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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어설픈 대북 전략, 빗나간 평양축전

행사중 돌출행동 예상하고도 방북 승인… 논의 과정에 청와대 입김 없었나

  • < 김영식 기자 > spear@donga.com

어설픈 대북 전략, 빗나간 평양축전

어설픈 대북 전략, 빗나간 평양축전
평양 ‘8·15 민족통일대축전’은 참석자 중 일부가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서 열린 개·폐막식 행사에 참석하고,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에서 북한의 통일방안에 동조하는 듯한 방명록을 쓰는 등 적지 않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진보적 성향의 통일연대를 비롯해 대한적십자사 소속 간부 등 200여 단체 311명이라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대표단 구성은 출발 전부터 평양 행사의 파행을 예고했다. 게다가 충분한 준비 없이 방북 하루 전 급작스럽게 결정한 정부의 방북승인도 이같은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방북을 승인한 정부는 잇단 파문에도 입을 꼭 다물었다. 하루하루 쏟아지는 파행적인 사태 진전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귀국 후의 일이다”며 모든 답변을 거부했다. 문제는 정부의 침묵이 이번 행사의 파행적인 전개에 따른 당혹감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이같은 사태의 전개방향을 어느 정도 예상했는데도 전략적 측면에서 이들의 방북 승인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책임감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정부는 방북단이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이라는 민감한 장소에서의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를 바란 것이 사실이지만 이같은 가능성은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였다. 정부가 이들의 방북을 불허했을 때 미치는 파장을 고려해 득실을 따져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국민 비난 여론을 우려했지만 이들의 방북을 승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인 딜레마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행사의 파장을 충분히 검토한 뒤 방북하지 않았을 때와 방북했을 때의 파장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한 뒤 꼼꼼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들의 방북을 불허할 경우 △북한의 남한 정부 비난을 통한 남북관계 악화 △국내 통일단체들의 대정부 비난 △국내에서 진행할8·15통일대축전이 불법시위로 번질 우려 △일부 재야인사들의 밀입북 등이 이어질 가능성 등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이들의 방북을 통한 ‘잠깐’ 동안의 소란이 오히려 방북을 불허했을 때와 비교할 때 ‘저렴한 비용이 든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번 일은 어차피 한번 겪어야 할 일이다. 이번 일을 평가해 향후 교훈으로 삼을 작정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행사를 대국민 여론 및 향후 대북정책의 시험대로 활용하려는 의사를 가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어설픈 대북 전략, 빗나간 평양축전
정부의 방북 승인 결정에는 의외로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남북관계의 소강상태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미국의 강경한 대북정책과 금강산관광의 난항으로 시작한 남북관계의 정체가 좀처럼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민간차원의 통일행사에 제동을 걸 경우 남북관계 정체의 책임을 떠안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

한편으로는 남측 단체들이 평양과 북한 각 지역에서 보이는 자율적 행동이 장기적으로는 북한 사회 변화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략적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임수경씨가 89년 밀입북한 뒤 체류하면서 보인 자유로운 언행 등은 북한 젊은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임수경씨를 통해 북측 젊은이들이 남쪽 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전달받은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남측 인사들의 잦은 북한 주민 접촉이 북한 사회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상징한다. 오히려 자본을 앞세운 대북 지원보다는 진보적 성향을 가진 인사들의 방북이 북한 주민의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정부가 추진본부의 방북에 대해 불허와 승인을 왔다갔다하는 등 석연치 않은 행보를 보인 것도 이같은 숨은 계산에 따른 치밀한 득실 점검과정이 자리잡은 셈이었다.

정부는 6월 ‘금강산 남북 민족통일 대토론회’에서 이번 행사에 대한 구상을 제기하면서부터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북측이 남북 공동행사를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서 치르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3대헌장 기념탑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 △전 민족 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제 등 김일성 주석의 통일방안을 상징한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이 기념탑 행사를 주장하는 것이 북한 고려연방제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선전전 차원이라 평가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8월13일 공동행사 추진본부측이 신청한 방북승인에 대한 불허방침을 밝혔다. 그러자 북한측이 다시 한번 발 빠르게 움직였다. 북측은 13일 저녁 10시경 남측 추진본부에 긴급 전문을 보내 “개·폐막식은 우리측 행사로 하고 남측은 지난해 조선노동당 창건 55돌 경축행사 때와 같은 자격으로 참가해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추진본부측은 이에 대해 “북측이 공동행사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꾼 것이다”고 주장하며 14일 정부에 방북을 승인해 달라고 재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북측 전문을 검토한 뒤 “장소가 변경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비관적인 인식을 나타냈다.

그런데 정부는 이날 오후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추진본부 대표 3명이 통일부 임동원(林東源) 장관과 김형기(金炯基) 차관을 만난 뒤 조건부 방북 승인을 할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청와대측은 이같은 소문을 부인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실세’인 임동원 장관에게 누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어쨌든 통일부는 이날 저녁 “추진본부 대표가 기념탑 부근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다”며 이들의 방북을 승인했다. 정부는 특히 북한측이 보낸 똑같은 전문 한 장을 놓고 “장소에 대한 북한측의 변경된 입장이 읽힌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정부가 방북승인을 번복한 하루 동안 남북간에는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이들의 방북을 불허한 시점만 두고 따진다면 북한이 남측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 상황이어서 남측으로서도 북측에 큰 부담 없이 불허방침을 밝힐 수 있었다는 것. 그러나 북한측이 긴급전문을 통해 태도를 수정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낸 순간 우리 정부로서는 방북 불허에 따른 북측의 비난 및 향후 남북관계 정체에 대한 책임소재 문제 등을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의 전략적인 고려가 있는데도 이번 방북은 의외로 큰 파장을 불러왔다. 비록 예상했다고는 하지만 15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사들이 개막식 행사에 참석하고,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방명록을 남기는 등 의외로 돌출행동의 파문이 불거진 것. 게다가 이번 행사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이 예상외로 싸늘하다는 점에서 정부도 당황하는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정부는 20일 청와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어 이번 사건에 대한 대책과 관련자들에 대한 처리방향을 집중 협의했다. 서울지검 공안1부(천성관 부장검사)도 대표단이 21일 귀국하자마자 조사에 나서는 등 조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번 사태가 향후 치열한 ‘보`-`혁 갈등’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정부가 어떤 득실을 따져 방북승인을 결정했든 간에 이번 행사로 인한 우리 사회 내부의 상처는 깊이 패이고, 정부도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주간동아 2001.08.30 299호 (p26~27)

< 김영식 기자 >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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