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9

2001.08.30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

학습 능력·생존율·자제력 등 여성 우위 연구결과 속속 …‘강한 남성’은 이제 옛말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5-01-19 15:3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
    반장·회장·사장 등 ‘장’자가 붙는 자리는 대부분 남자들의 차지다. 또 사회에서 별반 신통치 않은 남자라도 집에 가면 ‘가부장’이다. 이처럼 남자는 항상 군림하는 자리에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도 예외없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이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할까?

    과학자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최근 ‘남자가 여자보다 뛰어나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 연구 결과가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남성은 여성보다 학습 능력이 떨어지고 자제력이 약하며 감정적으로 쉽게 상처 받는다! 남성이 여성보다 체력적으로 약하다는 연구 결과는 꾸준히 보고되어 왔다. 인류학자인 보이텐딕에 의하면 남성은 여성보다 출산 전 태아사망률 25%, 출산시 사망률 54%, 그리고 출산 후 영아사망률도 27% 높다.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수명 역시 남성이 여성보다 7, 8세 가량 짧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체력 외에 정서나 지성 측면에서도 남성에게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선 학습능력부터 살펴보자. 남학생들은 여학생들보다 훨씬 공부를 못한다. 이는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학급에서 ‘D’나 ‘F’를 맞는 열등생의 70%가 남학생이며 고2 남학생의 작문 실력은 중2 여학생의 작문 실력과 엇비슷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대학에서 여대생 수는 이미 남자 대학생 수를 추월했다. 미국의 교육 전문가들은 2007년 미국 대학에 재학하는 여대생 수는 920만 명, 그리고 남자 대학생 수는 69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두뇌행동연구소는 남녀의 학습 차이가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이 여성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남녀간 두뇌구조의 차이에 기인한다. “남성의 뇌는 여성보다 평균 11% 크지만,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IQ는 같습니다. 여성의 두뇌는 작은 대신 남성보다 더 집약적인 구조로 발달해 있지요.” 두뇌행동연구소장 루벤 거의 설명이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는 능력과 언어능력이 뛰어난데 이는 곧 뭐든지 빨리 배우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교육 전문가들은 이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보다 유치원에 늦게 입학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남학생들은 공부만 못하는 것이 아니다. 물건을 훔치거나 패싸움하고 마약에 손대는 비행청소년의 대부분이 남학생이다. 미국 청소년 범죄의 80%를 남학생이 차지하며 학교에서 퇴학당하는 학생의 80% 역시 남학생이다. 남성의 자제력이 여성보다 부족해 생긴 결과다. 남성은 그림의 모델로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20여 분에 지나지 않지만 여성은 한 시간 이상 서 있을 수 있다.



    충격적인 연구결과는 이뿐만 아니다. 남성은 감정적으로 여성보다 약하며 상처 받기 쉬운 본능을 가지고 있다. 울고 있는 남자아기는 여자아기보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더 많은 땀을 흘린다.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여성을 남성보다 약한 존재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야 우리는 정말로 약한 쪽은 남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에 남성의 유약함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소아정신과 의사 세바스찬 크래머의 말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
    그런데 왜 본능적으로 예민한 남자아기들은 성장해서는 잘 울지도, 그리고 웃지도 않는 남자어른이 되고 마는가. 하버드 대학교 연구원인 주디 추는 보스턴 근교의 유치원에서 4세 어린이들의 행동 패턴을 2년 간 관찰했다. 그 결과 그녀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유치원에 갓 입학할 즈음의 남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보다 감정표현이 풍부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무뚝뚝해졌다. “울지 마, 넌 남자니까 씩씩해야지”와 같은 부모의 말을 들으며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깨닫는 것이다.

    여성학자들은 흔히 시몬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한 유명한 말을 자주 인용한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이 말은 남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민하고 감성이 풍부한 남자아기는 유치원과 학교에 들어가 세상을 배우면서 무표정하고 저돌적인 남성으로 성장한다.

    남성학을 연구해 온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남성이 여성보다 심리적으로 취약한 것은 분명 사실이라고 말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자신을 돌봐주는 어머니에게서 여성성을 흡수하며 성장하지요. 하지만 너덧 살이 되면 남자어린이는 자신에 내재한 여성성을 부정하라는 사회적 압박을 받습니다. 이 시기부터 2차적으로 남성성이 생깁니다. 여성성을 유달리 강하게 부정한 남성, 즉 ‘터프’한 남성은 자신의 근본적 특징을 부정한 것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욱 약할 수밖에 없지요.” ‘약한 남성’과 관련해 최근의 경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강한 남성을 필요로 하는가? 남성은 강하다는 고전적 명제부터가 거짓이거니와 설령 정말 강하다 해도 사회는 더 이상 강한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원시 수렵사회부터 농업사회, 그리고 산업사회는 늘 남성의 힘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로 돌입하면서 성공에 요구되는 능력은 힘보다는 판단력과 치밀함, 인내력, 사교력, 약간의 직관력 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들은 남성성보다는 여성성에 가깝다. 남성이 논리와 추론, 분석, 3차원적인 인식 등에 뛰어난 반면, 여성은 직관과 감각, 종합적인 상황 이해력, 그리고 언어력이 탁월하다. 이제 여성성은 남녀를 막론하고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 기자 출신인 에스더 워크스 북이 쓴 ‘여자의 마음으로 경영하라’는 여성이 새로운 기업 경영의 리더로 출현하였음을 보여준다. 북은 여성경영인이 남성중심적인 기업문화에서 남성경영자의 방식을 모방하려고만 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성공한 여성 CEO들은 남성에게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본능과 감각, 그리고 친근하고 격의없는 태도로 아랫사람을 관리하는 능력 등으로 오늘의 성공을 이끌어냈다.

    실제로 1987~99년에 미국에서 여성경영자가 소유한 기업체 수는 103%나 증가했다. 단순히 수적인 증가만이 아니다. 여성이 소유한 기업은 고용면에서 320%, 그리고 매출면에서 436%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또 99년 집계로 여성이 소유한 미국 기업체 수는 910만 개에 달한다. 미국 전체 기업의 38%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의 여사장들이 ‘치마 두른 남자’에 가까운 데 비해 최근의 여사장들은 자신이 여성임을 숨기지 않는다. IT 전문인력의 헤드헌팅 업체인 이피플컨설팅의 김준희 사장(32)은 “의외로 여성성이 장점이 될 때가 많다”고 말한다. 헤드헌팅 업체의 특성상 고객의 커리어에 대해 조언하거나 한 고객이 새로운 직장을 찾아 자리잡을 때까지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점에서 여성의 섬세함은 빛을 발한다.

    “일단 처음 대할 때는 여성이 경영자라는 점을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기 때문에 반은 점수를 따고 들어가지요. 또 반신반의하면서 일을 맡겼는데 깔끔하게 잘 해내면 그 다음부터는 고객에게서 200%의 신뢰를 얻게 됩니다.” 그 흔한 로비나 접대를 전혀 안하고 원칙 위주로 회사를 경영해 온 김사장의 고객 중에는 IBM, 오라클, 베리타스 등 쟁쟁한 IT 업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 벤처기업인의 대명사인 버추얼텍의 서지현 사장(37)도 남성적인 기업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여성기업인 최초로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킨 서사장은 직관과 감각이라는 지극히 여성적인 특성을 십분 살려 시가총액 6000억 원이 넘는 기업을 일궈냈다. 예를 들면 ‘갑자기 머리를 때리는 직감 때문에’ 1997년 미국 지사를 만들었는데 이 지사 덕분에 IMF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여자라고 무시당한 적보다는 ‘여자가 참 대단하다’는 말을 훨씬 많이 들어왔다는 서사장은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에게는 순간적인 판단력이 아주 중요한데 가끔 직감이 무섭다고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성의 무기를 남성이 활용할 수 없을까? 물론 가능하다. 여성성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남성은 어느 정도의 여성성을, 그리고 여성은 어느 정도의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여성성을 자신의 장점으로 만든 남성은 우리 주위에 무수히 많다.

    통신업체에 근무하는 이경찬씨(37)는 전형적인 부드러운 남자. 그는 지난 말복에 인터넷 쇼핑을 통해 본가와 처가에 보양식을 보냈다. 평소에도 사근사근한 아들과 사위로 점수를 따왔지만 또 한번 어른들의 칭찬을 들은 것은 물론이다. 그는 사회생활에서도 이같은 섬세함을 십분 활용한다. 한번 본 사람의 이름과 직위를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가 다시 만났을 때 반드시 이름을 불러준다. 이씨는 여직원과 여성 고객에게 인기가 높다.

    “요즈음의 회사가 요구하는 강력한 리더십은 곧 협업(co-work)하는 능력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조직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은 상당한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꼭 무스를 바르고 출근한 그는 무스는 물론 염색과 화장까지도 빠뜨리지 않는 최근의 신입사원들을 보면서 세태가 바뀌었음을 느낀다고 한다.

    모든 남성이 여성성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증권회사 부장으로 근무하는 이철형씨(39)는 꼼꼼하고 자상한 성격 탓에 회사 내 ‘젠틀맨’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할 때 대부분 부장들이 맡는 부서장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성격을 약점으로 생각한다고 털어놓았다. 경영층이 자신을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친화적 성격이 대인관계에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출세하려면 무모할 정도의 과감함이나 조직원을 이끄는 카리스마가 필요합니다. 그런 면이 없는 건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죠.”

    상사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조직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기업문화에서 감수성과 직관을 앞세운 여성성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계 기업이라면 문제는 또 다르다. 외국계 음반회사의 부장인 서동진씨(42)는 클래식 음반의 빅 베스트셀러인 조수미의 ‘온리 러브’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국내 클래식 음반 사상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이 앨범으로 음반사는 20억 원 이상의 순수익을 거두었다. 서부장 역시 자신의 여성성을 무기삼아 성공한 케이스. 불황인 음반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을 보는 그의 직관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만약 전통적 구조의 한국기업에서 일했다면 중간관리자쯤 되었을 때 한계를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외국인 회사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보다는 능력을 더 중요시하죠. 저희 회사 고객층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때문에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성공할 수도 없지요. 터프가이는 추진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섬세한 마케팅적 측면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성성이 강한 남자라는 말에 지레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여성성이 강한 남자란 요리나 설거지를 잘하거나 아내 말을 무조건 듣는 남자가 아니라 내면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조화롭게 통합한 성숙한 인간이다. 남성들이여, 당신이 오랫동안 갇혀 있던 ‘남자다움’의 굴레에서 한번 벗어나 보자. 세상은 이제 수컷이 아닌 진짜 남자, 부드럽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남자를 원하니까 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