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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 덩어리’ 화장품이 뭐기에

심각한 부작용 ‘비손크림’ 10월부터 판매 금지 … 인터넷 통해 유통 일부 여성들 계속 사용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수은 덩어리’ 화장품이 뭐기에

‘수은 덩어리’ 화장품이 뭐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1년을 치료받았고, 밤마다 화이트닝 제품을 떡칠해도 효과가 없던 기미가 그 약 2주 사용으로 완치되다니…. 사실 지금도 믿어지지 않아 자고 일어나면 거울부터 들여다보곤 해여. 꿈은 아닌지, 혹시 또 생긴 건 아닌지. 수은의 함량이 많아 문제가 있다는 얘긴 좀 안타깝긴 해여. 물론 노화를 앞당기는 문제는 있다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가꾸면 괜찮겠져. 님들도 비손크림 이용해 마니마니 이뻐지세염.”

12월12일 한 여성 전용 인터넷 사이트 피부미용 게시판에 올라온 네티즌의 글이다. 20대 여성으로 보이는 이 네티즌의 글은 아무리 좋은 화장품을 이용해도, 심지어 병원에서조차 치료 못한 기미가 ‘비손크림’이라는 ‘약’을 이용한 지 2주일도 안 돼 깨끗이 없어졌다는 내용. 이 말이 사실이라면 비손크림은 여성들에겐 분명 꿈의 의약품이 아닐 수 없다. 단 2주 만에 기미가 감쪽같이 없어지고, 부작용조차 없다면 어느 여성이 이 약품을 쓰지 않을까.

과량 노출 땐 언어·시각 장애 유발

하지만 비손크림은 의약품이 아니라 화장품이다. 그것도 중국에서 밀수입한 화장품. 문제는 이 여성의 글 내용에서도 언뜻 비쳤듯 비손크림은 그 안에 수은이 다량 함유된 것으로 밝혀져 국내에선 판매가 금지된 제품이란 점이다.

지난해 초부터 미용실을 중심으로 젊은 여성들 사이에 피부 미백제로 폭발적 인기를 누려온 이 화장품이 보건당국의 ‘철퇴’를 맞은 시점은 지난 10월. 이 크림을 바른 후 얼굴에 각질과 수포가 생기는 등 심각한 부작용 사례가 알려지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본격적인 단속에 나선 것. 식약청은 11월20일 “지난 9월20일부터 두 달 동안 남대문 수입상가와 미용실, 슈퍼마켓, 미용실, 스포츠센터 등에서 유통되는 비손크림 30여개를 수거해 조사한 결과, 이 크림의 수은 함유량이 많게는 허용기준치(1ppm)의 1만9000배, 적게는 8890배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식약청은 곧바로 비손크림 판매를 금지했고, 보건당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비손크림을 밀수입한 업자를 찾기 위해 경찰에 수사 의뢰한 상태다.



하지만 잇따른 언론 보도와 당국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20대 여성들의 비손크림 사용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옹호론이 줄을 잇는 형편이다. 다음은 12월13일 또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20대 여성의 경험담.

“화장품에 들어 있는 수은이 몸에 좋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50~60년 더 산다고 볼 때 우리 몸에 얼마나 축적되겠어요. 부작용이 생기려면 100년은 사용해야 하는 거 아닐까여. 몸에 안 좋은 거 알면서 패스트푸드 먹는 거랑 다를 거 없어여. 저도 넘 좋은 효과를 봤어염….”(수호천사)

즉 수은이 다량 함유돼 있더라도 현재 부작용이 없다면 괜찮지 않느냐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정말 그럴까.

‘수은 덩어리’ 화장품이 뭐기에
“수은은 미백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의학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피부를 통해 흡수되면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은 물론, 장기간 유출되면 피부의 색소침착을 일으킬 수 있다. 문제는 과량 노출될 경우 언어장애와 시각장애를 일으키는 등 신경계에 이상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공기 중에 극미량이 유출돼도 문제가 되는 수은을 얼굴에 바르는 여성들을 이해할 수 없다.” 국립 독성연구소 안전성평가과 서수경 박사는 단호하게 여성 네티즌들의 주장을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이상한 것은 식약청과 경찰의 단속 때문에 중국 보따리상의 비손크림 밀수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도 여전히 비손크림을 구입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식약청의 단속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9월 초까지 비손크림을 판매했던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의 한 미용실 업주는 “지난 10월 수은 발견 보도가 처음 나간 후 공급도 끊기고 남아 있는 재고도 없는 상태다. 현재 판매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들 네티즌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손크림을 구입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바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비손크림이 버젓이 팔리고 있었던 것. 웬만한 검색 사이트에서 ‘비손크림’을 써넣고 두드리기만 하면 이들 판매 사이트가 4, 5개 정도 뜬다.

중국 베이징의 한 백화점에서 소개하는 유명 한방 및 특산품을 알선 판매하거나 중국 현지에서 직접 발송해 준다는 한 인터넷 쇼핑몰(WWW. HANBA×××××××.COM). 비손크림에 대한 선전이 A4용지 두 장 분량에 소개돼 있다. 비손크림이 주근깨, 잔주름 제거와 미백효과에 특효가 있고 100% 한약재로 구성돼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게 주 내용이다.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얼굴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각질이 벗겨지거나 물집이 생겨도 이는 정상적인 과정이니 겁내지 말고 계속 사용하면 1~2주 안에 깨끗한 피부로 변한다”는 부분. 국내 화장품에서는 명백히 ‘부작용’으로 취급되는 부분을 이들은 ‘사용시 반드시 거쳐야 하는 반응’이라고 소개한다.

사이트에 적힌 상담 전화번호로 이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더니 상담원은 “의심나면 사용하지 말라”고 화부터 낸다. “이미 중국에서 효능이 입증됐고, 우리는 북경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화장품을 고객에게 연결해 주고 커미션만 챙기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는 것. 또 “대량 주문이 힘들어 한 번에 3, 4개씩밖에 주문을 하지 못하고, 3만원에 팔아도 커미션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나름의 어려움도 호소했다.

하지만 그들이 입금하라고 알려준 통장번호는 국내 은행의 것이었으며, 개당(30g, 한 달분) 가격도 남대문시장 수입상가 상인들이 예전에 팔았던 판매가 1만3000원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 “부작용이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묻자 “사이트 홈페이지에 쓰인 ‘알림 사항’을 읽지 못했느냐”고 되묻는다. 알림 사항을 확인해 보니 “물품의 선택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사용자의 몫”이라고 쓰여 있다.

또 다른 비손크림 판매 사이트(kos××××.com)는 아예 판매 상담코너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다. 구입 신청은 반드시 e-메일로만 가능하고, 살 사람이 자신의 이름, 전화, 주소, 상품명과 수량, 언제까지 필요한지를 적어 보내면 사이트 운영자가 다시 연락해 주도록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일단 위장 주문을 e-메일로 내고 전화를 기다렸더니 이틀 후 운영자에게 전화가 왔다. 자신을 중국 내 조선족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 사이트는 중국 내 인터넷 서버를 사용하기 때문에 우편 비용이 많이 들어 가격도 비싸고(2만8000원) 20개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와 달리 기자의 휴대폰에 찍힌 그의 전화번호는 서울 지역이었으며, 이 사이트의 서버는 국내의 한 인터넷 회사 서버를 임차한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제시하며 따지고 묻자 사이트 운영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하며 이해를 구한다. “보따리 장사들의 밀수입이 끊기면서 비손크림 확보 방법이 없어졌다. 그래서 중국 현지에서 우편으로 받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우편을 통하면 세관에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물건을 구할 수 있다. 식약청의 단속이 있은 뒤 주문이 폭주하고 2, 3개씩 팔면 택배 비용이 너무 많이 나간다.”(K사이트 운영자)

이에 대해 식약청 의약품관리과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을 통한 비손크림 거래는 중국인과 국내 구매자가 직접 거래하는 경우가 많고, 중간에서 판매 이익을 챙기는 사이트 운영자가 있지만 자신은 소개해 주고 배달료만 받았다고 하면 할말이 없는 게 사실이다. 판매나 영리 목적이 아닐 경우 개인이 구입한 물건을 단속할 권한이 우리에겐 없다”고 해명했다. 결국 인터넷을 이용하면 판매 금지된 비손크림을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고, 업자들은 잇속을 챙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속의 맹점을 이용해 구입한 중금속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마냥 좋아하는 일부 여성들의 10년 후 모습이 자못 궁금하다.



주간동아 2001.12.27 315호 (p48~49)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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