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1

2001.11.29

짙은 관능 뒤에 숨은 따끔한 교훈

  • < 노성두/ 미술사가·서울대 미학과 강사 > nohshin@kornet.net

    입력2004-11-24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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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관능 뒤에 숨은 따끔한 교훈
    어여쁜 그림이다. 둘러앉은 소년들도 사랑스럽다. 하나같이 빼어난 외모하며 옥처럼 매끈한 피부는 갓 쪄낸 찹쌀떡처럼 싱그럽고 찰지다. 소년 셋이 악기 하나씩 들고 연주를 준비하고 있다. 그림 왼쪽 구석에 날개 달린 아모르는 화살통을 비끌어 매고 딴전을 피운다. 아모르는 어엿한 신격인데도 미소년들 틈에 끼니까 동네 어귀의 개구쟁이처럼 숫되어 보인다.

    그림 한복판, 열네 줄 배불뚝이 류트를 끌어안은 소년은 눈에 우수가 한 방울 맺혔다. 금방이라도 또르륵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소년들은 이렇게 둘러앉아 무슨 노래를 준비하고 있는 걸까? 탁자 위에 펼친 악보를 몰래 훔쳐보니 사랑의 노래다. 귀밑머리가 민들레 씨앗처럼 솜털 뽀송한 애송이 꼬마들이 웬 사랑의 노래?

    그림을 주문한 사람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 낮에는 로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술 애호가로 소문났지만, 일단 해가 지고 나면 허리 낭창한 미소년한테 샛눈이 돌아가는 좀 엉큼한 위인이다. 그래도 바티칸에 뒷줄이 든든한 세도가라 예술계와 사교계에서는 제법 행세를 했다.

    짙은 관능 뒤에 숨은 따끔한 교훈
    델 몬테 추기경의 저택에서는 밤마다 촛불이 휘황한 안뜰 정원에서 요정처럼 어여쁜 아이들이 포도주와 꽃의 향기에 흠뻑 젖어 콘서트를 벌이곤 했다. 화가도 이따금씩 초대받았을 테니 그림에 쓸 모델은 어렵지 않게 조달했을 것이다. 추기경은 ‘소년들의 콘서트’를 받아들고 사탕을 얻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고 한다. 제 취미랑 딱 맞아떨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이 그림은 공간 구성이 좀 답답해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납작한 토끼집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원래는 안 그랬을 텐데, 그림 왼쪽과 아래를 바투 잘라내면서 답답해지고 말았다. 멀쩡한 그림을 왜 망가뜨렸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지만, 예전에는 아무리 대가들 명작이라도 서슴없이 잘라냈다. 대개 옆 그림과 사이즈를 맞추려고 잘랐는데, 같은 방에 걸린 그림이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으면 꺽다리와 땅딸이처럼 볼썽사납다는 게 그 이유였다. 목수가 만들어온 액자와 안 맞아도 눈 딱 감고 잘라냈다. 하나로 붙은 연작 그림을 따로 떼서 팔아먹는 일도 예사였다. 심지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 그린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 벽화도 출입구를 새로 낸다고 예수가 앉아 있는 식탁 아랫부분을 잘라내기도 했다. 그 난리 덕분에 예수의 다리가 두 쪽 다 불구가 된 일은 르네상스 미술사에도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일화다.



    카라바조의 콘서트 그림은 척 보면 간단한데, 뜻밖에 해석이 잘 안 된다. 주문자 델 몬테 추기경이 저택 내실 깊숙이 숨겨놓고 몰래 즐긴 그림이라고 치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해석을 괴짜 성직자의 미소년 취향으로만 몰아붙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소년들의 콘서트 주제는 사실 종교적인 배경을 깔고 있다. 이 주제의 첫 태생은 아기 천사들이었다. 천상의 정원에서 성모자를 시중하며 위로하거나, 성가족이 헤롯왕의 칼날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할 때 여정의 피로를 음악으로 달래주던 착한 천사들이 날개를 벗고 옷을 갈아입은 것이 바로 소년들의 콘서트가 되었다. 중세시대 내내 성가족을 시중하던 아기 천사들이 르네상스 들어 하루아침에 즐거운 사교모임에 분위기 띄우는 영계들의 백 밴드로 변신한 것이다.

    천사들의 놀라운 변신은 철학과 신학에 몰아친 고대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 애당초 고대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음악과 종교를 한 묶음으로 보았다. 그보다 앞서 죽음의 세계를 방문하고도 멀쩡히 살아 돌아온 오르페우스도 음악을 부활의 도구로 삼았던 적이 있었다. 기독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한술 더 떠 논문 ‘음악에 관하여’에서 음악의 기초를 이루는 수의 비례와 우주의 건축을 하나로 묶어 설명했다. 음악의 신학적 의미를 고대 철학의 눈으로 해석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니 르네상스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 콘서트 그림에서 미소년들이 아기 천사 자리를 꿰찬 건 당연했다. 아마 델 몬테 추기경도 이런 야해빠진 그림을 주문하면서 내심 몹시 떳떳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금의 음악이론을 한 코에 꿰뚫었던 델 몬테 추기경이 실속도 없이 그저 입맛만 다시려고 그림 값을 흔쾌히 지불했을까? 루벤스의 것보다 무려 열 배나 비쌌다는 카라바조의 그림 값을?

    카라바조의 그림 주제는 진정한 의미의 콘서트라고 보기는 힘들다. 소년들이 악기를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연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는 장면일까? 그것도 아닌 듯하다. 아니, 소년 셋은 아무리 봐도 합주할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짙은 관능 뒤에 숨은 따끔한 교훈
    우선 악기들이 어울리지 않는다. 류트와 바이올린은 같은 현악기니까 그렇다 쳐도 오른쪽 구석에 삐죽 머리를 내민 시커먼 악기는 입으로 부는 피리다. 그것도 큼직한 사냥용 뿔피리다. 이 악기는 맹수를 발견했을 때 사냥개들더러 겁먹지 말라고 기를 돋우는 데 주로 썼다고 한다. 사냥용 뿔피리와 류트는 한자리에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악기들이다. 신화에 나오는 사티로스의 쌍피리라도 합주에 끼워줄까 말까 한데.

    악기만 그런 게 아니라 세 소년의 자세도 알쏭달쏭하다. 뿔피리 소년은 등을 돌리고 어디론지 총총 서두르는 품새고, 정면으로 앉은 류트 연주자는 현을 조이면서 음을 고르기에 바쁘다. 한편 탁자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걸터앉은 소년은 바이올린을 옆으로 제쳐놓고 악보 공부에 여념이 없다. 이래 갖고 합주가 제대로 나올 수 있을지.

    합주를 할 게 아니라면 소년들은 왜 악기를 들고 모여 있을까? 플라톤을 펼치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16세기 인문주의자들이 즐겨 읽었던 책이다. 플라톤은 음악을 세 종류로 나누고 그 특성을 나열한다(국가 III, 398e, 399a-d). 예컨대 리디아풍(風)은 입으로 부는 관악기로 연주하는데, 여성적이고 나약해빠져 못쓴다는 것이다. 또 이오니아풍은 다수의 현을 거느린 현악기로 연주하는데, 이건 영혼을 무르게 하고 곯아터지게 하니 술자리 음악으로밖에 쓸 데가 없다고 했다. 또 이 둘은 플라톤이 제창한 이상국가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딱 하나 이상국가에 적합한 음악이 있는데 그건 도리아풍의 음악이다. 전시에 용기를 주고 평화시에 이성을 베푸는 도리아풍의 음악은 관악기나 현악기로는 곤란하고 아폴론의 악기, 곧 리라나 키타라를 가져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카라바조 그림을 보면 플라톤의 음악이론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다만 아폴론의 악기를 현대의 바이올린으로 바꾸어 그렸을 뿐이다. 이건 문제가 안 된다. 카라바조 자신이 워낙 고전의 현대적 해석으로 이름 날린 화가이기도 하고, 르네상스 이후 아폴론이 거북 뼈로 만든 현금 대신 바이올린을 들고 나타나는 일이 드물지 않았으니까. 예컨대 라파엘로가 그린 ‘파르나소스’의 아폴론이나 도소 도시의 ‘아폴론’도 보란 듯이 바이올린을 번쩍 들고 있다.

    그런데 1549년 음악이론가 치릴로가 주교 베카델리에게 보낸 편지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해석의 길이 열렸다. 치릴로는 플라톤의 음악이론을 조금 비틀어 세 가지 종류의 음악을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음악계에 빗댄다. 과거 원시적인 음악이 씩씩하고 용기를 불어넣기에 적합했다면, 오늘날 물러터진 연회용 음악은 종교적·도덕적 해이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장차의 음악이 나아갈 방향은 우리가 나서서 올바른 방향으로 계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었다. 주교에게 쓴 편지니까 자연히 추기경과 교황에게도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시기가 미묘했다. 마침 서슬이 시퍼렇던 바티칸의 반종교개혁이 막 불붙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치릴로는 혹시 한발 앞질러 가톨릭의 음악 정책 구미에 딱 들어맞을 이론을 던진 게 아닐까? 플라톤의 권위를 등에 업고 고대 음악이론을 종교적으로 재무장하는 과정에서 악기마다 도덕적 가치를 덧씌운 것이라면? 그렇다면 델 몬테 추기경이 미술의 수단을 빌려 이 새로운 이론을 공표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세 소년을 관찰하면 시간을 세 가지 흐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셋 가운데 현재는 정면을 보고 앉은 소년이다. 조율을 하고 있으니 연주가 임박했다.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도 ‘현재성’의 회화적 표현으로 잘 어울린다. 그 다음, 과거는 뿔피리 소년이다. 등을 돌리고 어깨 너머 눈길을 던진다. 뒤돌아보는 시선은 ‘회고적’(retro-spettare) 시제로 읽을 수 있다. 얼굴도 나이가 들어 보이고 셋 가운데 머리카락도 제일 길다. 연주를 마치고 퇴장하는 자세다. 마지막, 바이올린 소년은 미래가 된다. 체구가 작고 제일 어려 보인다. 또 내일의 주인공답게 본디 모습을 ‘아직’ 드러내지 않았다. 바이올린 크기도 어린이용이다. 손가락으로 악보를 짚어가면서 공부하고 있으니 나중에 제 순서를 기다려서 악기를 집어들 것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에는 이상한 구석이 하나 더 있다. 현을 조율하는 현재 시점의 소년이 왜 입을 벌리고 있는지가 문제다. 지금까지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소년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한 손으로 현을 조이면서 입으로는 노래를 부른다? 어설픈 주장이다. 반주와 노래가 따로 논다는 이야기니까.

    소년이 입술을 벌리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노래를 부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류트 연주자가 제 입을 통해 자신이 기억하는 ‘자연’의 음을 뱉고, 그 음을 기준삼아 현의 긴장을 맞추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즉 악기를 조율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새로운 이론이 하나 첨가된다. 인간의 목소리를 자연의 소리로 보고 악기가 내는 소리를 예술의 소리, 곧 인간이 만든 예술의 소리로 보는 관점이다. 이 이론은 카라바조 그림이 그려지기 10년쯤 전인 1588년에 당대 최고의 음악 이론가 자를리노가 베네치아에서 출간한 음악이론에도 나오니까 델 몬테도 그 정도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카라바조 그림에서 류트 연주자의 손은 입의 지시를 따른다. 예술이 자연을 본보기삼아 배운다는 뜻이다. 자연은 예술의 영원한 어머니, 그리고 본받을 만한 교사라는 ‘자연 우위론’을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이건 단순한 풍속 그림이 아니다. 미술을 통해 공공 음악정책을 선전하는가 하면, 예술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따끔한 교훈을 담은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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