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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핵폭탄 ‘김은성 게이트’

정치권 뒤흔드는 ‘더러운 전쟁’

국내 정보 주물렀던 김은성 의혹 일파만파 … ‘머니게임’ 가담 은폐·축소 ‘정권의 충격’

  •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정치권 뒤흔드는 ‘더러운 전쟁’

정치권 뒤흔드는 ‘더러운 전쟁’
김은성판 ‘판도라의 상자’가 드디어 열리는가. 서울지검 특수1부의 MCI코리아 소유주 진승현씨 불법 대출 및 전방위 로비 사건 재수사를 통해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 관련 의혹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진승현 게이트’의 몸통이 김은성씨였을 뿐 아니라 작년 검찰의 ‘진승현 게이트’ 수사 때도 검찰과 여권 핵심부를 압박해 검찰 수사를 축소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의 최고위 책임자가 코스닥 기업인의 ‘머니 게임’에 개입된 것도 충격이지만 이를 은폐 내지 축소하기 위해 정권 핵심 관계자들과 검찰 등 사정기관을 기만하고 사실상 협박한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아울러 그가 작성한 ‘진승현 리스트’가 공개되면 정가에 엄청난 파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리스트에는 진승현씨의 로비 대상이 됐던 정·관계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변에서는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 과정에도 김은성씨의 ‘음모론’이 거론되고 있다. 진승현씨에게서 1억원을 받아 그중 일부를 작년 8월 당시 신광옥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최택곤씨는 검찰 출두 직전 “김은성 전 차장이 검찰 수사에 위협을 느끼자 검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거짓 정보를 흘려 나를 음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들도 ‘김은성 음모론’은 “유력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정치권 뒤흔드는 ‘더러운 전쟁’
국정원 내에서 ‘진승현 게이트의 본질은 김은성 게이트’라는 얘기는 구문에 속한다. 김은성씨가 전방위 로비의 전 과정을 주도하다시피 했고, 진승현씨는 오히려 조역에 불과했다는 것. 또 진씨에게서 금감원 조사 무마 등의 명목으로 1억4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2월 초 검찰에 구속된 정성원 전 국정원 경제과장은 김은성씨의 ‘행동대장’이었다는 것.

김은성 전 차장과 정성홍 전 과장이 ‘특수 관계’였다는 의혹은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검찰은 정성홍씨가 진씨에게서 받은 수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검찰 출입 국정원 직원 김모씨에게 김은성씨가 10만원짜리 수표로 1000만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또 정성홍씨를 통해 진승현씨의 로비자금 중 일부가 김은성씨 주변으로 흘러든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내에서도 두 사람의 밀착 관계를 두고 말이 많았다. 정성홍씨는 올 6월 한직인 기획조정실 산하 정보관리국으로 발령받았는데도 김은성 당시 차장 부속실로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했다는 것. 한 관계자는 “정성홍 전 과장이 김은성 차장 특명을 수행하고 다닌다고 말하는 통에 기조실에서는 정 전 과장이 정보관리국 일을 전혀 하지 않아도 문제 삼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김은성씨는 정성홍씨에 대한 국정원 자체 감찰에서도 정씨를 적극 비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내에서는 “올 초 감찰실이 감찰을 통해 정성홍씨가 ‘진승현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됐음을 확인하고 이를 임동원 당시 원장에게 보고했으나 임원장이 김은성씨에게 정성홍 처리 문제를 일임하면서 사건이 축소 은폐됐다”는 얘기가 있다. 한 관계자는 “당시 김은성씨는 정씨에게 감찰 자료를 넘겨줘 대책을 마련하도록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어떤 계기로 ‘유착’됐는지에 대해서는 얘기가 엇갈린다. 정성홍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은성 전 차장이 99년 1월 나에게 어떤 일을 시켜본 이후 중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 관계자는 “김영삼 정권 당시 오정소 차장의 측근 역할을 했던 정성홍씨가 오차장에게 부탁해 국회 전문위원으로 나가 있던 김은성씨를 본부로 불러들인 게 가까워진 계기였다는 정성홍씨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김은성씨가 당시 국정원을 퇴직하고 국회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업하던 형의 부도 때문. 퇴직금으로 형의 보증 선 부분을 정리해야만 했던 것. 오정소 전 차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내가 국정원을 떠날 때 김은성씨는 국회에 가 있었는데, 시점이 맞지 않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정성홍씨가 자신과 가까운 부하 직원이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경위야 어찌 됐든 정성홍씨는 윗사람의 뜻을 실행하는 데 물불 안 가리는 스타일이어서 ‘돌격대장’ 일을 맡기기에는 적임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은성 전 차장이 작년 6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4급이던 정성홍씨를 3급이 맡는 경제2과장에 전격 임명한 것도 정씨의 이런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정원 내에서는 정성홍씨가 김은성씨와 진승현씨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정성홍씨와 진승현씨가 작년 1월 한국 투자를 모색하는 한 일본인 기업인과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만난 것으로 드러난 점에 비춰, 정씨가 그 직후 진씨를 김은성 전 차장에게 “전도 유망한 벤처기업인”이라며 소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최근 ‘진승현 게이트’가 다시 불거지면서 대부분의 언론이 진승현씨가 김은성씨에게 로비하기 위해 그의 친구인 국정원 출신 김재환씨를 MCI코리아 회장으로 영입한 것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국정원 고위관계자는 “사실은 김은성씨가 김재환씨를 진승현씨 회사에 파견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김은성씨와 진승현씨가 작년 8월 이전부터 관계를 맺었음을 암시했다.

김은성 전 차장은 무엇 때문에 ‘진승현 게이트’에 깊이 개입한 것일까. 야당의 주장대로 여권의 통치자금 조달 창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진승현씨를 끌어들인 것인가.

지난 98년 정권교체 직후 과거 안기부 경제처가 여권의 선거자금을 조달해 온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안기부 경제처 원모 단장은 97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의 요구에 따라 한국통신과 한국중공업에 압력을 넣어 한나라당에 대선자금으로 각각 1억원과 2억원을 전달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났던 것. 따라서 과거의 경험을 통해 볼 때 현 정권에서도 국정원이 정치자금 조달에 개입했으리라는 게 야당의 추론이다.

그러나 국정원 내부에서는 김은성 전 차장의 개인 비리 차원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권이 국정원을 동원해 작년 총선자금을 조달했다고 보기에는 앞뒤가 안 맞는 구석이 많기 때문. 우선 정성홍씨가 작년 총선 직전 진승현씨를 데리고 목포에 내려가 김홍일 의원에게 선거자금 전달을 제의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부터가 이상하다는 것. 여권이 국정원을 동원한 것이라면 김홍일 의원부터 돈을 받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진승현씨 자금의 정치권 유입 내역이 담겨 있다는 ‘진승현 리스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국정원 관계자들은 김은성씨의 ‘인사치레’ 차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과거 안기부 간부들이 선거 때 재계 인사들을 동원, 정치 실세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도록 함으로써 실세들과 유착 관계를 맺은 다음 반대급부로 안기부 내에서 출세를 보장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은성씨의 행동 역시 여기에 해당하지 않겠느냐는 것.

그러나 김은성씨는 상황이 바뀌자 ‘진승현 리스트’를 오히려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는 ‘방패막이’로 활용해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작년 말 진승현씨 구명운동이 실패하고 검찰 수사가 깊숙이 진행되자 김씨가 자신과 정성홍씨 이름을 빼고 여권 핵심 인사들이 포함된 김은성판 ‘진승현 리스트’를 만들어 이를 근거로 청와대와 검찰을 압박해 검찰 수사를 축소시켰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진승현 리스트’에 야당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는 정황은 김은성씨의 평소 발언에서 감지된다는 게 국정원 관계자들의 전언. 한 관계자는 “김은성씨와 정성홍씨는 올 들어 ‘진승현 게이트’가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 관심사였는데, 이들은 평소 “적어도 정권교체 이전에는 절대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고 전했다. 야당에도 ‘보험’을 들어놓았음을 강하게 암시했다는 것.

정치권 뒤흔드는 ‘더러운 전쟁’
국정원에서는 또 ‘이용호 게이트’가 실체 이상으로 증폭된 과정에 김은성씨는 몰라도 정성홍씨의 ‘장난’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신건 원장이 정씨를 올 6월 한직으로 내보낸 이후 정씨가 ‘김홍일 의원과 김형윤 경제단장, 정학모 LG스포츠단 사장이 엄청난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 정학모 사장은 진로그룹 경영권 분쟁에 개입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김홍일 의원 주변에서는 정성홍씨가 김의원을 물고늘어진 것은 신건 원장 취임 이후 정씨가 김의원에게 SOS를 보냈는데도 이를 거부한 데 대해 앙심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앞의 국정원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이용호 게이트’의 몸통이 김홍일 의원과 권노갑 전 최고위원, 정학모 사장이라고 거론했을 때 정성홍 전 과장의 발언과 뉘앙스가 비슷해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신건 원장의 취임은 김은성씨와 정성홍씨에게 ‘위기’로 다가왔다. 신원장이 취임 직후 이모 당시 감찰실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정성홍씨에 대한 감찰 내용을 파악했다는 정황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 정성홍씨는 정권교체 직후 대기발령을 받은 자신의 구명운동에 대해 신건 당시 차장이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신건 원장에 대한 이들의 반격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신원장과 가까운 C모씨는 “신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 쪽에서 감청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나중에 국정원 관계자를 통해 C씨가 신원장과 김동신 국방장관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추천했다고 정성원씨가 주변에 떠들고 다닌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직감적으로 김은성씨 쪽의 ‘장난’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C씨는 이어 ‘신원장과 김동신 장관 추천’ 운운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김은성씨는 물론 한 인터뷰에서 “신건 원장은 평소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신건 원장에 대한 반격은 터무니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정원 내에서는 김은성씨가 정성홍씨의 ‘신원장 반격 공작’에 대해 최소한 사후에 보고는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국정원의 조직논리상 정성홍씨의 ‘단독 플레이’로 보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

국정원 관계자들은 “김은성씨의 이런 ‘탈선’이 가능하게 된 구조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 정부의 쇄신조치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차장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대에나 가능한 일을 했다는 것은 현 여권의 국정원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

국정원 관계자들은 특히 원장 인사 실패를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99년 5월 이종찬 원장이 물러난 이후 취임한 천용택 원장은 미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해 말 중도하차했고, 후임 임동원 원장은 아예 국내 파트를 김은성씨에게 일임하다시피 했다. 결국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인수위에 파견되는 등 정권교체 이후 국정원 내 ‘실세’로 군림했던 김은성씨에게 과도한 힘이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게 문제였다는 얘기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얘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주간동아 2001.12.27 315호 (p18~21)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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