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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사기’에 호주드림 산산조각

투자·동업미끼 등 사기수법 갈수록 지능화 … 대사관 확인 절차 거쳐야

  • < 윤필립/ 시드니 통신원 > phillip@yesnet.com.au

‘이민 사기’에 호주드림 산산조각

‘이민 사기’에 호주드림 산산조각
‘호주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면 영주권도 동시에 취득할 수 있다’ ‘호주의 대학에 투자하면 대학의 이사가 되고 영주권도 얻는다’ ‘5만 호주달러(한화 약 3500만 원)를 사설 우체국에 투자하면 5인 가족의 생계가 보장되고 영주권도 얻을 수 있다’ 등등. 최근 호주관련 이민 브로커들이 투자설명회 등에서 흘린 솔깃한 말들이다.

이민은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다. 오랜 고민 끝에 이민보따리를 싸는 사람은 대부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 뒤 군사작전하듯이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그러나 ‘무조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충동적인 결론부터 내려놓고 막무가내로 이민을 결행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전자의 경우는 대체로 성공할 확률이 높지만 후자의 경우는 십중팔구 악덕 이민 브로커에 걸려들어 귀중한 재산과 시간을 허비한다. 한 가족의 운명이 통째로 망가진다는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만 혈안이 된 악덕 브로커들은 이른바 ‘이민병’에 걸린 사람이 지나가는 길목을 훤히 꿰뚫고 있다. 그들은 그 길목에다 귀에 솔깃한 내용의 미끼를 던져놓고 ‘이민병 환자들’이 덫에 걸리기만 기다리고 있다. 이민박람회·이민투자설명회 등과 이민 알선업체 창구 주변에 그 덫이 놓여 있다.

한국에서 중소기업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업무차 호주를 몇 차례 드나들다 ‘이민병’에 걸린 구모(44)씨는 지금 시드니에서 야간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그것도 불법 취업상태라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취약시간대만 골라 일을 해야 한다.

자신의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퇴직금과 아파트를 판 돈은 호주의 농장에 투자한다는 말에 속아 몽땅 이민 브로커에게 넘어갔다.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지난 1년 동안 영어연수학원에 다녔으나 지금은 그것마저 불가능해 집에서 한국 비디오를 보면서 지내고 있다. 이를 보다 못한 구씨의 아내가 한국으로 들어가 이주공사와 협상을 벌였지만 신통한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구씨의 아내는 이미 불법 체류자의 신분으로 전락해 호주 재입국이 불가능해져 가족들은 생이별을 한 상태고 생계를 잇는 일조차 버거운 처지에 놓였다. 구씨는 지금 최후의 수단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주동포 이민 브로커와 상담을 하고 있는데 그가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상당액의 착수금을 요구하고 있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전직교사라고 신원을 밝힌 이모씨(34)의 경우는 더욱 딱한 사정이다. 그는 무려 3년 동안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영주권 해결에만 몰두했지만, 지난 5월 불법 체류자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의 이민 업무를 도와주던 교민이 이씨를 이민 경찰국에 고발한 것 같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동포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찾아간 그 교민은 나중에 확인해 보니 법적인 자격을 갖춘 이민대행 법무사가 아니었다.

이씨가 지난 3년 동안 겪은 일들을 종합해 보면 한국과 호주를 연결한 이민 사기행각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적성에 맞지 않는 교사생활을 청산하고 호주 이민을 결심한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이민박람회와 투자설명회 등을 빠짐없이 쫓아다녔다. 그러나 부족한 경력과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정식 이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투자이민의 창구가 열려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일단 도진 ‘이민병’을 잠재울 수도 없었다.

‘이민 사기’에 호주드림 산산조각
노심초사하던 그에게 “불가능은 없다. 안 되면 돌아가면 될 것 아닌가”라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우회로는 멀고 험한 길이었다. 한국인이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관광비자를 얻어 3개월을 머물고 한 번 연장하여 또 3개월을 체류하고, 비자 만료기간이 끝나기 전에 1년 정도를 합법적으로 지낼 수 있는 457비자를 취득한 다음 영주권으로 이어가자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이씨는 급기야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6개월 동안 호주의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관광을 했다. 문제는 457비자였다. 신청하면 금방 나온다는 비자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전화 응답 속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끝내 457비자는 나오지 않았고 불법 체류자의 신세가 되어 불안하게 생활하던 어느 날 새벽에 들이닥친 이민경찰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감금되고 말았다.

이씨의 가족은 현재 강제출국을 앞두었는데, 그를 위로하러 찾아간 목사에게 “지금은 쫓겨가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고 하니 ‘이민병은 무덤까지 따라간다’는 말이 허사가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지난 5월 호주 연방정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 내 불법 체류자가 무려 6만 명에 가깝다고 한다.

최근 한국과 호주 언론에서 보도한 호주관련 이민 사기사건에 접한 호주 동포들은 이민 사기범들의 기상천외한 발상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위에 소개한 구씨와 이씨의 경우는 다분히 고전적 수법이지만 다음에 소개하는 두 경우는 전례가 없는 신종 이민 사기사건이라 이민 사기가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호주 동포 변호사인 강모씨(46)와 주택개발회사의 김모씨(34)가 한국의 C일보에 ‘타스마니아주 킹보로우시에 지을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호주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다’는 광고를 냈다. 이들은 대담하게도 신문 광고와 전단 광고지에 타스마니아주 정부 관계자들의 사진을 넣어 이민 희망자들을 속이기도 했다. 계약금 등의 명목으로 무려 16억 원이 넘는 거액을 챙긴 두 사람이 매입했다고 주장한 22만 평의 대지는 단돈 1달러의 최저가 계약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일부 타스마니아 교민들은 이 사건이 처음부터 사기를 목적으로 한 경우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지난 6월에 구속된 호주이주공사 최모(34) 대표의 경우는 유명무실한 영어연수원을 대학으로 탈바꿈해 이민 희망자들에게 교육투자비 명목으로 돈을 받아 가로챈 혐의다. 최씨는 지난 99년 말부터 주로 인터넷을 이용해 자신이 설립한 P대학에 투자하면 이사로 취임시켜 일단 457비자를 얻게 해준 다음 단계적으로 영주권을 취득하게 해주겠다고 속여 20여 명의 이민 희망자들에게서 약 20억 원을 사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투자나 동업을 미끼로 이민 사기행위를 하는 사람은 투자이민설명회를 주로 이용하였는데, 이들은 호주 실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이민상품을 소개한다.

“호주달러로 5만 달러 정도만 투자하면 우체국 등을 구입하여 5인 가족의 생계를 거뜬히 꾸려갈 수 있다”고 말하여 투자를 유도한 다음, 호주의 현실이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항의하는 투자자들에게 “우체국도 우체국 나름이다. 시드니처럼 대도시의 경우는 50만 달러 정도가 들지만 농촌이나 어촌으로 가면 5만 달러도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빠져나간다.

최근 한국의 갑갑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도피성 이민을 꾀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식이 들린다. 더욱이 이민 여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무리하게 이민을 추진하다가 이민 사기사건에 연루해 가산을 탕진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민 사기사건은 개인의 불행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수년 전부터 한국은 이민 불량국가로 분류되었고, 최근에는 한국 출신 유학생들이 호주의 규정을 지키지 않아 학생비자 발급과 관련한 국가등급이 3등급으로 떨어지는 등 한국의 위상이 형편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그동안 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과 함께 학생비자발급 1등급으로 분류한 한국은 석·박사 과정만 2등급에 속할 뿐 영어연수,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유학 등 나머지 부문은 비자발급 여건이 아주 까다로운 3등급으로 하향조정했다. 뉴질랜드와 대만 등은 2등급이며, 3등급 국가들은 방글라데시·미얀마·케냐 등이다.

지난 5월 초에 나온 ‘호주연방백서’(Protecting the Border, Immigration Compliance)에 의하면 한국은 이민법 위반 10개국 중 상위권에 랭크해 위험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필립 러독 이민성 장관은 “이런 현실이 한-호 양국간에 악영향을 줄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면서 “이민을 원하는 사람은 주한 호주대사관에 직접 문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1.08.23 298호 (p54~55)

< 윤필립/ 시드니 통신원 > phillip@yesnet.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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