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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만”

대여 공격 자제, 비주류 끌어안기도 … “정계재편 막아라” 일급 경계령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이회창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만”

이회창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만”
”안 오는 거 아냐?” 11월9일 오전 한나라당 시·도지사협의회 참석자들은 김혁규 경남지사가 예정시간 4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자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날 행사의 최대 관심사는 김혁규 경남지사의 참석 여부였다. 그의 불참설이 며칠 전부터 흘러나왔기 때문. 회의 불참은 곧 김지사와 이회창 총재의 ‘공식 결별’을 의미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김지사가 마침내 당사에 들어오자 1층 로비에서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그는 “민주정당의 당원이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대선 출마와 관련해 여운을 남겼다.

이런 말은 이총재로선 쉽게 넘길 얘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날 회의장에서 이총재는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 다른 시·도지사들의 현안 보고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김혁규 지사가 보고하자 관심을 나타내며 이런저런 질문을 한 것. 주위에선 ‘김지사 껴안기’ 제스처가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요즘 이총재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중립내각 구성 여부, 집권당 내분 등 최근 정국 변화에 대해 이총재는 한발 물러서 관전하는 듯한 자세다. 이런 가운데 11월9일 서울지법에서 이총재의 북풍사건 관련 의혹을 전면적으로 뒤엎을 수 있는 판결까지 나왔다. ‘재·보선 압승에 이은 보너스’로 받아들여질 만한 일이다.

이회창 “더도 덜도 말고 이대로만”
지금 이총재가 요구받고 있는 것은 위기 아닌 ‘호기(好機) 관리능력’이다. ‘웃으면서 고민하고 있다’는 게 요즘의 이총재 행보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핵심 측근에 따르면 민주당 사태에 대한 이총재의 대응 전략은 한 가지다. 현 정치구도를 그대로 끌고 간다는 것. 정계재편의 모든 돌출 가능성을 상정해, 실현되지 않도록 하나하나 ‘각개격파’하자는 것이다.



“3김, 민국당, 권노갑 전 최고위원, 민주당 일부 대선주자,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이 연대해 영남후보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한나라당 기획위원회 보고서가 10일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당내 국정원’으로 통하는 기획위원회는 문서 보안이 유난히 강조되는 곳이다. 그래서 이 보도가 나가자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은 “당 지도부가 ‘언론 플레이’를 한 것 같다. 영남후보론에 대한 정치권과 여론의 향배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이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 이번 일은 민주당 사태 이후 영남후보 출현에 대한 한나라당의 경계심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한강변에서 ‘시계(視界) 제로’의 안개가 몰려오고 있다”고 말한다. 민주당사가 한나라당사보다 한강에 가까이 있는 것에 빗대 민주당 사태가 한나라당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뜻이다. “민주당 사태와 관련, 이총재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총재 측근 양정규 부총재는 ‘노타임’으로 답했다. “당의 분열 가능성이다. 지금은 당내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

이총재가 ‘뻣뻣한’ 김혁규 지사를 환대한 것이나, 최근 박근혜 부총재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36명 한나라당 의원들을 대선까지 이탈자 없이 잘 끌고 가기만 해도 외부 변수에 관계없이 1위 자리는 따논 당상이라는 것이 이총재 측근의 생각인 듯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인위적인 자민련 의원 빼가기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다. 과연 그럴까. 최근 무소속에서 한나라당으로 입당한 강창희 의원이 소속된 한나라당 한 의원모임 회원의 말은 그렇지 않다. “우리 모임에는 현재 자민련 A의원이 가입돼 있다. 모임에 세 번 참석했다. 우리는 A의원과 함께 일할 기회가 올 것으로 믿고 있다.”

자민련의 ‘싱크 탱크’로 통하는 한 핵심 당직자는 민주당 사태의 영향으로 한나라당이 자민련 의원 빼가기로 돌아설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 필연적 이유를 JP(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부활 가능성’에서 찾았다. “DJ가 총재직을 사퇴한 것은 DJP 공조파기의 ‘계약 당사자’가 모두 사라졌다는 의미다. 여권 대선주자들도 ‘DJ 우산’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것은 JP에게 합종연횡할 명분과 에너지를 주는 효과가 있다. JP는 우선 여권 내 ‘반 IJ(이인제 고문)세력’과 연대를 모색할 것이다. 그 다음 점차 한나라당을 압박하는 쪽으로 외연을 넓힐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 입장에선 정계재편의 파괴력을 줄이기 위해 일단 JP를 위축시킬 필요가 있으며 가장 효과적 수단은 연말-연초 몇몇 자민련 의원을 한나라당으로 ‘견인’해 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11월 들어 한나라당이 달라진 점은?” 이 질문을 받자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홀수 달만 되면 제기하던 ‘야당 사정설’을 (한나라당이) 더 이상 들고 나오지 않는 점”이라고 비꼬았다. 여권이 야당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정을 기획하기엔 이젠 힘이 부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총재 한 사람으로 공격 대상을 압축할 가능성은 더 커졌다. 여권이 이총재용 ‘실탄’을 상당 부분 비축했다는 얘기도 나돈다.

여권이 권력쟁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정계재편 수요는 더욱 커졌다. 정계재편에 뛰어든 정치세력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목표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현재 ‘정치적 자산’을 ‘과점’하고 있는 이총재를 흔들어 그로부터 최대한 많은 것을 빼앗아와야 한다는 목표다. 이런 상황에서 ‘DJ 대 반DJ 구도’가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게 됐다. 이총재로선 자신을 노리는 적은 많아졌는데 화살을 돌릴 유인장치를 잃은 셈이다. 지금까지 이총재와 한나라당은 김대통령을 공격하는 방법으로 자신들의 지지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공격 대상이 불분명해졌다. 이총재가 민주당 사태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지켜볼 수 없는 이유다.





주간동아 2001.11.22 310호 (p26~27)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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