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중점기획|프리터, 선택인가 방황인가

“내 삶의 코드는 자유”

정규직업 없이 이직과 전직 되풀이 … ‘전문프리랜서’ 꿈꾸지만 현실은 냉혹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내 삶의 코드는 자유”

“내 삶의 코드는 자유”
김지현씨(가명, 24)는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했다.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대학에서 사회학과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당장 취직할 생각은 없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로 번다. 대신 사람들이 인사처럼 “졸업 후 무슨 일 하느냐”고 물을 때를 위해 준비한 대답이 있다. ‘출판사의 문서편집 및 교정 업무’가 그의 공식 아르바이트다. 여기에 전공을 살려 학습지 회사에서 사회과목 검토작업을 한다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공식 아르바이트는 한 달에 1주일이나 4~5일 정도면 끝나고 비공식 아르바이트로 고2, 고3 과외지도를 한다. 이렇게 해서 한 달이면 80만~90만 원 가량을 번다. 그 정도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단다.

“대학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1년을 휴학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때 꼭 취직을 안 하고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졸업 후 초기에는 사무보조, 학습지 비디오 검수작업, 모바일 회사에서 퀴즈 만들기 등 가리지 않고 일했어요. 일거리는 친구들을 통해 알음알음 들어오기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너무 일을 벌리니까 놀 시간이 없더라고요. 취직하지 않은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아르바이트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그만뒀어요.”

최소한의 생활비를 버는 일 외에 그는 요즘 컴퓨터 동아리에서 프로그래밍과 MID를 배운다. 그렇다고 이것을 배워 반드시 뭔가 하겠다는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졸업 후 반 년 정도 지나 친구들 대부분이 어딘가에 자리잡았는데 만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지겹다’ ‘누구 꼴 보기 싫어 일 못하겠다’는 불만뿐이었어요. ‘재미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어요. 그런 것을 보면 취직할 생각이 사라지죠. 아르바이트하는 회사에서 입사 제의를 받기도 했는데 거절했어요. 그 일을 하기에는 제가 아까워서요.”

“내 삶의 코드는 자유”
일본에서는 김지현씨처럼 정규직 취업 대신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켜 프리터(free + arbeiter)라고 한다. 프리터라는 말은 지난 87년 취업정보 전문회사인 리쿠르트사가 처음 사용했는데 당시는 정규직에 취직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하면서 속 편하게 사는 소수의 젊은이들을 지칭했다. 그들은 사무보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해외여행하거나 고급 브랜드 물품을 사는 등 한마디로 팔자 좋은 젊은이들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일본 노동성이 ‘노동백서’에서 1997년 시점으로 프리터 수가 15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한 후 일본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일본노동연구소나 문부성의 진로조사에서 대졸자는 4명 중 1명, 고졸자는 3명 중 1명꼴로 정규직에 진출하지 않으며, 20~34세의 미혼남녀 약 1500만 명 가운데 10% 이상이 프리터라고 하자 더욱 위기감이 팽배했다. 2000년 현재 일본의 프리터 수는 200만 명을 헤아린다.

한국의 상황도 일본과 비교해 나을 게 없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실업상태에 있거나, 교육훈련을 받지 않으면서 이렇다 할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15~29세) 수가 2000년 현재 105만4000명이다(이 중 통계상 실업자로 분류되는 사람은 22만4000명뿐이다). 우리 나라 청년 100명 가운데 12명은 유휴인력인 셈. 이들이 바로 한국판 프리터일 가능성이 높다.

“내 삶의 코드는 자유”
변갑수씨(26)의 공식직함은 ‘독립예술제’ 만화프로그래머다. 그는 벌써 5년째 독립예술제 사무국에서 일하지만 보수를 받은 적이 없다. 그냥 좋아서 한다. 최근에는 영화 만드는 일에도 관여하였다. SF물로 애니메이션 부분 기획이나 기술적 부분을 맡으며 직함은 아트디렉터다. 두 달 가까이 이 일을 하면서 60만 원 정도 받았지만 애니메이션 제작비로 더 많은 돈이 들었기 때문에 대차대조표는 마이너스 상태.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이니까 계속한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도 벌면 좋은데 그게 안 되니까 아르바이트하는 거죠. 저는 아르바이트도 두 종류로 봐요. 생활을 위한 아르바이트와 일과 관련된 아르바이트가 있죠. 살기 위해 식당 보조, 카페 서빙, 신문배달도 했어요. 요즘은 PC방 아르바이트와 새마을호 아르바이트만 하죠. 새마을호 특실은 24시간 음악을 틀어주는데 헤드폰을 날라다 주는 일이에요. 24시간 근무해서 격일로 한 달 꼬박 하면 50만~60만 원 정도 벌어요. 일로 하는 아르바이트는 뮤직 비디오나 단편영화 제작처럼 제가 좋아서 하는 거죠.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는 돈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제 돈을 써요.”

프리터가 되는 데는 환경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지난 10년 간 계속된 장기 불황으로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하지 않아 젊은층의 사회진출 기회가 대폭 줄어들자 이들이 프리터로 돌아섰다. 종신고용 신화가 무너지면서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도 프리터가 되는 한 원인이다.

우리 나라도 IMF 위기 이후 구직을 포기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프리터가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정착하였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학교를 마치고 첫 일자리를 얻기까지 평균 8.5개월이 걸린다. 그나마 첫 일자리조차 3분의 1 가량은 하향취업 내지 일자리 불일치(전공·계열) 상태여서 사회초년생들은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한 출발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연세대 취업정보실이 발표한 ‘2001년 하반기 대졸취업 기상도’를 보면, 구직자는 내년 졸업예정자 17만 명과 취업재수생 26만 명을 합해 43만 명인 반면 181개 기업이 뽑을 대졸 신입사원은 7만30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웬만한 기업에 취직하려면 평균 6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경희대 취업정보실의 이종구 박사는 “구직자 적체현상으로 취업 사이클도 계속 짧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지난 8월 졸업한 학생은 10월중 취업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면 이미 내년 2월 졸업예정자와의 경쟁에서 밀린다. 2월 졸업예정자 역시 그해 5월까지가 마지노선이다. 기업은 5월 이후 8월까지 신규채용하지 않고 곧바로 하반기 채용을 실시해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졸업생이 유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예비 사회인은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6 대 1의 경쟁을 뚫기 위해 취업에 총력을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아예 취업 레이스 밖으로 뛰쳐나올 것인가. 후자라면 백수거나 프리터가 될 수밖에 없다.

대학졸업 후 아르바이트, 유학, 짧은 직장생활, 다시 백수에 가까운 아르바이트 생활 끝에 지난 3월 백수세상(www.100soo.co.kr)이라는 사이트를 연 심재곤 사장(31)은 “프리터도 넓은 의미의 백수가 아니냐. 우리 나라의 교육시스템과 보수적인 분위기가 백수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예를 들어 입사 면접 때 대학 졸업 후 2~3개월 정도 여행 다니며 놀았다고 하면 뽑아줄 회사가 없을 거예요. 차라리 유학하려고 준비하다 사정상 포기했다고 거짓말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죠. 노는 꼴 못 보는 거예요. 또 직장을 구하는 사람에게 자꾸 어디서 일한 경력을 요구하는데 경력이 아니라 능력을 봐야죠. 회사가 구시대적 가치를 중시하는 반면 백수의 생각은 사회적 통념을 훨씬 앞서가거든요. 나인투파이브(9 to 5) 같은 답답한 조직생활을 거부하고 개성 있게 살고 싶어하죠. 그 간격이 너무 커요.”

심재곤 사장은 일자리 양산에 급급한 정부의 실업대책과 “아직도 구인난을 겪는 분야가 많고 일자리가 남아도는데 실업자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직업을 찾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식의 보도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 대구에서 환경미화원을 공채했는데 7.3 대 1의 높은 경쟁률에 대학원까지 마친 40대가 합격했다는 보도를 보았어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에요. 사회적 낭비죠. 대부분의 자발적 백수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가난한 백수생활을 계속할 사람입니다. 그들에게 관심 없는 일자리를 아무리 제시해도 소용 없어요.”

프리터들은 부모의 경제적 뒷받침,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일자리, 그리고 독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부모가 더 이상 경제적 뒷받침을 할 수 없는 경우, 서른이 넘어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자리가 적당하지 않을 경우, 그리고 결혼 상대가 생긴 경우 등 자의든 타의든 프리터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온다. 문제는 내세울 경력도 없고, 숙련된 기술도 없는 이들을 받아줄 곳이 없다는 가혹한 현실이다.

“내 삶의 코드는 자유”
이미 프리터의 역사가 긴 일본에서 지난해 39세 미만의 미혼 프리터 270명을 대상으로 ‘10년 후 이상적인 취업 형태’(‘표’ 참조)를 조사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도 계속 프리터를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직업은 자유전문직(전문 프리랜서). 그러나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의 정사원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스스로의 미래를 예상했다. 여성의 경우 이상과 현실 모두 ‘배우자의 부양을 받으며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대답이 가장 많아 안이한 직업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사회에 ‘패러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 부모에 얹혀 살며 아르바이트로 인생을 즐기는 독신자)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야마다 마사히로 교수(도쿄학예대 교육부)는 이런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시사월간지 ‘문예춘추’ 7월호에 ‘200만 프리터에게 내일은 없다’는 글을 기고했다. 여기서 야마다 교수는 “지금의 프리터란 기업에 이용당하는 값싼 일회용 노동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내 삶의 코드는 자유”
실제로 프리터의 꿈인 프리랜서의 현실도 자유롭게 일하며 고소득을 올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규직 사원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한 직업의식을 요구하는 것이 프리랜서의 세계다. 삼성영상사업단 공연기획자로 있다 독립한 김의신씨(32)는 “회사를 그만둔 후 자유를 얻은 만큼 마음 고생이 심하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여러 사람이 아이디어를 모아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적으로 혼자 아이디어를 내야 하니까 힘들 때가 많죠. 또 회사업무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프리랜서는 잠 자는 시간 빼고는 모두 일하는 시간일 수도 있어요. 시간이 많은 것 같은데 실제 쓸 시간은 별로 없는 게 프리랜서 생활이죠. 회사 다닐 때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미용실에 갔는데 요즘은 넉 달에 한 번 그것도 커트만 하고 와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요. 여름휴가요? 아직 못 갔습니다. 9월 둘쨋주에 출장을 겸해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올 계획이에요. 처음엔 휴가로 계획한 건대 오는 김에 만나자는 사람이 많아 출장이 되어버렸네요.” 김씨는 조직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고 자기 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라는 반응을 보였다. “천재적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에게나 가능한 일이죠. 프리랜서라 해도 결국 여러 사람이 모여 팀워크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조직경험이 중요해요.”

“내 삶의 코드는 자유”
문화기획자이며 평론가, 인디 록밴드 ‘허벅지’의 리더로 20대 대부분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온 안이영노씨(35)는 현재의 프리터 문제를 단순히 실업구제 차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프로가 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시스템 필요

“프리터가 되는 것은 일종의 사회문화적 트렌드예요. 취업할 기회가 제한적인 사회구조적 원인도 있지만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의식의 문제라는 것이죠.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조직으로 들어오지 않는 삶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이제 많은 젊은이가 기업에 취직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정부가 고용창출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는 거죠. 젊은 세대는 평생 원치 않는 일에 묶여 사는 것을 과거 농노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프리터가 되는 거예요. 이제는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프로가 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하는 시스템이 필요해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 24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거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평생 아르바이트하며 산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봐요.”

그는 인생을 설계하는 데 3W 법칙을 제시한다. 첫째 wish는 타자가 내게 기대하는 삶(의사·변호사 등 사회적 성공), 둘째 want는 내가 바라는 삶(타고난 능력에 관계 없이 해보고 싶은 일), 셋째 well은 현재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wish를 want로 착각하며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또 well에 매달리다 보면 want의 가능성을 잊어버린다. 프리터는 현실적이지는 않아도 want에 충실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386세대나 서태지 세대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는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식으로 사고를 바꿀 단계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고, 반면 내가 어떤 일에 몸담고 있다면 그 일에 계속 애정을 가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죠.” 안이영노씨는 ‘하고 싶은 일’과 관련한 선택의 고민이 단지 프리터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6 대 1의 경쟁을 뚫고 누구보다 빨리 현재의 직업과 직장에 안주한 사람도 종내 비슷한 고민에 빠진다. 그런 점에서 프리터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너무 빨리 알았거나, 반대로 너무 늦게 깨달은 사람이다.





주간동아 2001.09.13 301호 (p68~71)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7

제 1217호

2019.12.06

아이돌 카페 팝업스토어 탐방기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