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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뭔가 ‘꿍꿍이’ 있다

내각제 앞세워 ‘킹’ 도전 선언 … “나 빼놓고 대선 논의 안 된다” 경고일 수도

  •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JP 뭔가 ‘꿍꿍이’ 있다

JP 뭔가 ‘꿍꿍이’ 있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JP)는 지난 8월8일 뉴욕에서 서울 여의도를 향해 두 가지 화두를 띄웠다. “(차기) 지도자는 경륜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과 공조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른바 ‘JP 대망론’의 싹이 트는 순간이었다. 자민련 지도부는 즉각 “3당합당 또는 3당연합의 공동후보로 JP를 추대한다”는 구상을 언론에 흘리며 JP 대망론을 ‘구체화’시켜나갔다. 한동안 보지 못한 자민련의 ‘일사불란함’이었다.

선문답을 즐긴 JP가 이례적 직설화법으로 정치권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3당 합당’과 ‘한나라-자민련 연대’ 언급 등 JP의 정국 구상은 극과 극을 오가는 듯 보여 속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공동여당의 한 축인 JP가 스스로 여권 단일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치고 나온 것은 향후 정국을 뒤흔들 만한 파괴력을 갖는다. JP를 빼고 진행시켜 온 현재까지의 ‘대선 시뮬레이션’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 이양희 사무총장 등 자민련 지도부가 누누이 강조하는 것처럼 JP 대선 출마는 단순히 ‘빈말’만은 아닌 듯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YS)과의 회동 계획 등 JP 본인이 상당한 의욕을 보인다는 사실이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그렇다면 JP의 대권 도전을 가능케 하는 ‘숨어 있는 1인치’는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자민련에서는 내각제야말로 ‘김종필 대통령’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키’라고 설명한다.

2003년 2월 차기 정부 출범시 JP의 나이는 78세가 된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08년엔 83세. 이미 여야를 망라한 정치권 전반에 ‘3김 청산’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 부분 형성되어 있다. JP는 ‘논외’가 될 정도로 전국적 지지도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나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에게 뒤져 있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 정치인들은 JP 대망론을 만년 2인자의 ‘노욕’(老慾)으로 평가절하하는 게 사실이다. JP의 대권 도전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러한 한계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JP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



자민련의 한 의원은 JP의 ‘브랜드 가치’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부시·고이즈미 정권을 탄생시킨 미국·일본의 보수화를 한국에 대입시켰을 때 그 적임자로 JP가 최선 아니냐. 국민은 지도력이 검증되지 않은 정치 세력에 나라를 맡기는 것이 두고두고 불안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JP는 대권후보 중 유일하게 국정운영 능력을 검증받은 지도자다. 또한 심각한 국론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통합주의자다. JP가 주장하는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는 정치’는 국내 상황에서 먹힐 수 있다. 인물만 보고 따졌을 때 JP를 능가할 후보는 없다.”

자민련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또 다른 의원은 “인물론이 명분이라면 내각제 개헌은 현실적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JP는 차기 정권에서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내각제는 언제든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는 자민련의 당론이다. 그렇다면 JP 대망론과 내각제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JP의 대선 출마는 자민련의 힘만으론 어렵다. 여3당의 합당 내지 연대를 통해 3당의 지원을 받아내는 것이 필수. 이때 내각제는 3당의 권부, YS, 김대중 대통령(DJ), 여권 대선후보를 하나로 엮어내는 카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이 말하는 JP의 ‘대권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JP는 대선에 출마하면 내각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 것이다. JP의 대통령 재임기간은 2003년 2월 취임에서 2004년 4월 총선 전까지 1년2개월이 된다. 이후엔 내각제하의 대통령으로 남는다. 이렇게 되면 JP가 고령이라는 문제는 간단히 극복된다.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보다 내각제는 지분에 따른 권력분점의 성격이 강하다. 정치 재개를 노리는 YS,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 DJ, 독자적으로 대선후보를 내기 힘든 동교동계, 범여권의 영남 후보군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 내각제의 ‘총리’ 자리를 두고 여권의 유력 대선후보군과 JP간 ‘빅딜’의 여지가 생긴다. ‘이회창 대선 패배 우려’는 한나라당 분열을 전제로 한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한나라당 내 일부 정치 세력들이 내각제 개헌에 동참할 공산도 커진다.”

JP 뭔가 ‘꿍꿍이’ 있다
이 의원은 ‘JP 대망론’의 성패 여부는 궁극적으로 DJ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DJ가 JP 후계구도에 손을 들어줄 경우 JP의 정치적 위상은 지금과 180도 달라진다는 것. 김심(金心)만 붙잡아 두고 있으면 여권에서 ‘역반응’이 일어나 민주당의 유력 대권후보와 일부 개혁세력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감표’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이처럼 3당합당+3김연합을 통한 ‘이회창 포위전략’이 맞아떨어진다면 ‘한물 갔다’는 JP라도 대권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자민련의 한 고위당직자는 “DJ는 퇴임 후 안전판 마련에 고심할 것이다. 여권 유력 대선후보나 이회창 총재보다는 JP가 DJ에게 훨씬 더 큰 인간적 신뢰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며 김대통령이 JP에게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자민련 조부영 부총재는 “민주·자민·민국당 3자 사이에서 최소한 한가지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합당할 경우 당 총재는 JP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총재=대선후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조부총재는 JP에게 여권 단일후보 자리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더라도 합당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만약 합당 논의를 가시화한다면 (여권 단일) 후보 선출은 (합당) 다음의 문제다”고 덧붙였다. JP 대망론이 순탄치 않은 여정임은 자민련 지도부도 인지한 셈이다.

따라서 JP로선 ‘차선책’인 여권 대선주자 선출과정에서의 캐스팅보트 역할, 한나라당과의 연대 가능성도 함께 열어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정치권에선 JP의 최근 ‘튀는 행보’가 먼 미래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기보다 현실의 위기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이인제 최고위원과 노무현 상임고문은 잇달아 ‘지방선거 전 대선후보 선출’을 공론화하고 나섰다. “남의 당 속사정에 왈가왈부할 입장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자민련 지도부는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8월3일 이완구 자민련 원내총무의 ‘독설’에서 그대로 묻어 나온다. “나라가 어지러운데 자칭 대권주자라 하는 사람이 할말 못할 말 떠들고 다닌다. 대선이 1년5개월이나 남았는데 이게 뭐냐. 그 사람이 검증된 사람이냐. 내 말은 민주당 사람에게 ‘악센트’를 두고 싶다.”

현재 민주당에선 일부 대선주자들에게 힘이 쏠리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만의 하나 민주당 대선 후보가 조기 결정되어 판이 ‘굳어질’ 경우 ‘킹’이나 ‘킹 메이커’가 되어야 할 JP의 위상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원 꿔주기로 겨우 ‘곁방살이’를 면한 자민련은 당장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맞으며 크게 동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JP 입장에선 본인의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고선 충청 연고를 주장하는 이인제 최고위원이나 이회창 총재에 맞서 기득권을 지키기가 버겁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자민련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 공조 가능성에 대한 언급 역시 현재 시점에선 ‘아군’을 겨냥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나를 넘지 않고는 대선 고지에 못 간다’는 대 민주당 경고 메시지라는 것이다. 자민련의 한 고위당직자는 “3당합당과 한나라당 공조라는 상반된 문제를 JP가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고 말했다.

JP 대망론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문제는 시기. ‘타이밍’을 중시하는 JP답지 않게 성급하게 대망론을 띄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자민련의 한 의원은 “민주당 ‘대선 레이스’가 너무 빨리 ‘점화’해 가속도가 붙는 등 자민련을 위기로 몰고 가는 바람에 아껴야 할 카드를 미리 꺼낸 것이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자민련에 ‘짜증스러운’ 상황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자민련·한나라 3당이 각자 후보를 내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자민련이 충청권 등 자민련 몫인 광역단체장 중 몇 자리를 잃으면 JP의 캐스팅보트 위력은 소멸하며 자민련은 분열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커진다. 자민련이 내심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조부영 부총재는 합당이나 연합이 불발로 그쳐 현재의 민주·자민·한나라 3강 구도로 내년 지방선거가 치러질 경우에도 “민주당은 민주-자민련 간 후보 연합공천에 동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P와 자민련이 JP대망론·3당합당론·한나라당과의 공조론을 동시다발적으로 띄우는 것은 일차적으로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게서 결정적 양보를 얻어내 내년 지방선거에서 생존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은 자민련의 ‘구애’에 가타부타 말이 없다. 아직은 자민련의 총선 참패 이후 제기된 ‘JP 한계론’ ‘자민련 고사(枯死) 가능성’이 엄연히 현존하고 있다. 앞으로 1년5개월 간의 대선 레이스에서 그의 말대로 여한 없이 훨훨 타올라,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일 수 있을지 JP의 다음 행보에 어느 때 보다 관심이 모아진다.



주간동아 2001.08.30 299호 (p20~22)

< 허만섭 기자 >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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