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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나노 유토피아’

지구와 우주 사이 엘리베이터 놓는다

컴퓨터·제조·의학 분야 무한대 혁명… 전쟁·테러 악용 등 통제 불능의 ‘재앙’ 우려도

  • < 이인식 / 과학문화연구소 소장 >

지구와 우주 사이 엘리베이터 놓는다

지구와 우주 사이 엘리베이터 놓는다
나노 기술의 목적은 분자 크기의 기계, 즉 분자기계의 개발에 있다. 분자기계는 이미 자연에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생물의 세포는 분자기계로 가득 찬 공장이다.

고등동물의 세포는 한마디로 단백질 제조회사에 비유할 수 있다. 단백질은 20종류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지는 분자기계다. 세포 안에서 유전정보에 따라 아미노산(원료)으로 제품(단백질)을 만드는 생산공장은 리보솜. 리보솜은 고성능의 나노 기계인 셈이다. 생명체는 이처럼 스스로 수많은 분자를 결합해 특정의 구조를 가진 분자기계를 만들어 내는 이른바 자기조립 능력을 갖고 있다.

나노 기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조립하는 물질을 이용해 리보솜 같은 분자 기계를 만드는 것이다. 나노 기술 이론가인 에릭 드렉슬러는 그의 첫번째 저서 ‘창조의 기관’(1986년)에서 이러한 분자기계를 어셈블러(assembler)라고 명명한다. 어셈블러는 분자를 원료로 사용하여 이들을 유용한 물질의 구조로 조립해 내는 분자 크기의 장치다.

드렉슬러에 따르면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것처럼 어셈블러는 물질을 처리한다. 최초의 어셈블러가 모습을 나타낼 때 비로소 나노 기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드렉슬러는 두 번째 저서이자 그의 아내와 함께 집필한 ‘무한한 미래’(1991년)에서 나노 기술이 특별히 충격을 줄 분야로 컴퓨터, 제조 및 의학을 꼽았다.

나노 기술에서는 오늘날 컴퓨터에 사용하는 실리콘 반도체 대신 단백질과 같은 유기분자를 사용하여 현재의 컴퓨터보다 속도가 빠른 컴퓨터를 개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컴퓨터는 한 개의 분자가 한 개의 트랜지스터 역할을 하므로 분자 컴퓨터 또는 나노미터 크기의 부품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노 컴퓨터라고 한다. 1997년 미국에서 분자로 전자장치를 만드는 실험에 성공한 뒤 유수 컴퓨터 업체들이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으나 아직 이론정립 단계에 머물러 오늘날 실리콘 컴퓨터의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나노 컴퓨터는 나노 기술이 쏟아낼 여러 제품 중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나노 기계를 대량으로 보급하면 제조산업에 혁명적인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우리가 물건을 만드는 방식은 원자를 대량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나노 기술은 원자 하나하나까지 설계 명세서에 따라 움직일 수 있으므로 물질의 구조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드렉슬러는 다수의 어셈블러가 함께 작업하여 모든 제품을 생산하는 미래의 제조방식을 분자제조라고 했다.

분자제조 기술이 산업에 미칠 영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나노 기술로 원자 수준까지 물질의 구조를 제어하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새로운 제품이 출현한다. 또한 고장이 잘 나지 않는 양질의 제품 생산이 가능하다. 제품이 고장나려면 수많은 원자가 제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나노 기술로는 제품의 설계와 생산공정에서 원자 하나하나를 완전 무결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신뢰성 높은 제품 출하가 가능하다.

지구와 우주 사이 엘리베이터 놓는다
분자제조 기술의 충격은 아무래도 스마트 물질의 출현에서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주위 환경을 감지해 스스로 적절하게 대응하는 지능을 가진 물질을 스마트 물질이라 한다. 스마트 페인트, 스마트 가구, 스마트 옷감 등 분자제조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스마트 물질은 무척 많다. 스마트 옷감의 경우, 얇은 섬유 안에 빛이나 습기 등을 감지하는 센서, 이 센서의 자료를 처리하는 컴퓨터, 컴퓨터의 결정에 따라 작동하는 모터 등 나노 기계가 들어 있으므로 날씨나 습도 등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옷감 스스로 모양과 질감 등을 바꿀 수 있다. 나노 기술의 활용이 기대되는 세 번째 분야가 나노 의학이다. 인체의 질병은 대개 나노미터 수준에서 발생한다. 바이러스는 가공할 만한 나노 기계다. 이러한 자연의 나노 기계를 인공의 나노 기계로 물리치는 방법보다 더 효과적인 전략이 없다는 데서 나노 의학은 출발한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나노 기계는 잠수함처럼 행동하는 로봇이다. 로봇의 내부에는 병원균을 찾아서 파괴하도록 프로그램화한 나노 컴퓨터가 들어 있으며, 모든 목표물의 모양을 식별하는 센서가 붙어 있다. 혈류를 통해 항해하는 나노 로봇은 센서에서 정보를 받으면 나노 컴퓨터에 저장된 병원균의 자료와 비교한 다음 병원균으로 판단되는 즉시 이를 격멸한다. 이러한 나노 로봇은 인체의 면역계와 다름없는 장치다. 또한 세포 수복기계라고 하는 나노 로봇은 세포 안으로 들어가 마치 자동차 정비공처럼 손상한 세포를 수리한다. 이론적으로는 나노 의학이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 거의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인간의 굴레인 노화와 사멸까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노 기술은 이처럼 단순히 우리가 물질을 다루는 방법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혁명적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낙관론자들은 나노 기술을 인류가 직면한 건강이나 환경 등 제반 문제를 치유할 만병통치약으로 여기지만 부정적 측면을 지나칠 수는 없다. 만일 사악한 목적을 가진 집단이 나노 기술을 전쟁이나 테러에 쓴다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나노 병기의 파괴력은 핵무기 못지않을 것이다.

더욱이 나노 기계는 자기 증식하는 기능을 가질 것이므로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재앙이 발생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가령 유독 쓰레기를 제거하기 위해 뿌려놓은 나노 로봇이 바이러스처럼 복제를 멈추지 않는다면 지구는 로봇 떼로 뒤덮이고 말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처방이 제안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선 나노 로봇이 일정한 세대의 증식 후에 자살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넣어두면 별 문제가 없다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

최초의 어셈블러가 출현할 시기에 대해서는 2010~2050년으로 의견이 분분하지만, 탄소 나노 튜브에 의해 나노 기술 출현의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버키튜브라는 탄소 나노 튜브는 자연에 있는 자기 조립하는 물질 가운데 공학적으로 쓰임새가 가장 많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버키튜브는 버키볼을 긴 대롱 모양으로 변형한 것이다. 버키볼은 탄소원자 60개가 자기 조립하여 축구공처럼 둥근 구조를 형성한 탄소분자다. 이 구조는 미국 건축가인 벅민스터 풀러가 창안한 지오데식 돔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 벅민스터풀러렌이라 명명했으며 이를 줄여 버키볼이라 한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에 이은 세 번째 탄소분자 결정체인 버키볼을 1985년 발견한 미국의 리처드 스몰리 교수는 1996년 노벨상을 받았다.

탄소 나노 튜브는 1991년 일본의 재료과학자가 전자현미경으로 검댕 얼룩에서 처음 발견했다. 지름이 1나노미터에 지나지 않아 굵기가 사람 머리카락의 5만 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인장력은 강철보다 100배 강하다. 탄소 나노 튜브를 10개 이상 밧줄처럼 꼬아 합성하면 금속 성질이 없어지면서 반도체처럼 전기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을 갖기 때문에 실리콘보다 1만 배 가량 집적도가 높은 소자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탄소 나노 튜브는 다른 물질로 만든 전극보다 훨씬 낮은 전압에서 전자를 방출할 수 있으므로 텔레비전과 컴퓨터 모니터의 전자총을 소형화할 수 있다. 삼성전자에서 2001년 생산 목표로 나노 튜브를 사용한 평판 디스플레이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탄소 나노 튜브는 강철보다 강하기 때문에 우주 엘리베이터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주 엘리베이터 아이디어는 1960년 러시아의 기술자가 처음 내놓았으나 과학소설의 대가인 아서 클라크가 1979년 ‘낙원의 샘’이라는 소설에 묘사함으로써 주목받았다. 클라크는 적도 상공 3만5800km의 지구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에서 지구로까지 거대한 탑을 세우고, 그 안에 승강기를 설치하면 지구와 우주를 마음대로 왕복할 수 있다고 상상했다. 리처드 스몰리 등 많은 전문가들은 탄소 나노 튜브를 사용하면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우주 엘리베이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1.08.23 298호 (p24~25)

< 이인식 / 과학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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