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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이 할렘으로 간 까닭은

‘흑인 속으로’ 정치적 의도와 저렴한 임대료 ‘일석이조’ … 주민들 열렬한 환영, 언론 집중 조명

  • <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 hhlee0317@yahoo.co.kr

클린턴이 할렘으로 간 까닭은

클린턴이 할렘으로 간 까닭은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전기를 쓴 토니 모리슨은 클린턴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 불렀다. 백인이긴 하지만 ‘블랙’이라는 닉네임(white black man)이 붙는 사람이 바로 클린턴이다. 르윈스키 추문이 클린턴의 바지 뒷가랑이를 잡아당겼을 때도, 탄핵에 몰려 정치적으로 사경을 헤맬 때도 흑인들의 클린턴 지지도는 끄떡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평소보다 지지율이 더 높았다. ‘흑인’ 대통령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런 클린턴이 뉴욕의 흑인 빈민 지역인 할렘으로 갔다. 뉴욕 업타운의 서쪽 125번가 55번지 빌딩 14층에 사무실을 개설한 것이다. 사무실 개소식 잔치가 볼 만한 구경거리였다. 백인 대통령이 퇴임하자마자 흑인 빈민 지역에 자신의 사무실을 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 거리였다. 할렘 지역 주민 4000여 명이 몰려들어 새로 이사 온 특별한 이웃을 환영했다.

환영 잔치에는 클린턴이 즐기는 색소폰 연주도 당연히 끼였고, 흑인 소년 합창단 공연도 있었다. 클린턴은 주민들의 환대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행사장에 같이 참석한 뉴욕 출신의 고참 흑인 의원 찰리 랭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장난을 거는 등 내내 환한 표정이었다. 비공식적인 행사장에 나타날 때마다 머리를 흔들고, 긴 턱의 아랫입술을 움찔거리는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도 빼놓지 않았다. 검정색 양복에 옅은 하늘색 넥타이도 신경 써서 고른 패션임이 틀림없었다.

지난 7월30일 월요일에 있던 이 할렘 잔치를 더욱 화제 거리로 만든 것은 CNN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클린턴이 CNN의 시간을 ‘훔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할렘 잔치가 펼쳐진 같은 시간에 현직 대통령 부시는 흑인 관료들로 구성된 전국 규모의 한 흑인 단체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었다. CNN은 화면 오른쪽에는 부시 대통령의 연설 장면을, 그리고 왼쪽 화면에는 클린턴의 할렘 잔치 장면을 내보냈다. 전·현직 대통령인 클린턴과 부시의 행사를 현장에서 동시에 생중계한 것이었다.

둘로 나뉜 화면 가운데 시청자의 눈길이 어디에 가 있었을지는 물어 보나마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TV 비평가인 하워드 로센버그는 7월31일자 칼럼에 이렇게 썼다. “카메라의 눈으로 들여다 보았을 때 클린턴이 사람이라면, 부시는 마네킹이다.” 어쨌든 이날은 클린턴의 날이었다. 공화당의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얼굴을 비치지 않았고, 뉴욕주 상원 의원인 힐러리가 딸 체시와 함께 워싱턴 병원에서 장암 수술을 받는 여든 두 살의 노모를 지키느라 할렘 잔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클린턴의 할렘 ‘입성’은 성공작이었다. 할렘 현장에는 온통 “러브 유 빅 빌(Big Bill)” 소리가 넘쳐 났다.



클린턴이 ‘흑인 대통령’ 소리를 들을 때마다 클린턴의 정치술을 고깝게 여기는 공화당의 험담가들은 “정말 흑인을 사랑한다면 할렘으로 가라”고 비아냥거렸다. 전직 백인 대통령이 할렘으로 간다는 것은 암암리에 흑백 차별이 엄연한 미국에서 말 그대로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할렘으로 갔다. 약자에 대한 온정이든, 고도의 정치 술수든, 박애 정신이든, 아니면 제2의 정치 인생을 위한 디딤돌이든, 어쨌든 클린턴은 할렘에 뛰어들었고 공화당은 허를 찔렸다.

클린턴이 할렘으로 간 까닭은
그러나 클린턴이 처음부터 할렘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마지못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클린턴은 뉴욕의 다운타운에 사무실을 열려고 했다. 57번가 카네기홀 옆의 고급 사무실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사무실 임대료가 장난이 아니었다. 1년에 무려 80만 달러. 물론 연방 정부가 지불해야 하는 임대료이며, 역대 퇴임 대통령의 개인 사무실 임대료 가운데 최고 액수였다.

공화당 사람들이 가만 있을 리 없고, 타블로이드 신문이 그냥 둘 리 없다. 그렇다고 클린턴이 제 함정을 팔 사람인가. 클린턴이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할렘이다. 클린턴의 이 역공은 순식간에 현직 대통령 부시의 행사를 잡아먹을 만큼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할렘을 선택한 것이 차선책이긴 하더라도 클린턴이 아니면 하기 힘든 선택이라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평이다. 한마디로 클린턴은 흑인 빈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침례교인이었으며, 하다못해 허접쓰레기 같은 음식을 즐겨본 클린턴이기에 할렘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할렘을 경제 특별구로 지정해 수백만 달러를 지원하는 등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 시절 할렘에 대한 애정을 증명해 보였다. 할렘의 주민들도 클린턴이 할렘에 들여놓은 두 발 가운데 하나는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클린턴의 할렘행이 할렘의 이미지 쇄신에 큰 역할을 하고, 하나라도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 될 게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반응이다.

그러나 할렘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클린턴을 반기는 것만은 아니다. 개소식 잔칫날, 행사장 한쪽에서는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클린턴을 비난하는 흑인 주민들이 모여 행사가 열린 오후 내내 클린턴을 ‘노예주’라고 맹공격하며 모욕을 주었다.

클린턴의 새 뉴욕 사무실이 들어선 지역은 이미 과거의 할렘이 아니다. 백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슬럼가는 고급 주택가로 서서히 변모해가고 있다. 덩달아 임대료가 치솟고, 할렘에서 생계를 이어간 흑인들 중에는 할렘을 떠나는 이도 늘어간다. 할렘의 일체감이 없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날 클린턴을 면박한 흑인 주민들은 할렘을 고급 주택가로 만들면서 방세와 생활비를 높여 놓는 돈 많은 백인과 이 백인들과 같은 부류인 흑인들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돈 많은 백인들이 흑인들의 오랜 터전을 잠식해 들어가는 할렘의 고급 주택지화가 문제된 것은 클린턴의 등장으로 비롯한 것이 아니다. 할렘 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의 경우 이미 값이 40%나 올라 있다.

이 점을 모를 리 없는 클린턴이다. 그는 할렘 개발도 개발이지만,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내가 왔다고 해서 작은 가게를 하시던 분들이 떠나서는 안 된다. 평생 동안 할렘을 존경해왔다. 어렸을 때는 멀리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할렘 출신 듀크 엘링톤의 음악을 들으면서 색소폰을 불었다.”

할렘 사무실에 입주해 신고식 잔치를 하면서, 쪽지 한 장 없이 이런 즉석 연설도 해대는 전임 대통령을 할렘은 처음 맞았다. 능력 있고 영민한 남부 출신 백인 대통령을 할렘은 ‘돌아온 아이’(The Comeback Kid)라 부른다. 이보다 더 친근함을 표하는 말은 찾기 힘들다.

도덕성을 의심 받아도, 할렘은 클린턴을 환영했다. 위선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할렘은 클린턴을 받아들였다. 클린턴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의 도덕성이 의심을 받고 위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흑인들은 클린턴을 좋아한다. 클린턴은 할렘으로 왔고, 할렘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홈보이, 빌 클린턴. 전직 대통령으로 사무실 문 열고, 할렘(모두는 아니지만)은 가슴을 열다.’클린턴의 할렘 사무실 개소식을 알리는 ‘워싱턴 포스트’지 기사의 제목이다.



주간동아 2001.08.23 298호 (p48~49)

<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 hhlee03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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