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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연극인생 ‘무대미술계의 대모’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35년 연극인생 ‘무대미술계의 대모’

35년 연극인생 ‘무대미술계의 대모’
“만날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 인터뷰는 무슨 인터뷰야.”

여성부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선정한 ‘제1회 비추미(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과 같은 존재) 여성대상’ 수상자 중 한 명인 이병복씨(75)를 찾아갔을 때, 그의 오래된 장충동 작업실은 겨울맞이 공사가 한창이었다.

여성부 신설 원년을 맞아 제정된 이 상에서 이씨는 한국 연극계에 무대미술 분야를 독자적인 영역으로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정작 본인은 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경기도 금곡의 박물관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해요. 이건 보통 박물관이 아니에요. 아홉 채짜리 한옥인데, 말하자면 토털 예술공간이지. 마당에선 연극하고, 방 안에선 전시회 하고, 각종 춤판과 콘서트도 열 수 있는 곳이에요.”

젊은 시절 파리에서 돌아와 연극을 시작하면서 이씨는 화가인 남편 권옥연씨(79)와 함께 다짐한 일이 있었다. ‘이다음에 작은 시골에 아름다운 연극마을을 세우자’는 것. 남편의 호를 따서 ‘무의자’(無依子)라고 이름 붙인 이 박물관은 이들 노부부의 꿈의 결정체인 셈이다.



한국 무대미술계의 대모로, 자칭 ‘뒷광대’라는 말로 자신을 설명하는 이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1966년 극단 자유를 창단해 35년 동안 연극과 함께 살아왔다. 그녀는 우리 무대미술을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독보적 존재로 알려져 있다.

“60년대부터 외국 드나들면서 서양무대의 압도적인 기술과 미학적 완벽함을 목격했지요. 그저 좌절하기보다 우리만의 소재로 개성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자는 오기가 발동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78년 ‘무엇이 될꼬 하니’ 공연부터 무대미술과 의상을 겸업하면서 극단 자유의 연극 스타일을 독특하게 구축해 온 그는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무대를 향한 쉼 없는 열정과 예술혼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1.11.22 310호 (p97~97)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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