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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라엘현상 환상인가 신비인가

‘과학적 영생’ 추구하는 라엘리안

현실 고통 해결 ‘인간복제’에 엄청난 기대 … 사회적 이슈에 적극 발언하고 개입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과학적 영생’ 추구하는 라엘리안

‘과학적 영생’ 추구하는 라엘리안
지난 9월2일 서울 정동아트홀에서 열린 라엘의 강연회에는 700여 명의 청중이 몰렸다. 라엘리안 무브먼트 회원 20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일반 시민이었다. “인간복제와 생명공학에 대해 알고 싶어 참석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과학에 관심 있는 어린이도 많았다.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라엘 방한 이후 일반인 사이에서도 인간복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와 더불어 국내에서만 1500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공개적인 대규모 대중강연회를 열 정도로 세력을 넓힌 ‘라엘리안 무브먼트’가 소수 종교단체의 성격을 뛰어넘어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과학적 영생’ 추구하는 라엘리안
라엘리안 무브먼트 한국지부는 83년 5월 창설했다. 10년 전만 해도 회원 수는 소규모 동호회 수준이었지만 최근 급성장했다. 회원들은 전국 각지에 분포해 있는데, 20, 30대 젊은층이 가장 많고 이들 중에는 국내 명문대와 해외 유학생을 포함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지부장 최상렬씨는 “회원 중에는 컴퓨터 등 IT업계 종사자와 전문기술을 가진 프리랜서가 많다”고 전한다.

인간복제 기술을 통해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불임부부·장애인도 쉽게 라엘리안이 된다. 한 장애인 회원은 “인간복제는 현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고 말한다. 인간복제가 실현될 날을 기다리며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록 ‘일부러’ 아이를 갖지 않은 부부도 있다고.

‘과학적 영생’ 추구하는 라엘리안
이들에게 라엘리안 운동은 현실보다 더 중요한 ‘절대적 종교’다. 예배 같은 의식도 있고 지켜야 할 교리도 있다. 회원만의 명상모임에서는 소리와 호흡을 통해 온몸의 감각을 발달시키는 훈련을 하는데, 이는 창조자인 외계인 ‘엘로힘’의 메시지를 더 잘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명상 후에는 인간복제와 관련한 뉴스 등 과학정보를 교환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외계인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새로운 UFO 사진 등은 이들의 주요 관심사다. 그리고 1년에 4번씩 기독교의 ‘세례‘와 비슷한 ‘트랜스미션’(Transmission)이라는 의식을 행하는데, 이는 자신의 유전자 코드를 외계인의 컴퓨터로 전송하는 행사로, 이를 통해 복제가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 받는다고 한다.



수년 전 라엘의 책을 읽고 라엘리안이 되었다는 박선영씨(31, 영어강사)는 “어려서부터 우주인이 있다고 믿었는데 라엘의 책을 읽고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의문에 대한 답을 얻었다. 라엘리안 운동은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 건강한 DNA를 보존하기 위해 술·담배 등 몸에 좋지 않은 것은 절대 하지 않고, 1주일에 하루는 단식을 한다. 월 소득의 10% 정도를 라엘리안 운동을 위한 회비로 내며 모든 활동은 무급 자원봉사로 이뤄진다. 회원들은 라엘의 가르침에 따라 과학 인터넷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박씨가 밝히는 라엘리안의 생활.

라엘리안은 서로에게 별도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여기서 통하는 박씨의 이름은 ‘진아’. 그녀의 부모는 처음 1, 2년 동안 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 힘들어했지만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박씨 주위 사람도 그녀의 얘길 들으면서 거부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재미있어하고 흥미로워한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라엘리안은 박씨의 경우처럼 라엘의 책을 읽고 호기심을 갖고 회원이 되었다가 점차 열성적으로 빠져든다. 그들은 대부분 ‘삶의 목적’이나 ‘인생의 진실’ 같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여기에서 찾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단순히 믿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라엘의 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하려 한다. 자신들을 알리기 위해 우주인 복장도 불사하고 ‘UFO 연구회’ 등의 동호회를 만들어 사람을 끌어모은다. 시시때때로 거리로 나가 인간복제를 지지하는 서명운동을 벌인 이들은 이미 3만여 명의 시민에게서 받은 지지성명을 과학기술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

라엘리안 단체의 한 관계자는 “회원들에겐 뭔가 특이한 점이 한 가지씩 있다. 그들은 대부분 적당히 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고, 삶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다”고 말한다. 자영업을 하는 곽모씨(31) 역시 “라엘이 말하는 인간복제가 영원한 삶에 이르는 방법이다”고 굳게 믿었다.

“교회도 다니고, 절도 가봤지만 나 자신과 인생에 대한 궁극적 해답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종교는 모든 과학과 새로운 것에 반대해 왔다. 신 대신 과학을 최고의 가치에 두는 라엘 사상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상세계를 실현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대안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렇듯 젊은층을 대상으로 계속 퍼지는 라엘리안 운동에 대해 종교계 과학계 시민단체에서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외계인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라엘의 기본사상은 기존의 기독교 사상과 전면 배치하는 것으로, 기독교계의 반발이 가장 거세다. 장신대 임성빈 교수(기독교윤리학)는 라엘리안 운동을 “유사과학주의에 영적 신비주의가 결합한 뉴에이지 현상이다”고 설명한다. “사회적 혼란과 현대인이 느끼는 정체성의 불안을 이용해 과학적 이슈에 대한 사람의 관심을 증폭시켜 종교세력의 확장과 상업적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것이 라엘리안 운동을 비판하는 이들의 공통적 견해다.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혼란을 느껴 뭔가를 찾아 헤맬 때 죽음 너머의 세계, 외계 등에 관심을 갖기 쉽다. 과학을 도외시해 온 전통 종교보다 더 자극적이고 새로운 느낌이 드는 라엘 사상은 이 일에 정당하고도 거룩한 목적이 있다고 믿게끔 사람을 설득한다”(장석만 종교문화연구소장).

라엘 현상이 비단 국내에 국한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 곳곳에 미신적 요소가 남아 있고 인간복제를 금지할 법률조차 마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라엘의 복제회사인 클로나이드가 한국 공략에 적극 나섰다는 보도까지 나옴에 따라 이런 우려는 더 커졌다. 라엘리안 한국지부 관계자는 “최근 방한한 라엘이 ‘한국은 전통과 미래가 잘 조화된 나라다. 한국인은 적극적이고 수용능력이 크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는 밝다’며 한국에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고 전한다. 한국이 세계 라엘리안의 중심이 되길 바라는 국내 라엘리안 회원은 DMZ 내 ‘지구대사관’(외계인의 공식적 지구 방문을 위한 장소) 건립을 위해 성금을 모으고 정부에 청원서까지 제출했다.

‘과학적 영생’ 추구하는 라엘리안
과학세대 대표 김동광씨는 “과학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신흥종교는 라엘리안 운동 외에도 여럿 있지만 ‘인간복제’ 등 21세기의 핵심기술을 직접 다루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개입한다는 면에서 라엘리안의 차이점이 있다. 복제기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추었고 난자 관리 등이 엉성한 상황에서 빨리 관계 법령을 정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라엘리안의 표적이자 기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난치병 치료를 위한 배아복제 연구의 허용여부를 두고 논쟁하는 지금, 이 단계를 훨씬 뛰어넘는 인간복제 문제를 거듭 거론함으로써 논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도 문제다. 생명과학의 권위자인 서울대 황우석 교수(수의학)는 “연구는 과학자가 하는 것이지만, 연구 결과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사회 전체의 합의점을 찾아야 할 시점에서 저만치 앞서나가는 이들의 주장은 사람을 ‘과학 아닌 과학’에 경도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살 만큼 살고 죽을 때도 멋지게 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고 아름다운 상태로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과학이 인간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영생’마저 보장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일으킬 엄청난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희망과 재앙이 함께 들어 있는 판도라의 상자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주간동아 2001.09.20 302호 (p68~69)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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