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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수수께끼보다 더 어렵네

‘도대체 무슨 제품을’ 궁금증 유발 … 느낌·감각 중시 10대 공략 이미지 구축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광고가 수수께끼보다 더 어렵네

광고가 수수께끼보다 더 어렵네
장면 하나. 어느 학교의 교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학생을 소개한다. 그런데 전학생은 뚱뚱한 배와 큰 머리의 로봇(?)이다. 묘한 전학생은 교실로 들어오려다 큰 머리와 배가 문에 끼여 낑낑거린다. 그때 교실 안의 한 여학생이 일어나 “반가워” 하고 소리치며 손을 흔든다.

장면 둘. 빛 바랜 화면에서 한 여학생이 자고 있다. 그 위로 카피가 흐른다. ‘나는 잠을 잔다…. 졸업장을 받는 순간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졸업식 장면이 잠깐 비치고 여학생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세상을 다 가져라. 나’.

당신은 이러한 광고를 이해하는가? 아니, 무슨 제품의 광고인지 알아보기라도 하는가? 알쏭달쏭한 광고, 수수께끼 같은 광고가 TV 화면에 대거 등장하였다. 이 광고들은 대부분 10대를 겨냥한 것. 앞서 말한 첫번째 광고는 LG 텔레콤의 10대 전용 브랜드 ‘카이 홀맨’ 시리즈이며, 두 번째는 이동통신 n016의 브랜드 ‘나’(Na)의 시리즈 광고다. 이밖에도 ‘내가 큰가, 작은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학생이 등장하는 KTF의 10대 브랜드 ‘비기’(bigi) 시리즈, 난수표 같은 숫자가 카피의 전부인 롯데제과의 제크 샌드 등이 대표적인 수수께끼 광고로 꼽힌다.

난해한 광고의 선두주자는 지난 97년 런칭한 ‘닉스’ 광고다. 이 광고에는 무작정 골목길을 달리는 모델이 등장한다. 이어 나타난 SK텔레콤의 TTL 광고는 큰 눈의 이국적 모델, 그리고 뜻 모를 묘한 이미지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화면에 느닷없이 올챙이나 고래뼈가 등장하는가 하면, 박제된 물고기가 날아가고 깨진 어항에 휴대폰이 들어 있기도 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티저 광고’나 ‘포스트모더니즘 광고’라는 말을 유행시킨 이 시리즈는 광고감독 박명천을 새로운 스타로 탄생시켰다.

TTL 광고에서 사람을 가장 괴롭힌 점은 ‘과연 저 광고가 무슨 뜻인가’라는 수수께끼였다. 상품의 장점과 특징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광고에만 익숙한 소비자들은 뜻 모를 이미지만 나열하는 ‘불친절한’ 광고에 호기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궁금증이야말로 이 광고의 제작자들이 노린 전략.



광고가 수수께끼보다 더 어렵네
“젊은 세대는 답이 뻔한 광고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들의 관심을 끌려면 ‘이게 뭔지 한번 알아맞혀 볼래’ 하고 화두를 던지는 광고가 더 낫다는 판단이었죠.” TTL 광고의 제작대행사인 화이트 커뮤니케이션 최경란 대리의 설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TTL 광고는 전파를 탄 지 보름 만에 제품인지도가 80%를 넘어섰으며 매출이 4배 이상 늘기도 했다.

20대를 타깃으로 삼은 TTL 광고가 무언가 모호하고 신비스러운,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창조했다면 최근의 광고는 타깃의 연령을 더욱 낮춰 10대를 공략하고 있다. 기존 가입자 수가 포화상태에 이른 이동통신업체들이 새로운 가입 대상을 10대로 설정하고, 우선 광고로 10대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나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광고의 타깃층인 10대 역시 수수께끼 같은 광고의 뜻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10대의 특징은 즉각적으로 이미지를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기성세대가 광고의 뜻을 모른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는 반면, 10대는 그 이미지가 마음에 들면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라 좋은가 아닌가이기 때문이죠.” 금강기획의 양웅 부장은 순간의 느낌과 감각을 중시하는 10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기호에 맞는 이미지 광고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기성세대가 느끼는 또 하나의 의문은 엄연한 제품 광고에서 제품에 대한 설명이 단 한마디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제품의 이름만 등장할 뿐이다. 특히 제품을 눈으로 볼 수 없는 이동통신 서비스 광고에서 이러한 점은 극대화한다.

광고가 수수께끼보다 더 어렵네
“어차피 이동통신 서비스의 제품력은 엇비슷합니다. 그렇다면 타사와 비슷한 제품의 장점을 나열하기보다는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브랜드의 파워를 키우는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10대는 제품의 정보를 얻는 데 적극적입니다. 일단 브랜드 이미지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면 인터넷이나 친구들을 통해 제품의 상세한 정보를 얻어냅니다.” 나(Na) 시리즈의 광고를 제작한 웰커뮤니케이션즈의 이혁종 차장은 광고를 통해 10대의 선호도를 높이는 것이 제품에 대한 설명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울한 세태를 영상에 담은 ‘나 시리즈’ 광고에 대한 10대의 호응도는 상당히 높다는 것.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세상을 다 가져라’와 같은 카피가 등장하는 ‘나 시리즈’에는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 주인공이 되고픈 청소년의 열망이 숨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수께끼 같은 광고라 해도 그 속에 일정한 이미지와 기호는 분명히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카이 홀맨 시리즈의 경우, 교실·전학생 등의 이미지로 새로운 친구가 나타날 것이라는 암시를 던져준다. ‘4 5683 983’ 같은 제크 샌드 광고의 숫자 카피는 10대에게는 오히려 너무 뻔한 상징이다. 이 숫자는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를 뜻하기 때문이다. 화면에 떠오르는 숫자대로 휴대폰을 누르면 ‘I love you’와 ‘제크 샌드’(Zec Sand)가 된다. 이처럼 10대를 대상으로 한 광고는 20대가 타깃인 광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해독이 쉬운 편이다.

“광고를 보는 10대의 눈은 예전보다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너무 어려워도, 너무 구구절절해도 안 됩니다. 그러면서도 유치하지 않도록 이미지 수위를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캐릭터를 내세워 친근하게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10대가 카이 홀맨 캐릭터를 친구로 느끼면 자연히 가입으로 유도되겠죠.” 카이 홀맨 시리즈 광고의 대행사인 메이트 커뮤니케이션즈 정호영 차장의 설명이다.

영국의 광고인 린다 그레이엄은 “광고는 항상 그것을 둘러싼 사회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수수께끼 같은 광고, 이미지를 앞세운 광고는 논리보다 감각을 중시하고 특이한 것, 남다른 것에 열광하는 10대의 세태를 반영하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의 광고는 사회상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과거 TV 드라마나 영화가 유행이나 라이프 스타일을 이끌었다면 요즘은 광고가 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광고의 파생효과는 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입니다.” 광고 칼럼니스트 이현우씨는 수수께끼 같은 광고야말로 광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고 진단했다.

광고는 경제에서 오락과 문화의 영역을 넘어섰다. 광고가 하나의 문화생산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대해 경계하지 않고, 무작정 받아들여도 좋은 것일까.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는 “모든 광고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장기적인 투자다”고 말했다. 광고는 새로운 문화를 선도하는 장르인 동시에 거대한 자본의 음모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광고의 힘이며 위력이다.



주간동아 2001.09.13 301호 (p74~75)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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