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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강원도의 미소’가 있었네

영월 산중턱서 나한상 230여점 무더기 출토 … 15~16세기 제작 추정, 높이 30cm 소박한 모습

  • < 전원경 기자 / 영월> winnie@donga.com

조선 전기 ‘강원도의 미소’가 있었네

조선 전기 ‘강원도의 미소’가 있었네
포클레인으로 배수로 공사를 하는데 딱 소리가 나면서 나한 한 분이 걸리는 거라. 그때는 나한상인 줄 몰랐지. 파보니 돌로 만든 부처님이야. 그런데 다시 땅을 파니까 또 ‘딱’ 하면서 한 분이 걸려 나와. 그렇게 연속해서 세 분이 걸려 나오데. 아하, 이거 심상찮구나 싶어 바로 공사 중단하고 사진부터 찍었지 뭐. 신고하려면 사진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감? 그래 부랴부랴 영월군청에 신고했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관청보다 원주 MBC에서 카메라 앞세우고 먼저 오데.”

강원도 영월에서 대규모 나한상을 발굴한 김병호씨(50)의 말이다. 김씨는 지난 5월 강원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나한상 발굴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1차 발굴조사가 끝난 10월 말에도 가건물을 짓고 발굴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내년 초 대규모로 2차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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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상이 무더기로 쏟아진 김씨의 땅은 영월 창원리의 산중턱이다. 산세가 제법 높지만 가파르지 않고 평탄한 데다 앞이 탁 트여 영락없는 절터였다. 김씨가 이 일대의 땅 332평을 사들인 것도 절을 짓기 위해서였다. 일단 길을 튼 뒤, 터를 닦기 위해 평탄작업을 하던 중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문제의 나한상들이 출토된 것이다.

김씨의 땅에서 출토된 나한상은 230여점. 몸통과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간 상이 많아 나한상의 수로 따지면 200여구 정도가 현재까지 발굴된 상태다. 그러나 추가 발굴을 진행하면 500구 대부분이 발굴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9월25일부터 10월17일까지 진행된 1차 발굴을 주도한 강원문화재연구소는 발굴된 나한상들을 곧 다른 장소로 옮겨 보존처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좀더 대규모로 진행될 2차 발굴은 내년 초에 시작하며 나한상 외에 절터까지 조사할 예정이다.



영월의 나한상들이 화제가 된 것은 500여구에 가깝다는 양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높이 30cm, 어깨 폭 20cm 내외인 이들 나한상은 대부분 꾸밈없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 다양하고 생생한 표정은 불과 물, 그리고 오랜 세월에 부식되었는데도 선명했다. 웃는 듯, 찡그린 듯 재미있는 표정을 지은 나한상도 있다. 지방 장인들이 만든 만큼 나한상의 미소 역시 영월이라는 지방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조선 전기 ‘강원도의 미소’가 있었네
1차 발굴이 끝났지만 아직 땅에 묻힌 채 발굴을 기다리는 나한상도 적지 않다. 현장의 장막을 걷자 땅에 반쯤 파묻힌 50여점의 나한상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먼 길을 달려온 취재팀을 반가이 맞이하는 듯했다. 발굴 현장 한쪽에는 불에 타들어간 나한전의 흔적도 보였다. 이번 발굴조사단에 지도위원으로 참가한 최응천 학예연구원(국립춘천박물관)의 말에 따르면 영월 나한상들은 조선 전기인 15,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 작품이며 대규모로 발굴된 점, 또 비교적 완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월 나한상의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는 것이 최연구원의 설명.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윤석인 연구원 역시 나한상들의 가치에 대해 “최소한 보물급으로 지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래 나한전은 큰 절의 부속건물로 지어졌다. 나한상들이 대규모로 발굴된 만큼 이 일대에는 큰 절이 있었을 것이라고 조사단은 추정했다. “18세기경 불이 나면서 폐사(廢寺)될 때 나한상들이 같이 매몰된 듯합니다. 비록 영월과 단양, 충주 등에 절터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산중에 500나한을 모실 만큼 대규모의 절이 있었다는 것은 수수께끼입니다.” 최응천 연구원의 설명이다.

느닷없이 쏟아진 나한상 때문에 김씨는 절 짓기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영월군 문화관광과, 강원도청, 문화재청으로 문화재 발굴 보고가 오가고 문화재청 전문위원들이 현장에 와 발굴 장소를 보존하는 문제를 의논하자 김씨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나한상이 출토된 땅 332평을 국가에 무상으로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절도 못 지을 거, 이 땅을 국가에 기증하지 않으면 나 죽은 후에 서로 갖겠다고 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국가에 줘버리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절터 추정 사유지 ‘무상 기증’

조선 전기 ‘강원도의 미소’가 있었네
사실 여기에 현(現) 문화재보호법의 맹점이 있다. 자신의 땅에서 유물이 출토되면 지주 개인이 발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출토된 유물은 국가에 귀속된다. 더구나 국가가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해 그 땅을 매입, 사적지로 지정하면 반경 500m 이내에는 어떠한 건물도 지을 수 없다. 지난해 일어난 풍납토성 훼손 사건도 풍납토성이 사적지로 지정되면서 인근 주민들의 숙원이던 아파트 건설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영월 나한상 역시 그러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던 셈이나 김씨의 결단이 갈등 해결의 열쇠가 되었다. 문화재청은 발굴이 완료된 후 김씨가 유적지 옆에 절을 짓는 것은 허용할 방침이다.

김씨는 ‘발굴된 터에 전시관을 만들어 나한상들을 전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나한상들은 내년에 개관이 예정된 국립춘천박물관에 전시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만 영월에 전시공간이 생긴다면 일부라도 대여 형식으로 전시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영월군 문화관광과의 오부영 과장은 “영월군은 나한상 출토지에 전시관을 짓는 데 찬성하며 이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사유지를 국가에 기증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강원문화재연구소측은 “특히 강원도의 경우 개발이 진행되면서 유물이 출토되는 경우가 많다. 문화재보호법이 지속되는 한 신고를 꺼릴 것은 당연지사”라면서 유물 훼손 가능성을 우려했다. 비록 보상금이 나온다고 하지만 경제적 손해와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유물을 발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이 심심산골에서 나온 유물 다 파묻어 버려도 누가 알겠는가. 문화재 보호하려면 법부터 고쳐야 한다”는 김씨의 말이 오랜 여운을 남겼다.





주간동아 2001.11.15 309호 (p64~65)

< 전원경 기자 / 영월>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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