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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五感을 자극하라”

신선한 역발상으로 고급 이미지 구축하는 브랜딩의 세계 … 한물간 한자어도 되살려놔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특명! 五感을 자극하라”

“특명! 五感을 자극하라”
시장 규모의 확장과 함께 브랜드 네이밍 작업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브랜드 하나를 내놓기까지 각고의 과정은 브랜드 출시와 동시에 잊히고 만다. 그러나 브랜드를 탄생시키기 위한 과정을 잘 살펴보면 성공하는 브랜드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상식을 뒤집는 의외의 발상으로 성공한 브랜드들은 회사 전체의 이미지를 바꾸어놓는 일도 있다. 닷컴만능의 인터넷 시대에 한자를 사용한 브랜드는 한물간 퇴물이라고 생각하기 십상.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을 보기 좋게 뒤집고 성공한 경우가 삼성물산 주택사업부문의 ‘래미안’(來美安)이다. 당시 삼성물산 주택사업부문은 삼성중공업이 ‘쉐르빌’이라는 브랜드로 분양시장에서 호조를 보이자 이에 맞설 만한 독자적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골몰하던 상황이었다.

삼성물산은 정보화, 환경친화, 개성화라는 아파트의 컨셉트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디지털 미래공간을 의미하는 ‘래’(來), 아름다운 환경공간을 뜻하는 ‘미’(美), 안전한 주거공간의 상징하는 ‘안’(安)이라는 3글자의 한자를 그대로 사용해 ‘래미안’(來美安)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다소 생소한 조합이지만 한자를 병기해 만든 상표의 이미지와 맞물려 이 브랜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특명! 五感을 자극하라”
이를 계기로 한물간 것으로 생각되던 한자 브랜드도 현대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잘만 포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삼성카드가 여성전용카드를 표방하며 내놓은 ‘지엔미(知&美)카드’나 모 건설회사의 ‘미라주(美來住)아파트’ 같은 브랜드들이 시장에서 관심을 끌 수 있었던 데는 ‘래미안’(來美安)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아파트 이름에 관한 한 최고 히트작은 쌍용건설의 ‘경희궁의 아침’. 종로구 내수동에 자리해 경희궁 터를 내려다본다는 점에 착안해 내놓은 ‘경희궁의 아침’은 ‘현대아파트’처럼 시공사 이름을 갖다 붙이거나 외국어 일색의 아파트 이름 브랜딩에 일대 혁명을 가져온 히트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멋들어진 이름을 지어놓고 나서도 회사측은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4대문 안에 근무하는 외국 대사관 직원, 상사원 등 외국인들을 주요 임대수요자로 꼽고 있는 만큼 ‘경희궁의 아침’이라는 이름을 외국인들을 위한 주소에 그대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민이 이들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 결국 거듭 고민 끝에 ‘킹스가든’(King’s garden)이라는 별도의 영문 명칭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경희궁의 아침’은 이름 자체도 독특하지만 한글과 영문 이름을 별도로 갖게 된 유일한 아파트라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



회사 CI작업에서의 브랜드 네이밍이야말로 회사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프로젝트다. 그러나 엉뚱한 데서 법률적 장벽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최근 ‘I’라는 영문 알파벳을 이용한 CI작업으로 성공 케이스로 평가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 현대산업개발은 이 브랜드를 만들 당시 현행 상표법상 LG나 SK처럼 영문자 두 자 이상인 경우는 상표 등록이 가능하지만 한 자로는 상표 등록을 할 수 없어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현대산업개발은 단순히 알파벳 ‘I’를 상표로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붉은색 바탕의 사각형에 흰색으로 ‘I’자를 새겨넣은 도형을 상표로 등록하는 우회 전략을 택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몽규 회장이 출자한 투신사를 ‘아이투신운용’으로 명명하기도 했으며 한때 회사 명칭을 ‘아이산업개발’로 변경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는 후문이다. 회사 명칭 변경안은 접은 상태이지만 현대측은 최근 종영한 MBC 드라마 ‘그 여자네 집’에 촬영 장소를 제공하면서 극중 차인표가 분한 장태주가 다니는 회사를 현대산업개발을 암시하는 아이산업개발로 표현해 적지 않은 광고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방식의 협찬 광고는 일반 CF에 비해 6∼7배의 광고 효과를 누린다는 것이 광고업계의 정설이다.

최근 생사의 기로를 헤매고 있는 하이닉스 반도체가 ‘현대전자’라는 멀쩡한 사명을 바꿀 때도 알려지지 않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수출을 감안해 해외 영업망을 모두 동원한 후보작 심사 끝에 압축된 최종 후보는 세 가지. ‘일렉트론’(Electron)과 반도체를 의미하는 ‘세미콘덕터’(Semiconductor)를 합성한 ‘엘세코’(Elseco), 10의 12제곱을 뜻하는 ‘테라’(Tera)와 ‘bit’나 ‘빛’을 의미하는 ‘vit’을 합성한 ‘테라빛’(TERAVIT) 등이 ‘하이닉스’(Hynix)와 함께 최종 후보로 압축되었다. 하이닉스는 현대(HYUNDAI)를 간접적으로 상징하는 ‘HY’를 포함하고 있었다. 네이밍 과정에서 ‘엘세코’는 스페인 기업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의견이, ‘테라빛’은 발음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대세는 자연스레 ‘하이닉스’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네이미스트들이 한숨 돌릴 때쯤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해외근무 경험이 많은 일부 임원들이 이 단어가 갖는 해외에서의 부정적 이미지를 들어 반대했기 때문이다. ‘H’는 일본에서 ‘변태’를 의미하는 은어라거나 ‘-nix’가’ ‘끝’을 의미하는 접미어이기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브랜딩업체는 고민에 빠졌다. 결국 각국 국어사전은 물론 속어사전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일부 임원들의 우려를 불식할 만한 반증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일본에서 ‘혼다’(HONDA)가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 배경이며 ‘닉스’(NIX) 청바지가 서구인에게 인기를 끈 원인을 찾아내 집중적으로 설득한 끝에 하이닉스는 겨우 빛을 볼 수 있었다.

네이밍 전문업체인 브랜드 메이저 서상희 이사는 “앞으로는 각종 금융상품이나 신용카드에 대한 네이밍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문자로 된 상표뿐 아니라 색채나 향기까지도 상표권 영역에 포함시켜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브랜드 네이밍의 영역은 이러한 방향으로까지 꾸준히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한때 한글 이름→ 영어 합성어→ 한자어 등으로 유행 패턴을 거쳐온 네이밍 경향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흥미로운 관심거리다. 네이밍업체인 ‘오직 커뮤니케이션’ 이승훈 대표는 “합성어를 만들기 위한 단어군이 거의 바닥난 만큼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단어나 한 글자 브랜드 등으로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주간동아 2001.11.22 310호 (p36~37)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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