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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학가 “우수학생을 모셔라”

명문 라이벌 베이징대`-`칭화대 사활건 유치전… 무한 생존경쟁 타 대학도 가세

  • < 강현구/ 베이징통신원 > beha@263.net

중국 대학가 “우수학생을 모셔라”

중국 대학가 “우수학생을 모셔라”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대학은 존재 자체로 특권적이다. 이런 이유로 대학은 그 사회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동시에 가장 변하지 않는 집단이기도 하다. 중국의 대학 역시 문화혁명기를 제외한다면 사회적 배려 아래 편안한 세월을 보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이 제 궤도에 오른 9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대학가에도 시장에서의 평가와 그에 따른 경쟁이라는 피바람이 일고 있다. 징조는 먼저 공비교육 철폐에서 시작했다. 국가가 학생들에게 학비는 물론이고 용돈까지 지급하던 것을 하루아침에 개인부담으로 돌아갔다. 또 공비교육비 폐지는 자연스럽게 졸업 후 직장보장 폐지로 이어졌고, 이는 곧 대학들이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음을 뜻한다. 영향은 당장 그 해 입시에서부터 나타났다.

그 전까지 중국의 대입은 각 대학의 과별로 정한 지역별 정원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 과의 정원이 40명이라면 베이징에 몇 명, 상하이에 몇 명, 그리고 각 성에 몇 명씩 지정해 베이징의 다른 지원자가 상하이의 지정 지원자보다 점수가 높더라도 상하이의 지정 지원자가 합격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학비의 자비부담과 진로선택의 자유라는 변화한 환경은 지역정원제의 존재 근거조차 없앴다. 진로 선택이 자유로워진 97년 전국 각 성 수석의 과반수가 베이징(北京)대에 지원했다.

이것은 대학 입장에서도 큰 변화였다. 그동안 중국의 대학을 규정지은 특성화의 굴레가 사라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1952년 소련을 본딴 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특성화 대학을 지향했다. 특성화는 대학을 인문·법학·경제·공학·농학 등 각 전문 분야별로 세분화하여 전문화한 단과대학으로 재편한 것을 뜻하는데, 이 결과 중국대학들은 쉐위앤(學院)이라 불리는 독립한 단과대학으로 편재했다. 이러한 정책은 전통적인 종합대학 베이징대나 칭화(淸華)대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어 베이징대는 공대 계열을, 칭화대는 인문사회 계열을 서로에게 내주어야 했다.

이러한 독립화·특성화 정책은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학문의 고립화와 각 대학의 학과 세분화를 통한 양적 발전이었다. 다른 계열을 신설할 수 없는 대학들은 몸집을 불리는 수단으로 기존 학과를 세분화해 새로운 전공을 양산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이러한 세분화만으로는 경쟁에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게 되자 일정 발언권이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계열 확대를 통한 몸집 불리기와 우수학생 유치경쟁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이 칭화대였다.



중국 대학가 “우수학생을 모셔라”
칭화대는 개혁·개방 초기인 84년 사회과학 학과들을 개설하고, 그 다음해 대학원을 중심으로 한 중문학과, 사상문화연구소 및 교육연구소를 개설한 경험을 바탕으로 99년 영어 한어 언어문화 실험반을 개설, 50년 만에 처음으로 문과계 본과생을 모집하는 발빠름을 보였다.

사실 중국대학의 몸집 불리기 경쟁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95년 교육부총리인 리란칭(李嵐淸)이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중국에 종합대의 학풍이 없음을 지적하고, 중국의 대학이 세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간 통합이 절실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 발언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면서 중국 전역에 대학간 짝짓기 열풍을 일으켰다. 당장 베이징에서만 봐도 베이징농업대학과 베이징농업공정대를 통합한 중국농업대학의 설립을 시작으로 중의학대와 골상대학의 통합 등 대학간 통합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런 상황은 기존 종합대학인 베이징대와 칭화대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각 지방의 대형통합으로 이미 중국 최대라는 타이틀을 놓친 이들은 곧 베이징대는 베이징의과대학과, 칭화대는 공예미술학원과의 통합을 통해 말 그대로 종합대학의 위상을 갖추기 위한 전쟁에 나섰다.

이런 일련의 개혁정책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에게 박제화했을 뿐인 종합성 명문대학의 존재를 일깨워주었다. 사실 베이징대나 칭화대는 중국 최고의 명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오랜 역사가 가져다준 명예의 성격이 강했지 학문적으로 모든 면에서 최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변화된 상황은 두 대학에 생사를 건 전쟁에 나서게 만들었다. 이제 명문은 국가가 부여하는 중점대학의 타이틀을 떠나 시장경쟁에서의 승패에 따라 갈리게 된 것이다. 50여 년 간 숨어 있던 두 대학의 자존심 대결이 표면화했다.

이 경쟁의 승패는 결국 우수학생의 유치에 사활이 걸렸다. 실제로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두 대학의 노력은 유별나다. 이 달 7일부터 3일간 치른 ‘전국대입통일고사’를 전후로 두 대학의 우수학생 유치 경쟁은 예비학생들의 대학 참관에서도 잘 나타난다. 4월에 이미 한 차례 참관행사를 가진 칭화대는 베이징대가 5월 말 참관행사를 갖자 6월 초 다시 한번 행사를 가짐으로써 맞불을 놓았다. 이 과정에서 베이징대 학생모집 담당주임이 “우리 대학 문과는 전국에서 대적할 대학이 없다. 칭화대가 이과에 권위가 있다지만 국제무대에서 진정으로 이과의 우수성을 인정받는 곳은 우리 대학이다”고 발언하자, 칭화대의 학생모집 담당주임이“베이징대 이과는 기초과학에만 편중해 졸업생을 생산 실무에 동원하는 데는 몇 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응용과학이 강해 졸업생들을 바로 생산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고 맞받는 등 과열조짐까지 나타났다.

현재 두 대학의 우열을 명확히 가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근 조사된 대학평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는 적어도 이과 부분에서는 청화대가 앞서고 있다. 먼저 중국 자체 과학연구평가(중국대학 과학연구 평가, 2000년)를 보면 칭화대가 종합지수 98.44로 베이징대의 66.24보다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국제적인 기준인 SCI논문게재 순위나 EI논문게재 중국 내 순위 역시 1999~ 2000년 기준 칭화대가 각각 79편(인용 2편), 1398편으로 1위에 올랐는 데 반해, 베이징대는 각각 60편(인용 없음)으로 3위, 223편으로 7위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공계열 신입생들의 지원상황을 봐도 1999년 7월 실시한 대학입시에서 칭화대에 600점 이상의 고득점자들이 340명 정원의 이공계열에만 439명, 640점 이상도 125명이나 지원한 반면 베이징대 이공계열에는 476점 이상의 지원자가 326명으로 476명의 정원에 훨씬 미달했다. 하지만 칭화대가 베이징대를 모든 부분에서 앞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직은 베이징대가 칭화대보다 많은 부분에서 앞선다. 학교 규모만 보아도 베이징대가 전체 학생 수와 교직원 수 각각 3만6982명, 1만7203명으로 칭화대의 2만1688명, 7146명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그러나 앞서 다룬 이공계열의 절대적 우위는 경제성장기의 중국에서 칭화대에 유리한 상황으로 작용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칭화대는 이 여파를 몰아 최근 2~3년 간 신입생 커트라인 순위는 물론 대학 종합평가에서도 베이징대를 따돌리고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시장체계로의 편입에 의한 경쟁의 심화는 위의 두 대학뿐 아니라 다른 대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경쟁에 의해 앞의 두 대학이 앞서가는 데 불안을 느낀 다른 대학간 공조 움직임 역시 활발하게 진행된다. 98년 중국인민대학·중앙민족대학 등 4개 대학의 공조와 곧이어 99년 체결한 베이징어언문화대학·항공항천대학 등 13개 대학의 학점 교류 및 강의 교환 공조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렇듯 중국의 대학은 변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은 명확히 경쟁력의 강화다. 현실 시장을 향해 돌진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중국인은 자신들의 밝은 미래를 볼 것이다. 우리가 그 곳에서 보는, 아니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주간동아 2001.08.23 298호 (p50~51)

< 강현구/ 베이징통신원 > beha@26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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