던 읍루족의 기록인데, 오늘날 제물상에 돼지머리를 얹는 것은 여기서 온 습속인 듯하다.

    또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재미있는 사실은, 부여에는 목축이 발달하였는데 벼슬 이름까지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견사(犬使) 등으로서 가축을 소중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어쨌든 짐승 중 죽고 나서도 유일하게 웃고 있는 듯한 고삿상의 돼지머리를 보면, 끈질긴 밥그릇(농토)을 지켜낸 민족의 한(恨)이 떠오르고, 이 한이 해학과 풍자의 웃음 속에 녹아들어 새로운 힘으로 분출되는 것을 예감한다.



    소리까지 고소한 지리산의 별미
    지리산 뱀사골의 첫눈을 만끽하기 위해 몇몇 시인 동료와 함께 ‘똥돼지나 추렴하러 가세’하고 노고단을 넘어 뱀사골 달궁마을과 태교송(胎敎松)마을 그리고 ‘지리산 전사관’을 지나 뱀사골 입구에 있는 유성식육식당에서 저녁 밤참을 했다. 유성식육식당(김동수ㆍ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653-8, 011-511-3684)은 지리산 토종 흑돼지 생고기 전문점으로 은근슬쩍 오래 전부터 알려져 온 곳이다. 인근 마을 인월면을 비롯해 상황리, 중황리, 하황리, 벽송사가 있는 동구마천 일대가 예부터 똥돼지 오지 마을로 이름 높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지리산 일대 산간오지 마을들의 특성이기도 하거니와 지금도 쌀죽겨, 구정물만 먹인 흑돼지와 함께 똥돼지 한두 마리쯤은 소문 따라 구할 수도 있다. 100근 미만짜리 흑돼지들은 꼬리가 말려 있고 주둥이가 연밤송이처럼 벌쭉거려 그대로 그 옛날 똥돼지 냄새를 피우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정겹다. 또 허리는 길고 발목은 짧아 대도시에서 보는 그런 살진 돼지가 아니다.

    유성식육식당 주인 김동수씨가 돼지머리에 칼질하는 것을 보고 한 젊은 시인이 농지거리를 한다.

    “이놈아, 저승 가기 전에 잘 들어둬. 시인 양반들이 너를 젓수고 네 꿈을 꾸겠다는 거여. 그러니 오늘은 주택복권 한 장씩이라도 사야 할 판이여. 이 세상 제물상에 올라 웃고 뒈지는 놈은 너밖에 없으니 목욕재계하고 면도하기 전에 실컷 웃어.” 하면서 판소리가락의 ‘아니리’를 그대로 메기는 모습에 꾸르륵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해학과 풍자치곤 기분 좋은 덕담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뱀사골을 누비고 그 옛날 빨치산처럼 눈을 밟아 내려왔으니 출출해진 배는 얼마나 고팠을꼬. 산내면 대정리(면소재지) 유성식육식당은 바로 인월면과 동구 마천 그리고 뱀사골로 드는 삼거리 주막쯤 되는 냇가에 있다. 처음에는 평상 몇 개를 걸쳐놓고 시작한 것이 지금은 생고기 유통까지 겸하여 동생인 김충수씨가 태산유통(011-724-7690)을 맡아 번성중이다.

    이 일대는 지리산 토종돼지 소금구이가 지역 별미로 자리잡았는데, 비계와 껍질이 골고루 섞이도록 삼겹살을 석쇠에 올려 굵은 소금을 홀홀 뿌리며 굽기만 하면 된다. 시인 몇은 벌써부터 생삼겹을 포장지에 싸느라 정신이 없다. 그만큼 차별화된 맛이 지리산 토종돼지란 걸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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