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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테러 공포’ 러시아가 무섭다

5만여 명 ‘스킨헤드’ 외국인 무차별 폭행 … ‘이방인 청소’ 사법기관서도 눈감아

  • < 남혜현/ 유럽문화정보센터 전문연구원 > russ3023@unitel.co.kr

‘극우 테러 공포’ 러시아가 무섭다

‘극우 테러 공포’ 러시아가 무섭다
지난 4월23일 히틀러의 생일을 맞아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일군의 젊은이들이 모스크바 야세노보 역 주변 시장에서 카프카스 출신 상인의 상점을 부수고 심한 폭행을 가하는 난동을 부렸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단순한 ‘시장판 싸움’으로 결론지었고 소란을 일으킨 사람을 아무도 구속하거나 처벌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스킨헤드 단원 대여섯 명이 아르메니아 출신의 한 고교생을 상대로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의 폭력을 휘두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사건 역시 단순한 학생들간 싸움으로 마무리지었다.

유럽 대륙이 극우파 바람으로 몸살을 앓는다. 올 2월 오스트리아에 극우 연정이 출현하면서 유럽 각 나라들은 나치 망령이 되살아난 듯 신나치주의에 시달리고 있다. 극우파가 힘을 얻고 있는 국가는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 등. 그러나 최근 러시아에서도 전국 규모의 극우 민족주의 단체가 속속 등장하면서 비러시아인에 대한 증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치닫고 있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단체는 러시아민족단결(RNE), 민족프론트(NF) 등의 극우연합들. 이들은 주로 ‘러시아인에 의한 러시아 건설’을 주장하며 외국인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단체는 주로 1990년대 중반부터 결성하기 시작해 오늘날 러시아 전역에 약 200여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이들은 역시 젊은 청년. 빡빡 밀어버린 머리가 상징인 이들 ‘스킨헤드’는 낡은 청바지와 검은색 짧은 재킷에 굽높은 군화를 신어 복장을 통일하고 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에게 아무 이유 없이 무차별 테러를 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현재 러시아의 스킨헤드는 대략 5만 명 가량으로 추산한다.

‘극우 테러 공포’ 러시아가 무섭다
전문가들은 스킨헤드족을 가리켜, 신나치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경도한 공격적 성향의 하위문화라 정의한다. 1930년대 히틀러 시대의 독일인이 “독일은 독일인에게로”라고 외친 것처럼, 이들은 “러시아를 러시아인에게로”라고 외치고 있다. 화이트 파워(White Power)를 주장하는 이들의 심벌은, 켈트 십자가와 나치의 철십자 표식이다.



스킨헤드는 러시아민족연합(RNS)이나 블러드앤드어너(Blood and Honor) 같은 대규모 집단의 하위조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100명 안팎의 독립적 소그룹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려할 만한 것은 이들의 독특한 외모와 의상, 공격적 행위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첨단유행이 되어 점점 더 많은 청소년이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킨헤드들은 디나모 모스크바, 스파르탁 모스크바 같은 유명 프로축구팀의 팬 클럽에 잠입해 또래 청년과 청소년을 선동하기도 한다. 실제 축구장에서는 스킨헤드의 상징인 켈트 십자가 깃발을 들고 열광하는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국경을 넘어서는 상호 교신과 이데올로기의 확산 수단으로 인터넷과 음악을 활용하기도 한다. 일례로 ‘오이’(Oi)라는 이름의 나치 찬양 음악(일명 스킨헤드 록)은 스킨헤드족들을 단결하고, 세력을 확산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킨헤드족은 1960년대 영국에서 처음 나타나 유럽과 미국 등지로 확산되었다. 사실 스킨헤드족이 모두 극우 민족주의라 보기는 어렵다. 그들 역시 극우 민족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의 3가지 이념적 스펙트럼으로 나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 이들 대부분이 신나치즘에 경도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 이는 사회주의가 몰락한 동구권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악화한 경제상황에 대한 단죄 대상이 필요해졌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힘없는 국가의 외국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킨헤드들은 외국인에 대한 테러가 범죄라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들 영토에서 이방인을 청소하여 러시아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는 숭고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보았듯 경찰과 사법기관에서도 은근히 이들을 감싸는 기미까지 보인다.

스킨헤드족을 구속한 적이 있기는 하다. 1998년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관의 경비원인 흑인 윌리엄 제퍼슨을 폭행한 세묜 토크마코프라는 스킨헤드 단원이 그런 경우다. 그 사건은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러시아 경찰은 세묜 토크마코프를 ‘폭행 및 인종차별주의 선동죄’를 적용해 재판에서 3년형을 선고했지만 그는 얼마 후 사면 받아 석방되었다.

외국인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스킨헤드를 구속, 처벌한 예가 거의 없고, 간혹 구속되어 재판 받는다 해도 적용하는 죄목은 단순 폭행일 뿐이다. 이는 인종 차별주의를 처벌할 만한 러시아 국내 법령이 미비한 까닭도 있지만, 경찰과 사법기관이 이들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며 감싼다는 느낌 역시 지울 수 없다는 것이 외국인의 지적이다.

심지어 러시아 정부도 극우세력의 존재를 눈감아 준다는 혐의를 부인하기 어렵다. 선거 때마다 ‘과격 극우 단체들의 발호’를 강조함으로써 국민의 불안감을 가중시켜 체제 유지에 이용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물론 러시아 국내에서도 극우 민족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존재한다. 반파시즘청년운동(AMD)을 비롯해 러시아 전역에 약 30여 개 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인권보호단체와 협력하여 피켓 시위를 벌이고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시위를 저지하며 신나치주의에 반대하는 록음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한다. 또한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이 저지르는 불법 행위 증거를 수집하여 공개하고 인종 차별주의를 반대하는 정기 간행물을 발간하는 등 미디어 활동도 전개한다.

그러나 반인종차별주의 단체는 극우 민족주의 단체보다 수적 열세에 있는 것이 사실. 극우 민족주의 단체들의 이데올로기가 단순하고 선동적이어서, 특히 감성적이고 불만이 많은 사춘기의 청소년들을 쉽게 자극하는 반면, 반극우 단체들은 아직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러시아의 불행은 러시아인의 잘못 때문이지 결코 다른 민족 때문이 아니다”는 이성적 논리는 고단한 삶에 지친 대중을 설득할 만한 힘이 없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조직이 대중 사이로 파고들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재정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신나치주의에 반대하는 단체는 대부분 시민의 기부금으로 유지할 뿐 정부 보조금은 받지 못한다. 극우 민족주의자들은 이 점을 들어 반파시즘 단체들을 ‘서방 세계의 앞잡이’라 비난한다.

러시아는 20세기 초 반세기 동안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파시즘에 대항한 전통이 있다. 그러한 역사는 아랑곳없이 혼란한 사회 분위기를 틈탄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를 지켜보는 러시아 지식층의 아픔은 크다. ‘껍데기만 남은 강대국’으로서의 상처 받은 자존심은 러시아 사회에 뿌리내리는 인종차별주의로 인해 다시 한번 손상당할 것인가. 세기를 뛰어넘어 러시아 지성인들은 다시 한번 파시즘과의 전쟁에 직면해 있다.



주간동아 2001.10.04 304호 (p114~116)

< 남혜현/ 유럽문화정보센터 전문연구원 > russ3023@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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