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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오페라 날개 없는 추락

공연 늘었지만 함량 미달 상당수 … 엉성한 앙상블, 조악한 무대, 실수 연발 ‘관객 실망’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한국 오페라 날개 없는 추락

한국 오페라 날개 없는 추락
9월7~11일 ‘루치아’, 13~16일 ‘춘향전’, 18~23일 ‘리골레토’, 20~23일 ‘사랑의 묘약’, 27~30일 ‘토스카’, 10월9~13일 ‘라 보엠’…. 최근 서울에서 공연하는 오페라의 스케줄이다. 오페라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고’ 있다. 올 가을 서울에서만 모두 15편의 오페라를 공연한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뉴욕이나 런던, 파리 등에 못지않은 규모다. 공연 형태도 다양하다. ‘열린 오페라’라며 무대에 누드 모델이 등장하는가 하면, 유명 배우가 연출하는 오페라도 있고 아예 서커스단이 무대에서 서커스 한판을 벌이기도 한다.

작품 수 못지않게 오페라에 대한 지원 규모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와 문화관광부는 올해 ‘무대공연 작품 지원사업’으로 모두 11편의 오페라를 선정, 최저 2500만 원에서 최고 1억1500만 원까지 지원금을 지급했다.

공연이 늘어나고 국고 지원도 늘어나며 공연의 외양은 화려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오페라계는 정말 성장일로에 있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선 관객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오페라 ‘루치아’ 중 루치아가 ‘그대와 함께 있으면 하늘이 열리는 것 같고~’ 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하늘이 열리기는커녕 내 머리뚜껑이 열릴 것 같았다. 엉망인 음향에 지휘도 제대로 못 따라가는 가수, 실수 연발의 오케스트라… 앉아 있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오페라 중 최악의 공연이었다.”

“‘리골레토’를 보고 다시는 오페라 안 보기로 맹세했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오르내릴 때마다 삐걱거리고, 지휘자는 악보에 코를 박은 채 무대로는 눈길 한번 안 주고, 노래하는지 중얼대는지 알 수 없는 외국인 테너는 아예 중간에 바뀌어 버리고….”



최근 공연한 두 편의 오페라를 본 관객의 반응이다. 관객의 반응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에 가까웠다.

기자가 직접 본 몇 편의 공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케스트라와 가수는 제대로 된 앙상블을 이루지 못했고 합창은 연습 부족이었으며 의상과 무대장치는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주역을 맡은 가수들은 아리아를 틀리지 않고 부르기에 급급했다. 공연을 이루는 모든 요소에서 급조한 흔적이 역력했다.

“한마디로 지원금이 아깝고 관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오페라 관객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쫓는 행위입니다. 이런 공연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는 “말이 안 나온다”며 혀를 찼다.

오페라 칼럼니스트인 박종호씨 역시 “한심하다”는 말로 최근 오페라 공연의 수준을 표현했다. “요즈음 오페라들은 정부나 기업의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15편의 오페라를 이번 가을에 공연한다지만 수가 문제가 아니라 단 한 편이라도 제대로 된 공연을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관객과 평론가들이 분노하는 데는 충분한 까닭이 있다. 지난 1998년 가을 예술의전당과 민간오페라단총연합회는 오페라의 저변화·대중화를 목표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젊은 가수들과 스태프가 중심이 되어 ‘카르멘’ ‘리골레토’ 등 3편의 오페라를 공연한 첫번째 페스티벌에는 새로운 시각과 신선한 시도가 넘쳤다. 당시 관객 호응은 객석 점유율 70%에 유료 관객률 71%를 기록할 만큼 뜨거웠다(98년에 가장 인기 있던 뮤지컬 ‘명성황후’의 객석 점유율이 68%였다). 극장 관계자들도 놀랄 만큼 열광적 반응이었다. 이때의 성과로 오페라 관계자들은 ‘50년 역사의 한국 오페라계에 드디어 꽃이 피려나 보다’며 한껏 고무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정부의 지원금이 이러한 오페라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99년 문화관광부는 IMF사태 여파로 위축한 공연예술계를 지원하기 위해 ‘무대공연작품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2000년부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지원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올해의 경우 서울시와 문광부가 지원한 금액은 40억 원에 이른다. 지원금 규모가 늘어나자 3, 4년 동안 한번도 오페라를 하지 않던 단체들이 나서서 지원금을 타냈다. 그리고 지원금을 타낸 후에야 급조한 작품들이 줄줄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올 가을의 현실이다. 심지어 극장이 부족해 오페라를 할 수 없는 여건의 극장에서까지 공연을 강행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나은 공연수준을 인정 받는 예술의전당은 독립법인이라는 이유로 이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

오페라는 사실 성악가들에게 절박한 무대다. ‘유학까지 다녀왔는데 오페라 한 편쯤은 해야겠다’는 명예욕, 또 음악대학의 교수 임용과 직결되는 공연 실적 때문에 성악가는 기를 쓰고 오페라 무대에 서려 한다. 일부 성악가는 출연을 위해 오페라단에 돈을 쥐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4회 공연에 4쌍의 주역’이라는 희한한 캐스팅이 생겨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는 이와 너무나 다르다. 1명의 성악가는 4, 5일의 시차를 두고 같은 역을 예닐곱 번 이상 부르면서 그 역에 완전히 동화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올해 공연 스케줄을 보면 오페라 ‘라 보엠’의 여주인공 미미로 출연하는 한국 출신 소프라노 홍혜경씨는 10월1~17일에 5회의 ‘라 보엠’ 공연에 참가한다. 이 정도가 오페라 공연의 일반적 스케줄이다. 서너 번 공연하면서 3, 4쌍의 주인공들을 마구잡이로 캐스팅하는 극장은 어디에도 없다.

지원금 받을 단체를 선발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올해의 경우 1억 원이 넘는 지원금을 받은 오페라 공연은 ‘세금이 아깝다’는 평을 들었다. 이 부분에 대해 심사를 맡은 서울시는 심사위원이 공연을 평가해 실적이 부진한 경우 다음 해에 선발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사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와중에 심사 당사자들이 다시 공연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차라리 관객의 투표나 위원단을 구성하는 등의 방법이 더 공정할 수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홍승찬 교수(예술행정)는 국고, 지자체, 마사회, 기업 후원금 등으로 분산된 오페라 지원금 창구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금 지원과정만 투명해도 현재의 잡음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 홍교수 지적이다.

“관객을 모으기 위해 수준 미달의 공연도 너그러이 봐주는 풍토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가혹한 비평은 지금 당장은 입에 쓰지만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오페라 연출가 이소영씨는 “목적과 비전이 없는 공연은 끝나야 하며 난립하는 오페라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예술의전당과 ‘가면무도회’를 공연하기 위해 1년 반 전부터 준비하는 이씨는 “오페라는 한번 해보겠다는 식으로 달려들어 해낼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씨는 ‘가면무도회’ 주역 5명을 선발하기 위해 10회 이상의 오디션을 실시했다. 흔히 오페라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종합예술인 만큼 성악과 오케스트라, 연출, 의상, 무대미술, 조명 등 갖가지 요소 중 어느 한 가지만 처져도 공연 수준이 떨어진다. 그만큼 쉽지 않은 장르가 오페라지만 과거에는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처지는 수준을 메워 주었다.

최근의 오페라 공연에는 그러한 열정마저도 실종되고 없다. 상당수 오페라단이 지원금으로 급조한 작품을 공연하고, 그 무대에 서기 위해 뒷돈을 준다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킨다. 정작 가장 두려워해야 할 관객의 눈은 그 누구도 안중에 없다.

맹목적일 정도로 ‘재미있는 오페라’를 고수하는 영국 국립오페라(ENO)의 한 관계자는 “명색이 국립오페라인데 너무 재미만 좇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한 쌍의 부부가 오페라를 보러 온다고 생각해 보라. 저녁 외식비, 두 장의 오페라 티켓 비용, 주차비, 저녁에 아이들을 맡길 베이비시터 비용… 어림잡아 150파운드(25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 그 많은 돈을 들인 관객에게 재미마저 선사하지 못한다면 관객이 다시 오페라를 보러 오겠는가.”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한국의 오페라 관계자들은 왜 이 당연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지 거듭 궁금해진다.



주간동아 2001.10.04 304호 (p142~143)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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