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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섬과 사람들 | 울릉도

그리움으로 솟아난 ‘동해의 비경’

  • < 양영훈/ 여행칼럼니스트 > www.travelmaker.co.kr

그리움으로 솟아난 ‘동해의 비경’

그리움으로 솟아난 ‘동해의 비경’
울릉도는 참으로 묘한 매력을 가진 섬이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예까지 와서 뭘 보겠다고 이 고생을 하나”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치밀곤 한다. 그러다가도 막상 그곳을 떠나온 뒤엔 마치 열병(熱病) 같은 그리움이 시시때때로 밀려든다. 그와 함께 울릉도 여행에서의 고생스러운 일들마저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다가온다.

울릉도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두 번의 여행으로 울릉도의 가볼 만한 데는 거의 다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뭍으로 돌아온 뒤에는 늘 뭔가를 흘리고 온 듯한 느낌이 남곤 했다. 첫번째 여행에서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탓에 아예 발조차 내딛지 못한 데가 적지 않았다. 단체로 움직인 두 번째 여행에서는 교통문제가 수월하게 해결된 반면, 단체 일정이 빠듯한 탓에 개인적으로 꼭 둘러보거나 오래 머무르고 싶은 데가 있어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그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도동항에 닿자마자 렌터카에 올랐다.

도동에서 사동으로 넘어가는 오르막길은 몇 개의 다리가 놓인 나선형 도로다. 산비탈의 경사가 몹시 가파른 탓이다.

그리움으로 솟아난 ‘동해의 비경’
그래도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산과 바다와 마을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사동 일대 풍경이 장쾌하게 조망된다. 흑비둘기서식지가 있다는 사동마을을 지나고, 남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두봉 아래를 돌아서면 통구미 마을이 지척이다.

전형적 어촌인 통구미에서는 아주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주변에는 칼로 자른 듯한 암벽이 성처럼 둘러쳐 있고, 마을 앞에는 경사 급한 몽돌해변이 드리워 있다. 바로 이 몽돌해변이 마을의 포구인 셈인데, 특이하게도 모든 배들은 뭍에 올라와 있다.



그리움으로 솟아난 ‘동해의 비경’
마침 작은 어선 한 척이 고기잡이를 마치고 포구로 들어왔다. 해변에서 기다리던 아주머니는 배가 해변에 닿자마자 주변에 있던 굵은 통나무를 끌어다가 배 밑에 일정한 간격으로 깔았다. 그리고 배 위의 늙수그레한 어부는 뭍에 고정시킨 밧줄을 배 엔진과 연결한 회전축에 감아 배를 뭍으로 끌어올렸다. 밧줄을 감는 어부도, 통나무를 옮기는 그의 부인도 따가운 햇살 아래 연신 비지땀을 훔쳤다.

그 배의 선주이자 유일한 선원인 어부에게 “바로 옆의 콘크리트 선착장을 마다하고 배를 굳이 뭍으로 끌어올리는 까닭이 뭐냐”고 물었다. “파도가 높고 폭풍이 자주 몰아치기 때문에 이렇게 올려놓지 않으면 배가 자주 망가진다”는 게 그이의 대답이다. 이들 부부의 억척스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문뜩 “명이나물(산마늘)과 깍새(슴새)로 연명하며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낸 울릉도 개척자들의 후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울릉도 사람의 남다른 생활력은 여러 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나팔등도 그런 마을 중 하나다. 서면 소재지인 남양리에서 좁은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첩첩산중까지 차 한 대만 간신히 지날 만한 길이 이어진다. 그 길이 끝날 즈음에 들어앉은 마을이 바로 나팔등이다. 가파르게 흘러 내린 산자락에 민가 몇 채가 띄엄띄엄 들어서 있고, 민가 주변의 드넓은 산비탈에는 잘 가꾼 약초밭과 산나물밭이 펼쳐져 있다. 요즘은 육지 평야지대의 문전옥답(門前沃畓)조차도 묵히는 실정인데, 이곳에서는 묵히는 밭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 있기도 힘겨우리만큼 비탈진 산중턱을 개간하여 지금까지도 약초와 산나물을 재배하는 이 마을 사람의 개척정신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리움으로 솟아난 ‘동해의 비경’
이맘때쯤이면 서면 남양리와 태하리, 북면 천부리 등 큰 갯마을에서는 오징어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파도소리 상쾌한 어느 몽돌해변에서 오징어를 널고 뒤집고 거두는 일은 어민에게 중요한 생업임과 동시에 관광객에게는 울릉도의 여정(旅情)을 돋우는 풍경이다. 하지만 올해는 오징어 어획량이 예년만 못해 바닷가에 설치한 오징어 덕장의 풍경도 좀 썰렁한 편이다.

남양리와 태하리는 같은 서면에 속해 있어도 서로 오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몹시 좁고 가파르고 구불거리는 산길인 태하령 고갯길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길이 어찌나 험한지 운전경험이 많은 사람도 이 고개를 넘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설상가상으로 고갯길 중간에서 반대방향의 차와 마주치면 곡예하듯 위태롭게 비켜줘야 한다. 찻길 옆에는 육지에서 보기 어려운 솔송나무 섬잣나무 너도밤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미처 눈 돌릴 겨를도 없다. 울릉도 유일의 렌터카 회사가 육지 관광객에게는 현지인 기사를 붙이는 조건으로 차를 빌려주는 것도 바로 이 고개 때문이다. 하지만 서면 구암과 학포 사이의 일주도로 구간이 완공되는 올 9월26일부터는 이 고갯길을 지나지 않고서도 태하리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주간동아 2001.09.20 302호 (p100~101)

< 양영훈/ 여행칼럼니스트 > www.travelma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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