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3

2001.09.27

관중 심금 울린 ‘독종의 투혼’

  • < 조성준/ 스포츠서울 체육팀 기자 > when@seoul.co.kr

    입력2004-12-24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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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중 심금 울린 ‘독종의 투혼’
    정신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여자프로농구 광주 신세계의 정선민(27)을 보고 있으면 이에 대한 해답을 과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무척 어려워진다. 지난 9일 신세계이마트배 2001여름리그 챔피언결정전이 신세계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뒤 정선민은 서 있기조차 힘들어 했다. 한 발로 껑충껑충 뛰어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를 받으러 나간 그는 결국 동료의 등에 업혀 경기장을 빠져 나갔고, 이 광경을 지켜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던 관중들은 퉁퉁 부은 오른쪽 발목에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1차전에서 오른쪽 발목을 크게 다친 정선민이 남은 경기에서 그토록 펄펄 날 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다소 말이 꼬인 느낌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많은 농구계 관계자들은 여자 농구선수들 가운데 ‘2대 독종’으로 정선민과 국민은행의 ‘작은 탱크’ 김지윤(25)을 첫손에 꼽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허슬 플레이(hustle play: 매우 공격적이고 투지가 불타는 플레이)를 펼친다는 얘기다. 때로는 이 같은 열의가 지나친 개인 플레이로 흐를 때도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면서도 든든하다.

    정선민의 경우, 호흡 곤란으로 라커룸에 들어가 구토한 뒤 3, 4쿼터에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코트를 휘젓고 다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김지윤은 한술 더 뜬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을 앞세워 뼈에 금이 간 줄도 모르고 풀타임을 거뜬히 소화해 주위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솔직히 거의 날마다 경기 관련기사를 작성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쓰기 싫어하는 단어가 ‘정신력’과 ‘부상 투혼’이었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다시 코트에 서는 부상 선수를 볼 때마다 ‘텔레파시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초능력 인간도 아닌데 정신력이 어디 있어’ 또는 ‘아프면 쉬어야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계속 뛰어’ 등의 비아냥 섞인 질문을 속으로 되뇌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이 끝나고 기진맥진한 채 울면서 동료들과 부둥켜안는 정선민을 보는 순간 이처럼 냉소적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부상당했는데도 출전을 강행하는 선수들의 무모한 용기와 이를 독려하는 코칭스태프의 근시안적 용병술을 칭찬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혼신의 힘으로 갖은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목표에 조금씩 다가가는 인간의 원초적 의지를 느꼈다고 할까. 이래서 사람은 스포츠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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