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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알맹이 빠진 자동차 보험료 자율화

메이커-모델 따라 차등화시켜라

안전한 차량 보험료 할인은 당연… 품질 향상 유도 국내 자동차업계도 경쟁력 제고

  •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메이커-모델 따라 차등화시켜라

메이커-모델 따라 차등화시켜라
2001년형 엘란트라(국내에서는 아반떼XD)에 대한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연구원(IIHS)의 충돌시험 결과가 알려진 지난 7월18일 현대자동차는 “이해할 수 없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엘란트라는 이날 IIHS가 실시한 40마일 ‘고속’ 오프셋(offset) 충돌시험에서 4개 등급 중 가장 나쁜 P등급을 받았기 때문. 이는 엘란트라의 ‘안전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뜻한다. 지금까지 IIHS가 실시한 국산차에 대한 충돌시험 중 P등급을 받은 차종은 기아 세피아 96~2001년형과 대우 레간자 99~2001년형뿐이었다.

오프셋 충돌시험이란 자동차 정면 부위 중 40%만 부딪쳐 운전자의 안전도를 평가하는 것으로 IIHS가 95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안전기준을 정하는 국립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실시하는 100% 정면충돌에서 모든 자동차 회사가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자동차 안전도에 대한 변별력이 없어지자 IIHS가 고안한 것으로, 운전자들이 실제 충돌시 본능적으로 운전대를 꺾는다는 점에 착안했다.

IIHS가 엘란트라에 대해 지적한 문제는 에어백이 늦게 펴진다는 점. 현대차는 IIHS의 1차 시험 결과 운전자의 무릎 부상 가능성이 제기되자 2차 시험을 요구했는데, 여기에서 에어백 문제가 발견된 것이다. IIHS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2차시험 결과 에어백이 충돌 후 0.076초 만에 펴졌는데, 이 정도면 운전자가 운전대에 머리를 부딪쳐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현대측의 요구로 실시한 3차 시험에서도 여전히 에어백이 늦게 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엘란트라에 대한 이런 시험 결과가 미국의 자동차 안전 관련법규 위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NHTSA가 실시한 정면 또는 측면 충돌시험에서 최고등급인 별 5개 내지는 4 개를 받아 안전기준을 총족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대차측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은 IIHS가 이떤 기관인지를 알면 자연스럽게 풀린다.

IIHS는 1969년 미국 자동차보험회사들이 세운 기관으로 교통사고 경감 및 교통사고 사상자 감소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곳이다. 오늘날 안전벨트나 에어백 장착이 일반화한 것은 IIHS가 과학적으로 그 효과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IIHS는 그동안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 및 부상, 재산 손해를 감소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IIHS가 실시하는 충돌시험 가운데 15km ‘저속’ 오프셋 충돌시험 결과는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지만 미국 자동차보험사들이 신차에 대한 보험료를 책정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된다. 이 시험 결과 손상이 적고(손상성), 수리하기 쉬운(수리성) 것으로 평가 받은 차량에 대해 보험사들은 보험료 할인 혜택을 주고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보험료는 사고에 따른 차량 손해를 담보해 주는 자기차량 손해보험에 한한다. 보험사들은 이후 해마다 그 차량에 대한 실제 보험금 지급 명세를 바탕으로 애초 등급을 조정한다. 이렇게 해서 배기량이 같은 차량이라도 자동차 메이커별-모델별로 보험료에서 차이가 난다.



보험사들이 IIHS의 고속 충돌시험 결과를 보험료 책정에 직접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속 충돌시험 결과 나쁜 등급을 받은 차량은 손해율(지급 보험금/수입 보험료)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소비자들은 이런 차량의 보험료가 당연히 비쌀 것으로 예상, 해당 차량 구매를 회피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 보험료는 해당 차량의 중고차 가격과 함께 자동차 선택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이런 점에서 현대차가 IIHS 충돌시험 결과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IIHS의 충돌시험 결과 발표는 자동차 회사로 하여금 보험료가 싼, 바꿔 말하면 안전한 차 개발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보험금 지급을 줄이려는 보험회사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자동차 운전자의 안전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 지난 8월1일 자동차 보험료 자율화 실시 이후 보험료를 인하했다는 금융감독원 및 보험업계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올랐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점은 차치하고라도(34~35쪽 기사 참조) 진정한 의미의 자율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대상 물건의 ‘위험도’에 따라 보험사가 자율적으로 보험료를 차등화한다는 자율화의 근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여전히 배기량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보험료 자율화의 또 다른 핵심내용인 지역별 차등화 역시 현재의 국민 정서상 당분간은 실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 특수보험팀 허창언 팀장은 “지방자치 역사가 오랜 선진국의 경우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도 해당 지자체 책임 아래 정비하는 게 의무라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지역별 보험료 차등화에 대해서도 ‘저항’이 별로 없지만 우리의 경우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얘기 자체를 꺼내기도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지역별 차등화가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북 J군의 경우 워낙 자동차 사고가 많아 손해율이 높기 때문에 이 지역 차량의 자동차보험에 대해서는 보험회사들이 인수 자체를 꺼리는 실정이다. 이 경우 이 지역 보험료율을 높여 보험사들이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지역 주민에게도 이익이라는 점을 그들이 먼저 이해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메이커-모델 따라 차등화시켜라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는 그동안 보험업계에서 상당한 준비를 해왔는데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지난 7월 말 일부 언론에서 “ LG·대한화재가 내년 1월1일부터 자동차 제조업체와 차량 모델에 따라 보험료를 최고 12%까지 차등 적용하겠다고 금감원에 승인을 요청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었다. 해당 손보사와 금감원이 이를 공식 부인했기 때문이다.

금감원 허창언 팀장은 “보험상품을 어떻게 디자인하든 그것은 완전히 보험회사 자율이 되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그런 상품도 가능하긴 하지만 실제 그런 상품을 인가 신청한 곳은 없다”고 밝혔다. 허팀장은 이어 “그런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검증한 통계자료가 필수적인데, 자료가 충분한지는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미국 IIHS와 같이 보험료율 책정의 기초자료가 되는 저속 충돌시험을 시행하는 곳은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소장 박선칠)로 국내 보험사들의 예산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 박선칠 소장은 “95년 이후 국산차 25종에 대한 저속 충돌시험을 해왔고, 자동차 메이커측에도 수년 전부터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 제도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왔기 때문에 준비는 갖춰져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자동차보험사나 금감원이 ‘결심’하면 곧 시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서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일반인이 인식하고 있는 자동차 충돌 ‘속도감’으로 볼 때 15km 저속 충돌시험이 과연 의미가 있겠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박선칠 소장은 “운전자들이 실제 충돌할 때는 본능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문제가 없다. 실제 그동안의 시험 결과 15km 저속 충돌시 25개 차종의 평균 수리비가 110만 원 나왔고, 이 정도 수리비는 우리 나라 보험 사고의 80%를 충당한다”고 설명했다.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충돌시험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얼마나 확보하였느냐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박선칠 소장은 “자동차공학 박사를 팀장으로 하는 충돌시험팀이 있는데다 자동차 구입도 실제 자동차 영업소에서 임의로 하는 등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 실시를 위한 기반은 나름대로 갖춰진 셈이다. 그런데도 보험사들이 이를 기피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반응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보험사들이 자동차 회사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한다.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를 실시하면 차량 구입자의 선택 기준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자동차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소비자들이 보험료가 싸고 안전한 차량 구입을 선호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연간 신차 구입자들이 70만 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동차회사들이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 실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메이커-모델 따라 차등화시켜라
그러나 보험개발원 이득주 팀장은 “그동안 보험사들이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자율화 이후 안전 관련 옵션 장착 차량에 대해 보험료를 차등화하는 등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해명했다.

현재 이런 상품을 내놓은 곳은 제일화재와 대한화재다. 제일화재는 8월 말부터 ABS(제동중에도 확실한 조정성을 유지시켜 주는 브레이크) 장착 차량에 대해 최고 10%까지 보험료를 낮춘 상품을 시판할 예정이고, 대한화재는 올해 말부터 자동변속기 장착 차량에 대해 보험료를 할인할 예정이다. 두 보험사는 ABS와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차량이 10% 정도 손해율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자동차보험 체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진정한 의미의 자동차 보험료 자율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국민 정서상 지역별 보험료 차등화가 당장 어렵다면 메이커별-모델별 차등화에 대해서만이라도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고 말했다. 자동차 제조업체의 품질 향상 노력을 유도, 인명 피해 감소 및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는 궁극적으로 자동차 보험료 인하 효과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동안 보험사들이 손쉽게 보험료를 올림으로써 보험 계약자들의 주머니를 털어왔다는 비판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메이커별-모델별 보험료 차등화 실시의 시급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주간동아 2001.08.30 299호 (p30~32)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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