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0

2001.11.22

스타없이 대박영화 만들자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1-23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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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없이 대박영화 만들자
    몇 달 동안 시나리오도 제대로 읽지 않고 출연 여부에 대한 대답을 미루다 결국 거절해서 황당하게 만들거나, 수락한 뒤에는 언제까지 촬영을 끝내달라고 닦달하는 통에 아주 괴롭습니다.”

    언젠가 만난 충무로의 한 제작자는 스타에 목매는 자신의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제작자는 점찍어둔 여배우의 마음을 돌리려고 해외로 떠나는 그녀를 뒤쫓아 공항까지 카 레이스 벌이듯 달려가 간발의 차이로 설득에 성공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스타 캐스팅에 몸단 제작자와 캐스팅 담당자들은 목표물이 된 배우들의 촬영 스케줄을 일일이 꿰고 새벽부터 밤까지 촬영장을 쫓아다니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영화는 배우들이 다 만든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1000개의 제작사가 40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충무로에서 흥행에 안전핀 역할을 하는 톱스타라고 할 만한 배우는 겨우 열손가락으로 꼽을까말까 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수요와 공급의 극단적인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것.

    한석규 심은하처럼 충무로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거나 “노출은 절대 안 돼” “누구 아니면 같이 안 해” 하는 식으로 지나치게 몸사리는 스타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감독과 제작자들은 이제 새로운 캐스팅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중 하나가 ‘주인공의 그룹화’ 현상. 남녀 주인공 한두 명에게 영화의 사활을 걸기보다 여러 명의 연기자에게 고루 역할을 배분해 차별화된 전개 방식을 선보인다.



    스타없이 대박영화 만들자
    최근 큰 인기를 모은 영화 ‘킬러들의 수다’는 신현준 원빈 신하균 등 비교적 스타성이 높은, 그러나 혼자만 놓고 본다면 아직까지 스타성이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배우들을 한꺼번에 기용해 시너지 효과를 높였다. 박신양 외에 정진영 박상면 등에 고루 시선을 분산시킨 ‘달마야 놀자’, 이요원 김민선 조은지 이영진 등 한창 주목받기 시작한 얼굴들을 무더기로 내세운 ‘아프리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개봉한 ‘고양이를 부탁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같은 영화에서도 이런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이런 ‘그룹 주인공’은 이전의 1인 스타시스템을 대신해 ‘집단의 힘’을 내세우는 캐스팅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스타없이 대박영화 만들자
    아예 신인급 영화배우를 과감하게 기용하는 프로젝트도 늘고 있다. ‘버스, 정류장’의 김민정, ‘후아유’의 이나영,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임은경은 모두 영화배우로는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얼굴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통해 영화계에 진출하는 탤런트 김정은도 비슷한 경우다.

    ‘인텔리전트 스릴러 무비’를 내세운 영화 ‘H’를 제작하는 영화사 ‘봄’ 역시 영화는 처음인 남자배우 지진희와 탤런트로 낯익은 염정아를 주연으로 선택했다. 봄 기획실의 변준희씨는 “처음엔 A급 스타들이 물망에 올랐으나 캐스팅이 여의치 않으면서 신인으로 눈을 돌렸다. 스타의 고정화된 이미지보다는 신인의 잠재된 가능성과 캐릭터 동화능력이 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런 경우 촬영에 들어가기 전 오디션과 충분한 협의도 거칠 수 있어 제작하는 입장에선 더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영화는 영화 팬들에게도 새로운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 “2억원짜리 스타를 기용해 안전한 장사를 도모하는 것보다, 치열한 자세와 새로운 눈으로 스타를 만들어내는 것이 곧 우리 영화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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