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9

2001.08.30

대우차 부평공장 ‘GM 앞의 등불’

낡은 설비·노사갈등으로 인수 냉담 … 앞으로의 운명은 GM 손에 달려

  • < 강의영/ 연합뉴스 산업부 기자 > keykey@yonhapnews.co.kr

    입력2005-01-19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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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차 부평공장 ‘GM 앞의 등불’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이 미국 제너럴모터스(GM)사와의 대우자동차 매각 협상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GM이 대우차를 인수하면서 부평공장을 제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부평공장이 세인의 관심사로 부각되는 것. 대우차 관계자는 “GM은 부평공장이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GM이 부평공장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부평공장 하면 떠오르는 것은 낡은 설비, 낮은 생산성, 노사갈등 등 부정적 이미지 일변도다. GM이 부평공장 인수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도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러나 부평공장은 우리 입장에서는 자동차산업의 메카다. 부평공장의 역사는 1937년 일제가 군용차를 제작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에게는 55년 첫 국산 자동차인 ‘시발’을 생산한 한국자동차산업의 요람이다. 부평공장은 이후 62년 새나라자동차 → 65년 신진공업사 → 75년 6월7일 GM코리아 등으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수도권 자동차산업의 ‘허브’ 구실만은 계속해 왔다.

    대우가 GM코리아의 후신인 새한자동차의 산업은행 지분을 경영권과 함께 완전히 넘겨받아 김우중씨가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것이 78년 7월, 대우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한 것은 83년 1월이지만 대우차는 아직도 GM이 한국에 첫 진출한 6월7일을 창립기념일로 삼고 있다. “출범 당시 GM과의 지분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여서 GM코리아 설립일을 아직도 대우차 창립기념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대우차의 설명.

    부평공장은 이 과정에서도 ‘제미니’ 승용차, ‘맥스’ 픽업, ‘맵시’ 승용차, ‘로얄살롱’ 등의 새 차종을 잇달아 내놨다. 86년 7월에는 GM과 공동으로 4억3천만 달러를 투자, 대우차의 베스트셀링카인 ‘르망’을 시판하기 시작했고 다음해 4월에는 첫 수출을 이루기도 했다. 대우차는 92년 10월 GM과 결별했으나 부평공장에서는 에스페로(90년), 프린스·아카디아(92년), 씨에로(94년), 라노스(96년), 레간자(97년), 매그너스(99년) 등을 생산했다.

    부평공장에는 86년 르망을 생산하기 직전 완공된 승용1공장(30만 대 생산규모, 현재 라노스 생산)과 79년 가동을 시작한 승용2공장(20만 대, 레간자 매그너스 생산), 83년 설립한 기술연구소, 74년 준공한 가솔린엔진공장, 77년 건설한 프레스공장, 79년 완공한 차체조립공장 등이 27만 평 부지에 복잡하게 혼재해 있다. 또 대우차가 독자 개발한 2000cc 및 2500cc급 XK엔진 공장도 연말 양산을 앞두고 완공단계에 있다.



    부평공장은 중간중간 시설을 보완하고 개선하기는 했지만 90년 완공한 창원공장이나 97년 문을 연 군산공장 등에 비하면 시설이 오래된 것은 사실. 특히 부평의 나머지 공장은 개선해 나가면서 사용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르망 생산과 함께 지어진 도장공장(페인트숍)은 25년이 지나 전면 교체가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경우 1000억 원 안팎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부평공장 생산직 근로자의 근무연수와 평균연령이 각각 12.77년, 38.56세로 다른 공장보다 월등히 높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올해 들어 고령자 중심으로 1750명을 정리해고했는데도 여전히 군산공장(5.98년, 30.86세)이나 창원공장(7.88년, 33.66세)보다 월등히 높은 상황이다. 당연히 인건비 부담이 커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 셈이다. 부평공장의 오랜 역사에서 비롯된 숙명인지도 모른다.

    대우차 부평공장 ‘GM 앞의 등불’
    GM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문제는 ‘과격하다’는 평가를 받는 노조. GM이 이 공장 노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번 협상에서 부평공장 노조 집행부가 매각을 반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GM은 ‘부평공장 노조=무조건 강성=한국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GM의 이런 인식은 역설적이게도 부평공장 노조의 과거 ‘화려한 투쟁 경력’에서 비롯한 측면이 강하다. 부평공장은 85년 군사정권의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또 르망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이른바 운동권 위장취업자들이 중심이 되어 처음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인 곳이다. 또 6·29선언 직후인 87년 8월 중순 시작한 노사분규로 한 달 반 가량 르망을 전혀 생산하지 못하면서 내수판매와 수출에 심각한 차질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평공장의 수익성이 개선되는 등 긍정적인 면도 나타났다. 대우차가 지난 4월부터 영업이익을 내는 상황에서도 적자 사업장으로 남아 있는 부평공장이 지난 98년 6월 이후 3년여 만에 처음으로 지난 7월에 흑자를 기록한 것. 부평공장은 단일사업장으로 영업손실이 지난해 월평균 무려 264억 원에 달했으나 올들어 1/4분기 월평균 190억4300만 원, 2/4분기 월평균 57억2700만 원으로 규모를 줄여오다 7월에 드디어 50억5400만 원의 영업이익을 실현했다.

    이는 부평공장의 인건비와 재료비, 경상비 절감 효과가 누적한 결과라는 게 대우차의 설명이다. 대우차는 지난해 10월 말부터 자구계획에 돌입, 전체 인원의 30%가 넘는 7410명을 줄였는데 이 중 4156명이 부평공장에 집중되었을 정도로 부평공장은 가혹한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다른 지표들도 긍정적이다. 가동률(계획 대비 생산능력)은 승용1공장이 지난해 평균 90.3%에서 올해 1/4분기 94.5%, 2/4분기 100%, 7월 99.7%로 올랐다. 승용2공장은 지난해 93.5%에서 올해 1/4분기 97.1%, 2/4분기 98.8%, 7월 100%로 뛰었다. 차 한 대를 1시간에 생산하는 데 필요한 인력도 승용1공장이 지난해 20.7명에서 지난달 18.9명으로, 승용2공장이 지난해 25.9명에서 지난달 23.9명으로 개선했다.

    문제는 영업흑자 행진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차종을 계속 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부평공장의 주력 제품인 매그너스의 판매가 6월 1781대에서 7월 2283대로 28.2% 늘어 영업이익 실현에 한몫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라노스·레간자의 판매는 정체 내지 감소하고 있다. 또 각종 지표가 나아진 것이 판매 확대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결과라는 점도 ‘현재’보다 ‘미래’의 수익성을 중시하는 GM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확신이 서지 않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우차는 GM이 대우차를 ‘하청기지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부평공장을 매각 대상에 포함할 것으로 기대한다.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대우차 고위관계자도 “GM은 대우차를 아시아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보고 있으며 한국산 자동차가 갖는 3~5%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중시하고 있다. 부평공장을 포함하지 않고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절대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GM은 대우차의 연구개발 기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인수 이후에도 미국 시장에서 ‘대우차’ 브랜드로 팔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강조했다.

    대우차측은 대우차 전체에서 차지하는 부평공장의 위상도 매각 협상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의 핵심인 연구개발(R&D) 기능이 이곳에 있고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는 누비라의 엔진 및 트랜스미션 일부를 이곳에서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XK엔진 공장도 이곳에 세워진다. 따라서 언론 보도대로 부평공장을 인수하지 않고 이곳에서 독자 생산한 제품을 당분간 판매 대행해 주겠다는 GM의 전략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더라도 운영상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게 대우차의 판단이다.

    대우차 관계자는 “일부 기능과 시설만 가져간다면 같은 공장에서 신분과 급여, 복리후생이 다른 근로자들이 뒤섞여 일하게 되어 더 많은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연구소와 엔진공장을 옮긴다고 해도 수천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고 1년 이상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GM도 이를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부평공장의 강도 높은 인력조정과 몇 명의 노조 집행부를 제외한 대다수 생산·사무직 사원, 경영진 등 전체 구성원이 무분규 선언에 동의한 것 등도 GM이 평가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제 부평공장 운명은 GM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부평공장을 생활 터전으로 삼는 근로자뿐 아니라 국민 역시 답답하기만 할 뿐이다. GM이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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