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5

2001.12.27

국방부, 美軍 편들기 돌격 앞으로?

국민 분노 불구 “용산기지 내 아파트 허용” … ‘기지 이전 합의 유효’ 진실성 의문

  • < 성동기/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 esprit@donga.com

    입력2004-12-14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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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美軍 편들기 돌격 앞으로?
    서울시 노른자위 땅 87만평을 차지하고 있는 미군 용산기지가 ‘부담스런’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12월7일 저녁 주한미군이 용산기지 안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동아일보 가판을 통해 특종 보도되면서 불거진 용산 문제는 이제 ‘용산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이전론으로까지 번지며 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사태가 이처럼 크게 불거진 데는 매끄럽지 못한 한미 협조체제가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통적인 한미 동맹관계를 고려할 때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논의했더라면 차분하게 따질 수도 있었다는 것.

    특히 국방부는 용산기지 내 아파트 건설계획이 알려지자 처음에는 “미군으로부터 아무런 통보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구두 통보를 받았다”에서 “서류로 받았으나 비공식 통보였다” 등으로 계속 말을 바꿔 대국민 신뢰성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우를 범했다.

    국방부가 최초로 용산기지 내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기는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시설 및 구역 분과위원회 회의가 열린 5월17일. 당시 주한미군은 아파트 건축계획을 브리핑한 지 얼마 후 분과위원회 대표인 데이비드 킹스턴 대령이 서명한 문서를 한국측에 발송했다. 국방부 말대로 비공식 통보든, 미군 주장대로 공식 통보든 간에 주한미군은 올 4월 발효된 개정 SOFA에 신설된 통보 의무를 이행한 셈이다.

    국방부는 이어 “받았으나 SOFA에 규정된 공식 통보가 아닌 비공식 통보”라고 주장, 주한미군이 국방부에 대해 반박 입장을 내는 보기 드문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군을 감싸주기 위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결국 주한미군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국방부가 이 문제에 관한 입장 자체를 바꾼 것이라는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의 평가는 사실과 다르다. 사안 자체가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것을 꺼린 국방부 실무자가 진행상황에 대한 사실 확인을 번복한 바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방부 내부 분위기는 ‘초지일관 찬성’에 가깝다. “우리 군을 위해 관사를 짓는 것과 다른 게 무엇인가”라는 반문이다. 주한미군이 현실적으로 한국의 방위에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처우나 환경문제에까지 딴지를 걸 이유가 없다는 것. 이에 대해 국방부 내에서 다른 의견을 듣기는 쉽지 않다.

    국방부 관계자는 “수십년 전 건립된 노후 숙소는 주한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심각한 요인이면서 한국 근무를 제안받은 군인 두 명 중 한 명은 한국 근무를 기피하는 실정(상자기사 참조)”이라며 “군사동맹 관계인 주한미군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더욱이 SOFA는 기지 내 건축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나 지자체와 협의(consultation)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consultation이라는 용어는 ‘의견을 물어본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SOFA에 ‘상호 합의’(mutual agreement)로 규정돼 있지 않은 이상, 이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미군에 있는 셈. 결국 국방부는 아파트 건축을 막을 이유도,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하다. 직접 체결한 SOFA 협정을 위반해 가며 반대입장에 설 경우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남기 때문이다.

    악화되어 가는 국민 정서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13일 열린 당정협의를 통해 “용산기지 아파트 건축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서울시와 정치권이 반대 목소리를 높이자 국방부라도 확실히 미군 편을 들어주겠다고 악역을 자임한 셈이다. 이미 갈등이 빚어진 상황에서 우회보다 정면 돌파가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오히려 제도적으로 우리측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도 반대를 고집하는 서울시와 여야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내부 분위기도 감지된다. 다만 국방부로서는 용산기지 아파트 문제가 확대 재생산되면서 반미 감정이 확산되지 않을지 내심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건설 반대가 주한미군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확산돼 양국 동맹관계가 약화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나 국방부가 어렵게 속내를 드러낸 이후 국방부 웹사이트에 비난의 글이 쏟아지고 시민단체가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국방부 현판이 계란세례로 더럽혀지기도 했다. 또한 일부 시민단체는 국방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주한미군으로 향하던 화살이 국방부 쪽으로도 날아오는 상황이다.

    결국 문제는 단순히 아파트 건축 반대에서 벗어나 용산기지 이전 논의 공식 재개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여론의 본질은 아파트가 수도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도시계획법상의 자연녹지 지역에 지어진다는 데 있기 때문. 그러나 이에 대한 국방부 입장은 더욱 당혹스럽다.

    한미 양국은 이미 90년 6월 용산기지 반환을 약속하며 정식 합의각서(MOA)까지 체결한 바 있다. 또한 한미 양국이 용산기지 이전을 포함한 용산 문제를 다루는 고위급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93년 6월 오산 평택 등의 이전 예정부지 매입 취소를 선언하면서 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아파트를 지으면 용산기지 이전계획이 물 건너 간다는 지적과 관련, “대체부지와 이전비용만 마련되면 언제든지 용산을 떠나겠다”는 이전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용산기지 내 대규모 아파트 단지 건설이 용산기지 이전계획의 백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

    그러나 의혹의 눈초리는 매섭기만 하다. 특히 지난해 5월 주한미군이 한미 양국간 합의된 용산기지 이전계획을 철회해 달라는 요청을 우리측에 해온 것으로 최근 확인되면서 조건만 충족되면 언제든지 떠나겠다는 말의 진실성이 더욱 의심받게 됐다.

    주한미군의 확고한 의지와 국방부의 부실한 초기대응이 맞물려 커져버린 이번 사태는 향후 미군-한국국민 관계를 규정짓는 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결국 우리측의 양보로 마무리될지, 아니면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논의되는 전기가 될지, 시선은 다시 국방부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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