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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말로만?

시간 촉박, 역내 지도자 추진력 불투명 … ‘자유무역지대’ 실현 불가능에 가까워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말로만?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말로만?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는 허상인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세계무역기구) 4차 각료회의에서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이에 앞서 브루나이 아세안+3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제안함으로써 동아시아 경제 블록의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대통령의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구상이 실현된다면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최초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되는 것일뿐더러 미국, 유럽 등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요한 돌파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제안 이후 실현 가능성만 놓고 본다면 낙관적인 목소리보다 비관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형편이다.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제안한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보고서는 자유무역협정 스케줄에 대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서 합의한 역내 무역자유화 일정보다 앞당길 것을 제안하고 있다. APEC에서 지난 94년 합의한 보고르 선언에 따른 무역자유화 일정이 ‘선진국 2010년, 개도국 202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는 이보다 앞서 출범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곱지 않은 시선도 결정적 변수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중요한 것은 이를 힘있게 추진할 만한 역내 지도력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를 제안한 김대중 대통령이 임기 말 상황에서 이를 밀고나가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당장 역내 13개국 정부 관료들로 구성된 동아시아스터디그룹(EASG)은 내년 캄보디아에서 열릴 아세안+3 회의에 앞서 종합보고서를 내놓는다는 계획이지만 2002년 캄보디아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지대 창설 합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 2년간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을 이끌면서 자유무역지대 창설 방안을 제안했던 고려대 한승주 교수조차 “유럽공동체를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해 탄생시킨 것처럼 한·중·일 국가 중 확실한 리더십을 가질 만한 지도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교수에 따르면 김대통령은 이제 임기 말 현상으로 외교무대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갖기 어려울뿐더러 중국의 주룽지 총리도 국내 정치세력 교체 과정에 놓여 있어 이를 주도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라는 것. 일본 고이즈미 총리 역시 국내 경제 문제 등에 대한 비판 여론 등으로 이를 주도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앞장서 제안하는 등 외교적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일본의 지도적 역할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경계심리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김대통령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미국이 경계심을 갖지 않았던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제적 지도자의 이미지가 거의 없는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이러한 역할을 그대로 계승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경제 블록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눈여겨보아야 할 변수 중 하나다. 사실 동아시아의 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과정에서 좌절감을 맛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입김을 배제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힘을 모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아시아경제협의회(EAEC)의 창설을 제안한 것이 벌써 10년 전 일. 최근에는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98년 일본이 앞장서 국제통화기금(IMF)에 맞설 수 있는 아시아통화기금(AMF)을 만들자고 주장한 적도 있다. 그러나 번번이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미국의 입장 때문에 이러한 구상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지난 2년간 이 문제를 논의해 온 한·중 ·일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구상이 역외 국가들의 이해와도 배치되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아시아비전그룹(EAVG)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도쿄대(東京大) 다나카 아키히코 교수는 ‘주간동아’와 전화 인터뷰에서 “자유무역지대 논의는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니며 미국의 참여도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또 “당장 내년이라도 각종 국제회의를 통해 미국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인교 박사도 “동아시아 공동체는 역외국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협력체제는 다자체제와 합치할 뿐 아니라 다자기구와도 상호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내적으로 보면 자유무역지대 창설로 어느 정도 피해를 볼 농업문제 해결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우리나라는 첫번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대상국으로 칠레를 선정해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칠레산 포도 수입 문제에 걸려 협정 자체가 좌초 위기에 놓여 있다. 칠레는 우리나라와의 교역 규모나 교역 품목 면에서 국내에 미치는 충격이 가장 작은 나라로 꼽힌다. 이러한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조차 농업 문제에 발목이 잡혀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로 인한 국내 농업 손실에 대해 정부가 농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도쿄대 다나카 아키히코 교수 역시 “한국·중국·일본 3개국이 자유무역지대 논의를 이끌어가야 하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우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문제를 함께 안고 있어 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자유무역지대를 둘러싼 최악의 시나리오 중 하나는 아세안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고 현재 자유무역협정에 합의한 일본과 싱가포르가 협력을 강화하면서 한국이 또 한번 고립무원 지경에 빠지는 일일 것이다. 특히 아세안 국가들을 우군으로 포용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는 중국의 입장을 감안할 때 ‘아세안+중국’ 방안은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는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에 우리나라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교통상부 신각수 동아시아스터디그룹(EASG) 담당심의관은 “자유무역지대 창설 방안은 어차피 장기적 과제로 추진될 사안인 만큼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국가적 전략 과제로 꾸준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앞장서 제안한 자유무역지대 창설 방안의 성사여부는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주간동아 2001.11.22 310호 (p32~33)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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