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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수컷시대’는 가는가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남성

‘여성적인 남성상’은 대중소비문화의 트렌드… 여성 억압과 똑같은 방식으로 ‘남성 억압’

  • < 김수기 / 문화평론가 > biensuki@chollian.net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남성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남성
40대인 필자는 요즘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멍해지는 것을 느낀다. 여성 못지않게 예쁘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가수나 탤런트들이 그저 화면을 부유하는 기표(signature)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대나 20대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그 이미지를 현실 속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화장품 회사들의 광고 전략은 최근의 성별 지형도를 가장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다. ‘내 남자를 바꾸자’는 도발적인 광고 카피는 테리우스에 대한 환상을 현실로 만들라고 강력하게 제안한다. 강건한 육체의 운동선수가 어느새 ‘꽃을 든 남자’로 둔갑하여 새로운 변신을 약속한다. 남성 화장품의 뒤를 이은 의류, 다이어트, 성형술의 유례없는 신장세도 새로운 남성 이미지의 창출이라는 대대적인 트렌드 마케팅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화 사회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성 역할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지금껏 여성의 영역에 머물러 온 취미활동, 예를 들어 요리나 십자수를 배우는 남성 동호회 수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문화가 가능하게 된 데는 인터넷 환경의 역할이 크다. 인터넷은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행동으로 과감하게 옮길 수 있도록 해준다. 인터넷의 보급에 따라 거리낌없이 정보를 교환하거나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일 수 있는 기회는 그만큼 많아졌다. 여기에 강압적인 기존 사회질서가 끼여들 여지는 없다.

남성상의 변화는 대중음악에서도 느껴진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대중음악의 가사들은 버림받은 여성이 애인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남성이 애인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남성들은 혹시 이러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자유와 해방감을 얻는 것은 아닐까? 웃음이 나올 때 참아야 하고, 울음이 나올 때 숨겨야 하고, 사랑의 고통에 허덕여도 표현하지 않는 태도가 ‘남자다움’이라는 인식은 거대한 환상의 산물이 아닌가? 남성은 이러한 환상에서 빠져 나오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소소한 일상에 관심을 갖거나 화장과 액세서리로 자신을 표현하는 태도는 새로운 자아를 찾는 선택의 한 과정일 수 있다.



그런데 더욱 특기할 만한 사실은 새로운 남성 이미지에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주체가 바로 여성, 그 중에서도 경제적 능력을 확보한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지위를 획득한 여성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남성상, 여성의 입맛에 맞는 남성상을 창출하려 한다.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예쁘장한 탤런트를 파트너로 삼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상품을 통해 이와 비슷한 남성상을 얻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유행하는 여성적인 남성상은 어느 정도 여성의 팬터지가 투사된 남성상일 것이다.

하지만 여성적인 남성상이 대중문화와 이를 소비하는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젊은 부부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손쉽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경제 활동의 영역과 주체가 바뀌는 것은 가정의 성 역할 변화를 강력하게 추동하는 요인이다.

여성이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남성이 육아를 담당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IMF 사태 이후 삶의 조건이 힘겨워진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남성의 입장에서 볼 때 가사노동과 육아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살림과 육아를 자기 삶으로 즐기는 남성이 있다고 해서 그의 삶을 폄하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육아의 의미와 즐거움 또는 숭고함을 느끼는 것이 다른 삶에 견주어 결코 작은 부분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해방되는 것이다.

한편,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여성들의 요구는 보다 단호해 보인다. 이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분명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남근적인 남성다움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보다 귀담아 들으며, 때로 자신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주고, 상대를 진정으로 인정할 줄 아는 남자를 우리 시대의 가장 남자다운 남자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남성성에 대한 부정과 여성화한 남성의 이미지 사이에는 경계해야 할 연관성이 보인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나 인기 가수들이 발산하는 여성적인 남성 이미지란 아직은 현실보다 팬터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팬터지란 말 그대로 현실의 부재다. 여성들이 이러한 팬터지에 집착하는 까닭은 복합적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남성 중심적인 현실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기 충족적인 삶을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해 왔다. 이러한 삶에 대한 보상심리가 여성적인 남성의 이미지를 요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팬터지의 확대 재생산은 필연적으로 현실과의 괴리를 낳는다. 나아가 현실 속의 모순을 극복하는 대신, 대리만족을 느끼는 데 그칠 수도 있다. 대중매체는 여성적인 남성성을 유포하고 여성들은 이를 새로운 남성상으로 소비한다. 이 사이클이 반복할수록 새로운 남성의 이미지는 과거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한 방법과 같은 방식으로 남성들을 억압할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지 않는 한 여성화한 남성의 이미지는 한낱 트렌드 이상일 수 없다.

또한 과거의 남성성을 육체와 연관지어 부정하는 태도도 새로운 차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더욱 조장할 것이다. 최근의 젊은이들이 육체노동을 극단적으로 회피하는 추세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여성화한 남성의 이미지는 분명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이 현상의 이면을 정확히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미소년의 이미지를 소유하려는 욕망에 머물러 있다면, 새로운 남성상은 언제까지나 성 역할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허상적인 이미지로 소비사회를 부유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1.08.30 299호 (p16~17)

< 김수기 / 문화평론가 > biensuki@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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