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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동교동 정치’

굴레 벗은 한화갑, 날개 단 이인제

동교동계 구파 약진에 대선후보들 희비 엇갈려… 김중권·노무현씨는 타격, 김근태 독자행보?

  •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굴레 벗은 한화갑, 날개 단 이인제

굴레 벗은 한화갑, 날개 단 이인제
여권 당정개편 이후 민주당에서 관심을 끈 대선 주자는 단연 한화갑 이인제 최고위원이다. 먼저 한위원은 ‘경선 제한 대표직 임명’을 거부함으로써 ‘호남 출신 후보 출마 불가론’의 고리를 끊었다. 그는 지난 9월7일 조건부 당 대표를 거부한 일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필요시 당원과 국민의 의견을 수렴, 더욱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출마의사를 더욱 강도 높게 재확인한 말로 볼 수 있다.

굴레 벗은 한화갑, 날개 단 이인제
이번 당정개편과 민주당 내 대선주자의 상관관계를 순전히 이해득실 차원에서 따져보았을 때 한위원에게는 이득과 손실이 상반되게 교차한다. 가장 큰 이득은 역시 동교동계 비서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대선주자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점이다. 동교동 신파에 가까운 문희상 의원은 지난 9월6일 한최고위원이 소집한 측근 의원 모임에서 마지막까지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포기하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당 대표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위원은 이를 끝내 거부했고, 대선주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위원의 이런 행보와 관련해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10일 ‘대선후보 경쟁 보장’ 원칙을 재확인한 것은 매우 의미가 깊다. 박대변인은 이날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은 자유롭고 공정하게 이뤄질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절대 보장할 것이다”고 말했다. 박대변인의 이 같은 발표는 첫째로 어떠한 경우에도 대선후보가 대통령의 낙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한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에서 승리한 사람이 대선후보로 결정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내 경선 차원에서만 보았을 때 가장 유력한 사람은 역시 한화갑 최고위원이다. 최고위원을 선출한 지난해 전당대회경선에서 1위로 당선된 사람이 한위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한위원에 대한 대의원 지지표가 지금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한위원에게 치명적인 약점은 그의 표현대로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한다. 민주당 장영달 의원이 지난 8월22일 “김대중 대통령이 호남 출신이니 차기 후보가 호남 출신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는 승복할 수 없다”고 ‘호남후보론’을 제기한 데 대해, 이훈평 의원이 24일 “호남 후보는 당선 가능성도 없으며, 경선에 나오는 것 자체도 반대한다”고 즉각 반박하고 나선 것은 바로 한위원 출마에 대한 당내의 엇갈리는 기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훈평 의원의 ‘호남후보 불가론’은 동교동계 구파의 일반적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동교동계 구파가 청와대와 당을 장악한 이번 당정개편은 기본적으로 한위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교동계 구파는 이인제 최고위원을 지지한다는 것이 지배적 시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당내 최대 세력으로 이인제 최고위원을 암묵적으로 지원한 권노갑·한광옥 연합군이 노골적으로 한위원을 견제했는데도 이최고위원이 끝내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사실을 상기하면 한위원의 ‘저력’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당정개편으로 날개를 단 사람은 이인제 최고위원. 이위원 측근 인사들이 “이럴 때일수록 처신에 조심해야 한다”고 표정 관리에 들어갈 만큼 ‘이인제 대세론’의 확산 기류를 의심치 않는다. 이위원측은 현재 여권의 여건이나 상황으로 판단할 때 당내 경선을 내년 3∼4월께 치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내년 6월의 지방선거를 대선후보 자격으로 진두지휘하는 상황까지 대비하고 있다.

따라서 9월7일 이위원 측근 의원들의 모임은 대세론에 박차를 가하는 일종의 출정식 성격을 띤다. 이 모임에는 기존의 이위원 지지 의원들 이외에 이훈평 조재환 의원 같은 동교동계 구파와 설송웅 의원 같은 한광옥 대표 계열의 인사도 처음으로 참석했다. ‘권노갑·한광옥 연합’의 지원 아래 ‘이인제 캠프’의 외연이 더욱 넓어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날 모임에는 26명의 현역 의원이 참석했으나, 이위원측은 민주당 현역 의원(114명)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이위원 쪽으로 이미 기울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위원 캠프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당내 대선후보 경선 구도는 이위원과 한위원의 2강 구도로 집약했다는 것. 이위원이 한위원의 대표 기용설이 나오자 즉각 “대표는 대선 경선 주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동교동계 구파와 같은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은 한위원을 최대 라이벌로 상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무현 고문은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탄력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여권 핵심의 관심과 칭찬은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에 대한’ 일시적 효용만을 지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위원과 권노갑·한광옥 연합과의 지나친 유착관계는 다른 주자들이 뭉치는 ‘반이인제 연합’을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위험성 역시 내포한다. 일종의 후견인인 권노갑 전 위원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좋지 않다는 점도 매우 큰 부담이다. 이위원이 이런 부담을 떨치려 할 때 파열음도 미리 예정된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위원에게는 이런 ‘역풍’을 최소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김중권 전 대표와 노무현 고문은 해임안 정국에 이은 당정개편에서 상당히 큰 타격을 입었다. ‘영남후보론’이 졸지에 허공에 뜬 상태가 된 것. 물론 영남후보론을 완전히 배제했다고 보기는 아직 힘들다. 그런데도 김대통령의 친정체제 강화와 ‘빅3’ 가운데 김 전 대표만의 낙마는 ‘영남 배려’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는다. 김 전 대표의 낙마는 곧 동진정책의 포기로 받아들여지는 것. 대구·경북 지역(TK)에서 “그럴 줄 알았다. 결국 일회용에 지나지 않는 것이 입증되지 않았느냐”는 여론이 퍼질 때 여권의 부담감은 상당하다.

굴레 벗은 한화갑, 날개 단 이인제
김 전 대표는 “이제 할 말은 분명히 하겠다”고 자신의 행보가 위축될 가능성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대선국면에서 영남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면 자신이 완전히 배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노무현 고문 역시 “동교동 구파가 이인제 위원에게만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는 반응을 보인다. 노고문측은 “노고문이 동교동 신·구파와 두루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한다. 김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부산·경남(PK)을 대표하는 한 아직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자체 판단이다. 지난 9월6일 부산에서 대대적 후원회를 연 노고문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또 한 차례의 후원회 개최로 본격적 대권 레이스에 불을 지필 예정이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번 사태를 통해 동교동계 구파와 대립각을 첨예하게 세움으로써 그동안 선이 약간 흐려진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았다. 이는 기대가 전혀 없지 않던 여권 핵심의 ‘지원’을 포기하고, 이제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김위원의 한 측근은 “앞으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는 말로 김위원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초·재선 의원이라고 다 개혁지향적인 것은 아니지만, 당내 상당수의 개혁적 소장파가 포진한 만큼 이들의 포용이나 연대를 통해 김위원이 개척할 수 있는 입지는 그리 좁아 보이지 않는다.

한광옥 대표체제의 출범은 대선후보의 효율적 관리를 노린 것이지만, 이는 역으로 여권의 대권 레이스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대표 임명으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그려진 여권 대선후보들의 희비 쌍곡선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01.09.20 302호 (p20~21)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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