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5

2001.12.27

네팔에서도 ‘테러와의 전쟁’

공산반군 전국 곳곳서 유혈사태 자행 … 정부 비상사태 선포 ‘붉은 바람’ 차단 총공세

  • < 이지은 통신원 / 델리 > jieunlee333@hotmail.com

    입력2004-12-14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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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에베레스트 산이 있는 나라로만 알려진 네팔. 이 나라가 최근 공산반군의 일부 지역 장악과 잇따른 테러로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 간의 유혈충돌은 실질적인 내전 양상을 띠고 있으며 그 정도도 심각해지는 추세다.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은 데우바 총리와 내각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난 11월26일 네팔 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비상사태가 선포된 당일에도 공산반군은 네팔 동부의 솔루쿰부 군에서 군부대와 공항, 군청, 세무서 등을 습격했다. 이 와중에 군수를 포함한 공무원들과 경찰, 군 장교 등 40여명이 살해됐다. 또한 반군은 두 군데 은행에서 미화 2만5000달러 상당의 현금과 금괴를 탈취했다.

    공산반군은 현재까지 전체 75개 군 중 서부의 22개 군을 무력으로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이들은 롤빠를 수도로 하는 정부 수립까지 마친 상태다. 현재 네팔 전체 인구의 16%가 공산반군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반군은 18개 군에서 별도의 행정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쁘라짠다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뿌쉬빠 까말 다할이 이끄는 공산반군은 1996년 마오쩌둥주의의 네팔 공산당을 창당한 직후, 입헌군주제 폐지와 공화정 수립을 주장하며 인민해방전쟁을 선포했다. 지금까지 이 ‘해방전쟁’에서 2100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네팔 공산당은 올 6월 비렌드라 전 국왕과 왕비, 왕세자 등 왕실 일가족이 피살되었을 때도 군주제 폐지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와 폭동을 주도했다.

    지난 6년간 카트만두 정부에 끊임없이 대항하며 한편으로는 협상을 계속해 온 이들 공산반군은 지난 7월 자신들의 요구대로 꼬이랄라 전 총리가 물러나고 데우바가 총리에 임명되자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휴전이 선포된 지 불과 넉 달 만에 공산당은 인민연합 혁명정부 수립을 선포하며 네팔 전역에 걸쳐 파상공격을 시작했다. 11월 말에 일어난 4일간의 전국적 테러로 76명의 경찰과 공무원을 포함한 250여명이 사망했다. 반군은 시얀자와 당 등지에서 군부대와 경찰서를 습격하여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탈취했으며 카트만두 교외에 있는 코카콜라 공장에 폭탄테러를 가함으로써 자본주의와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반군에 포로로 잡힌 공무원들은 사지가 절단된 채 숲 속에 버려졌다.

    지난 7월 데우바 총리가 취임할 때만 해도 카트만두 정부와 쁘라짠다 반군의 관계는 지극히 우호적이었다. 데우바의 총리 취임 자체가 쁘라짠다측의 주장을 전폭 수용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당시 쁘라짠다는 공화제 주장을 철회할 기미마저 보였다. 그러나 정부측과 지나치게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화근이었다. 공산당 진영 내에서 군주제 폐지와 공산당 일당체제를 고집하는 강경파와 기존 온건파 사이에 불협화음이 형성된 것이다. 당내 이론가인 바따라이와 군 사령관인 바달이 이끄는 일파가 쁘라짠다에게 도전하기에 이르자 자신의 지도력과 권위에 위협을 느낀 쁘라짠다는 정부측과의 모든 협상을 취소하고 전격 투쟁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공산반군이 다시 급진노선으로 돌아서자 네팔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테러와 분란행위 방지법’을 새로 제정하여 발효시켰다. 이들 공산반군을 테러리스트로 규정, 히말라야판(版)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비상사태 선포는 군대 동원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물론, 테러리스트 소탕이라는 국제적 대세에 편승해 네팔 정국을 수습하려는 의도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12월 초순을 넘어서며 네팔 정부군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반군 요새에 총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수십에서 수백명의 반군이 사살되었음을 알리는 네팔 정부의 발표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공산당 조직 내부의 문제도 네팔 정부에 호재로 작용했다. 현재 정치 조직인 네팔 공산당과 군사 조직인 ‘인민해방군’ 간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바달을 중심으로 하는 군부는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얼마든지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쁘라짠다가 총비서로 있는 네팔 공산당은 헌법개정권이 의회에 주어진다면 입헌군주제도 용인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당초 무력 투쟁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치닫게 했던 양측의 입장 차이와 세력 다툼이 이제는 조직 붕괴로 연결될 수 있는 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원래 네팔 공산당은 11년 전 네팔에 처음으로 의회제와 선거제가 도입될 때 조직된 자나 모르짜라는 이름의 작은 정치 집단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단체의 지도자 바따라이는 네팔 중서부의 자자르꼬뜨, 루쿰, 롤빠 등 빈곤한 군을 중심으로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동은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이 지역의 실업자와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이 단체가 1996년 창당한 네팔 공산당의 기원이다.

    사실 네팔 공산당은 창당 후 3년 동안은 국민의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98년 마오쩌둥주의 운동가들에 대한 정부의 무자비한 불법탄압이 자행되었을 때는 국내외에서 광범위한 동정 여론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점차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때로는 이들이 비난하는 현 정권보다 훨씬 더 잔혹한 면을 보여왔다. 특히 최근 연달아 자행한 테러행위는 공산반군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또 각 부족별 자치제를 주장함으로써 200여년 이상 유지해 온 국가 통합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네팔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도 공산반군이 오늘날의 세력으로 성장하도록 도운 요인이 되었다. 중서부의 주요 지역을 장악한 반군 세력에 대해 네팔 정부는 협상으로 대응하지 않았으며, 적절한 군사행동으로 맞서지도 않았다. 정부의 어정쩡한 자세가 이들의 성장을 묵과한 꼴이 돼버렸다.

    그러나 평화협상이 결렬되고 전국에서 유혈사태가 빈발하자 네팔 정부는 ‘마오쩌둥주의자들을 모두 무장해제시킬 때까지 테러와의 전쟁을 그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데우바 총리는 비상사태 선포 이틀 후인 11월28일 각국 대사들을 초청해 현 상황을 브리핑했다. 이 같은 총리의 발빠른 대응은 국제사회의 동정 여론을 성공적으로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마오쩌둥주의자들은 방글라데시와 인도 동부의 여러 주에도 상당한 세력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주변국들도 치안과 국경지대 검문 검색을 강화하는 등 네팔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분위기다. 네팔의 붉은 바람이 자국에까지 몰아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도미노 현상’을 막는 데 주력하는 셈이다.

    현재 데우바 정권은 비상사태 선포에 대해 3개월 이내에 의회의 추인을 받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추인을 위해서는 의회 정족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 205석 중 98석을 확보한 야당들이 모두 비준을 거부하고 있어 앞길이 험난하다. 만약 의회가 비준을 거부한다면 의회는 해산될 것이고, 야당측은 비상사태 아래에서의 언론자유와 사생활의 자유 침해 문제를 크게 부각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할 것이다. 공산반군과의 무력 투쟁과 의회에서의 득표전이라는 두 전쟁에서 데우바의 네팔 국민회의 정권이 어떤 필살기(必殺技)를 펼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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