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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軍 발칸 개입 “삼세 번”

3500명 투입 알바니아 반군 무기 회수 나서 … ‘30일 뒤 철수’ 지켜질지는 미지수

  •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나토軍 발칸 개입 “삼세 번”

지난 2월 이후 6개월을 끌어온 마케도니아 분쟁이 마침내 나토(NATO)군의 개입을 불렀다. 나토군이 지난 95년 이후 보스니아 코소보에 이어 세 번째로 발칸에 발을 디딘 셈이다. 선발대 400명을 포함한 영국군 1800명을 주력으로 한 3500명 규모의 나토군은 알바니아 반군(NLA)의 거점에 무기 반납처를 마련해 8월 말부터 무기 회수에 들어갔다. 이른바 에센셜 하비스트(Essential Harvest) 작전이다. 작전 시한을 30일간으로 한정한 탓인지 나토군은 자신들을 ‘마케도니아 평화유지군’(MFOR)으로 부르는 것을 한사코 거부한다. 코소보 주둔 나토평화유지군(KFOR)이나 보스니아 주둔 나토평화유지군(SFOR)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칫 지난 10년 새 다섯 번째 전쟁으로 기록될 뻔한 사태는 이로써 가라앉는 듯하지만, 휴화산마냥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곳이 발칸이고 마케도니아다.

어휘 사전에서 ‘balkanize’(발칸화하다)란 단어는 (발칸반도의 경우처럼) 서로 적대적인 작은 국가로 쪼개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갈등·분쟁·분열의 상징인 발칸은 지난 90년대 내내 총성이 멎을 날이 없었다. 분열의 먹구름은 이번에는 마케도니아를 휘감았다. 일단의 알바니아계 반군과 마케도니아 정부군 사이의 전투는 곧 끝날 듯 하면서도 반 년을 끌어왔다. 알바니아계 반군의 저항은 만만치 않지만, 기본적으로 마케도니아 정부군의 허술한 무기 탓도 크다.

슬라브·알바니아계 인종 갈등 극심

마케도니아는 1인당 국민소득이 3800달러인 가난한 나라다. 궁하다 못해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해마다 1000만 달러쯤을 지원 받는 처지다. 정부군 무기라고 해봐야 지난 91년 유고연방에서 독립하면서 구유고 정부군이 조금 남기고 간, 고물 장갑차가 고작이다. 올 들어 급히 들여온 공격용 아파치 헬기 2대가 정부군의 간판무기였다.

그러니 반군을 쉽사리 제압하기는커녕 산간지대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NLA의 매복에 번번이 희생자를 내왔다. 따라서 이번에 알바니아계 반군이 “우리가 이겼다”고 주장할 만하다. 국제적인 눈길을 마케도니아로 잡아당기는 데 성공했고, 공직사회 취업 제한 등 그동안 차별을 받아온 알바니아계 권리를 법적·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마케도니아의 보리스 트랴코프스키 대통령이 “우리의 위기를 끝내려는 전반적인 계획의 결정적인 계기다”며 나토군의 개입을 환영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속마음이 쓰린 게 사실일 것이다.



마케도니아는 인구 200만 명의 작은 나라다. 인종 구성은 슬라브계 67%, 알바니아계 23%, 기타 10% 등이다. 우리 남한 땅의 4분의 1 크기밖에 안 된다. 필자는 내전이 일어나기 전인 99년과 2000년 두 번에 걸쳐 코소보로 가는 길에 수도 스코페에 들렀는데, 그때 필자가 받은 인상은 비교적 정돈이 잘 된 아담한 도시였다. 그러나 안을 한발짝 들여다보면 이 작은 도시 안에 인종 갈등과 관련한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이를테면 음식점 주인이 알바니아계면, 종업원들도 알바니아계였다. 주인이 슬라브계면, 종업원들도 슬라브계였다. 공무원들은 슬라브계가 많은 편이고, 특히 군인과 경찰은 슬라브계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를테면 마케도니아 경찰은 95% 이상이 슬라브계로 채워져 있다. 실업률은 매우 높아 공식통계(1999년)는 35%지만, 알바니아계 실업률은 이보다 더 높은 상태로 불만의 주요 요인이 되어 왔다.

마케도니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슬라브계 사람은 스스로를 ‘정통 마케도니아인’(Orthodox Macedonian)이라고 한다. 명칭이야 어떻든 세르비아와 마찬가지로 슬라브계다. 1999년 봄 나토의 세르비아-코소보 폭격이 벌어지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코소보 ‘인종청소’가 한창일 때, 마케도니아에는 많은 알바니아계 난민이 밀려 들어왔다. 그때 많은 난민이 마케도니아-코소보 국경지대에서 다시 한번 서러움을 맛보아야 했다. 알바니아계 난민의 대량 유입이 마케도니아 내 인구 균형을 깨뜨릴 것을 걱정한 나머지, 마케도니아 당국은 이들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까다로운 모습을 보였다. 국경선에서 이를 항의하는 난민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기도 했다.

나토군은 30일로 한정된 무기 회수 작전을 마치고 마케도니아에서 발을 빼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발칸반도의 휘발성 때문이다. 나토 사무총장 조지 로버트슨은 나토군의 마케도니아 진주는 “발칸 정세 안정을 위해 필요한 역사적인 발걸음이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반군에 대한 무기 회수가 제대로 이뤄질지, 그리고 30일 안에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그래서 일종의 도박이란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나토군이 진즉 마케도니아 사태에 개입해야 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보스니아나 코소보 때처럼 늑장을 부렸다는 지적이다. 부시 대통령이 대통령선거 유세 때부터 발칸에서 발을 빼겠다고 공언해 온 미국은 나토의 맹주를 자처하면서도 이번 마케도니아 개입에서는 병참 지원이 고작이다.

반군 NLA가 반납하겠다는 무기도 논란거리다. 그들이 무기의 상당량을 숨겨두고 훗날을 대비할 것임은 당연한 추론이다. 코소보해방군(KLA)도 나토군에게 무기를 반납한다고 했지만, 그 후 대량의 무기 은닉처들이 곳곳에서 발견된 바 있다. 마케도니아 당국은 NLA의 무기를 많게는 6만 점, 적어도 8000점쯤으로 본다. 그러나 NLA는 2000점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우리 무기가 정부가 말하는 대로 그렇게 많았더라면 우리는 스코페로 진격해 들어갔을 것이다”고 주장한다.

이번 6개월 내전을 거치며 마케도니아 내 슬라브계와 알바니아계의 관계는 더 악화한 상태다. 언제 또다시 내전이 벌어질지 모르는 긴장이 바닥에 깔려 있다. 마케도니아 내무장관 류베 보스코프스키는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반군 지도자 알리 아메티를 ‘전쟁범죄자’라고 하면서 마케도니아 법정에서 단죄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나토군이 물러나면 정부군이나 경찰이 알바니아계 반군을 단속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마케도니아는 다시 한번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질 게 뻔하다. 그런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알바니아계는 무기를 숨겼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2002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치를 때까지만이라도 나토군이 남아 있어야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마케도니아 슬라브계는 앞날이 어둡다. 지금의 인구비율이 뒤바뀔 전망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회교도들인 알바니아계는 산아제한 개념이 없다. 한 집에 10명의 아들딸을 두는 게 흔하다. 지금은 소수인 알바니아계가 언젠가는 자신들을 앞지를 것이란 불안이다. 바로 코소보가 좋은 보기다. 1900년대 초기만 하더라도 알바니아계보다 세르비아계 주민이 많던 코소보다. 그러나 코소보전쟁이 일어난 98년 당시엔 9 대 1로 역전된 상태였다.

유럽과 미국에 사무실을 둔 다국적 민간 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연구원이자 마케도니아 전문가로 이와 관련된 글을 많이 써온 브렌다 피어슨도 “권리 신장을 요구하는 알바니아계의 의식 밑바닥에는 언젠가는 그들이 다수를 차지할 것이란 생각들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1994년의 인구 센서스에서 알바니아계는 23%였다. 그런데 알바니아계의 출산율은 100명당 2.7명으로, 슬라브계의 1.3명보다 두 배를 넘는다. 그런 까닭에 7년 뒤인 지금 알바니아계는 30%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한다.

일부 알바니아계 사람은 1990년대 초 유고연방 해체 뒤로 이룰 수 없는 꿈들을 꾸어왔다. 기존의 알바니아 국가에 알바니아계가 다수인 코소보와 마케도니아 북서부 지역을 묶는 이른바 대(大)알바니아에의 꿈이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은 발칸반도 내에서의 어떠한 국경선 변경도 원하질 않는다. 갈등의 골이 패일 대로 패인 발칸의 유혈투쟁은 휴화산마냥 잠복해 있을 뿐이다.



주간동아 2001.09.06 300호 (p54~55)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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