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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이 패륜 불렀다

과외선생 맹목적 추종 ‘비극의 씨앗’ … 어머니 살해 후 학원장 살인에 가담 ‘충격’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잘못된 만남’이 패륜 불렀다

‘잘못된 만남’이 패륜 불렀다
수능시험 이틀 뒤인 11월9일 한 10대 딸이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매스컴을 달궜다. 언론은 앞다퉈 ‘고액 과외비 안 주자 어머니 살해’란 자극적 제목을 내세웠다. 과연 그럴까. 세인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 이 사건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주간동아’는 언론에 제대로 부각되지 않은 사건의 뒷이야기를 추적했다. 이른바 ‘이양 사건’은 알려진 대로, 인천 부평경찰서가 지난 9월28일 발생한 부평구 Y학원 전 원장 서모씨(39) 살인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중인 이모양(19·무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추가로 밝혀낸 혐의(존속살인)다. 11월3일 검거된 이양은 닷새 뒤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양은 지난 2월9일 인천시 부개동 자신의 집에서 “왜 과외비를 안 주느냐”며 어머니 노모씨(48)와 다투다 탈진한 노씨의 코와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아 질식사시킨 혐의다. 이양의 이런 극심한 일탈은 과외선생 이모씨(37·구속)의 왜곡된 지도와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이양의 오판이 맞물린 데서 비롯됐다.

이들이 만난 것은 99년 2월. 경기 B여고 2학년으로 비교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 이양은 Y학원에 다니던 중 “개인과외를 받으면 검정고시로 내신을 올려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당시 부원장 이씨의 말에 따라 부모를 설득해 과외를 시작했다. 95년 12월 문을 연 Y학원의 원생은 초·중·고생 150여명 가량. 이씨는 지난해 11월 학원 일에서 손을 뗐으며 Y학원은 지난 7월 새 원장이 인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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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외를 받은 지 몇 달 만에 이양의 성적은 최상위권으로 올랐고, 이양 부모는 이씨를 믿고 2학년 2학기부터 딸을 자퇴시킨 뒤 이씨에게 교육을 맡겼다. 이양의 집안은 아버지가 수입목재상을 경영해 부유한 편. 이양측은 한 달에 100만~400만원씩 과외비를 냈다.



그러나 이양이 공부를 이유로 이씨 집을 자주 드나들자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 어머니 노씨가 지난해 4월부터 과외비를 주지 않아 모녀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양은 결국 수능시험은 물론 검정고시조차 보지 못했다. 이후 이양은 가출이나 다름없을 만큼 수개월간 이씨 집에서 지내기도 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이씨의 집은 Y학원에서 300m 가량 떨어진 S빌라다.

경찰은 이씨가 독특한 교습법으로 성적을 단기간에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개인과외를 받은 수강생들은 그를 거의 추종할 정도였다고 밝힌다. 그러나 학원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씨는 인문학에 소양이 있어 논술을 지도했다. 그러나 체계적인 교육경력도 없는 터에 제대로 된 실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감수성 예민한 수강생들이 이씨를 ‘교주’처럼 맹신한 것은 이씨가 Y학원 근무 당시 서씨 대신 운영을 맡아 실권을 행사했고 언변이 능한 때문일 것”이라 말한다.

경찰은 또 네 명의 수강생이 학원과 이씨의 빌라를 오가며 공부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여학생 세 명, 남학생 한 명으로 이씨로부터 개인과외를 받으며 모두 학교를 자퇴했고, 이씨와 그의 부인 H씨, 그리고 이씨의 Y학원 제자 K씨 등에게 개인과외를 받아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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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중 한 명으로 올해 대학에 진학한 J양은 11월12일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이씨 집에선 과외한 적이 없다. 과외는 Y학원에서 ‘특설반’ 형태로 이뤄졌으며 이씨 집을 자주 찾은 것은 친분 때문이지 과외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퇴 역시 내신을 올리려 했을 뿐 이씨가 적극적으로 권하진 않았다. 언론 보도엔 부풀린 대목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과외비는 부모들이 알아서 냈고, 정확한 액수는 수강생들도 모른다”며 “친구로서 이양이 평소 어머니와 불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96년 이씨의 지도를 받은 제자 K씨(23·여)는 “나 역시 이씨 집에서 과외한 사실이 없다. 이양은 그저 이씨를 존경하며 따랐다. 사생활에 관한 문제이므로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마땅히 수강생을 지도할 교육자의 입장에 선 이씨가 제자인 이양과 공모해 서씨를 살해한 비도덕적 행위는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어쨌든 이씨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그를 더욱 의문의 인물로 남게 한다. 이양의 여동생은 11월12일 “과외를 받은 뒤 언니의 성적이 오른 건 사실이다. 1학년 때는 108등이었지만, 2학년 때 과외를 받으며 지필고사(실기시험 제외)에서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다”며 “언니와 어머니가 다툰 것은 과외비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언니의 자퇴 결정 또한 이씨의 권유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J대 사학과를 중퇴한 이씨는 고향 목포에서 생활하던 중 96년 손윗동서 서씨의 제의로 Y학원 부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이양 등 학원생들에게 개인과외를 권한 뒤 이들이 학교까지 그만두게 되는 등 학원을 편법운영하면서 원장 서씨와 갈등을 빚어왔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학원비 횡령문제로 서씨와 다투다 그를 폭행한 혐의로 구속됐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앙심을 품어오다 이양에게서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얘기를 듣고 서씨 살해에 이양을 끌어들였다. 이씨는 지난 9월28일 부평6동 노상주차장에서 서씨의 왼쪽 가슴과 배를 흉기로 네 차례 찌른 뒤 사체를 강원도 평창군 산중에 암매장했다. 당시 이양은 흉기를 구입하고 망을 봐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현장 목격자 네 명의 진술에 따라 11월3일 검거됐다.

‘잘못된 만남’이 패륜 불렀다
사건은 11월9일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아직은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검찰이 보강 수사해야 할 내용들이지만, 우선 노씨 사건에서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흡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조기에 해결했더라면 최소한 이양이 서씨 살해사건에 가담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고 가정하면 더욱 그렇다.

이양이 어머니를 살해할 당시 집엔 둘밖에 없었다. 자연 이양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데도 범행은 사건 발생 8개월이 지나서야, 그것도 이양의 자백으로 드러났다. 부평서측은 “사건 당시 이양을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목격자와 물증이 없는 데다 진술마저 거부해 미제로 남을 뻔했다”며 “이양의 자백이 사건 직후 실시한 노씨의 부검 결과(목 부위에 짓눌린 흔적이 있으며 질식사로 추정됨)와 일치해 혐의를 추가한 것”이라 밝혔다.

초범인 이양이 어머니의 피가 묻은 침대보를 범행 후 세탁하고 수면제를 변기에 버린 뒤 빈 포장지를 어머니 사체 옆에 두어 자살로 위장한 점, 119에 “어머니가 갑자기 숨졌다”고 허위신고까지 하는 등 치밀하고 대담하게 ‘뒤처리’한 점도 계획범죄인지, 제삼자의 조력이 있었는지 여부를 파헤칠 필요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또 살해과정에서 코와 입을 맨손으로 틀어막아 질식사시킨 부분도 석연치 않다. 상식적으로 볼 때 다투는 과정에서 흉기를 지니지 않았다면 목부터 조르는 일이 통례다(경찰이 발표한 수사기록엔 ‘비구폐색(鼻口閉塞)에 의한 기계적 질식사’란 내용이 적시돼 있지만, 대다수 언론은 목졸라 살해했다고 오보했다). 이 점에 대해선 경찰 스스로도 의문을 표한다. 더욱이 평소 이양 가족을 봐온 주민들은 “비쩍 마른 이양보다 노씨의 몸집이 더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검거 후 피의자들을 분리해 추궁할 당시 이씨는 “이양이 어머니의 장례식 5일 뒤 범행사실을 내게 털어놨다”고 진술한 반면, 이양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엇갈린 진술을 한 것도 의문이다. 또 묵비권을 행사해 경찰에선 밝히지 못했지만, 이양이 노트에 ‘S(죽은 서씨를 지칭하는 듯)를 죽여야 한다’ ‘사랑도 싫다, 섹스도 싫다’는 등의 내용을 기록한 배경도 미스터리다. 이런 사항들이 중요한 것은 서씨 살해에 이양이 적극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단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양은 서울대 법대 진학을 꿈꿔왔다. 그러나 한순간의 ‘잘못된 만남’은 천륜이라 불리는 어머니와 자식간 연(緣)마저 스스로 끊는 패륜범죄로 이끌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비틀어놓았다.



주간동아 2001.11.22 310호 (p14~15)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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