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6

2001.08.09

병마도 못 막은 ‘장승깎기 열정’

경남 합천 버거씨병 환자 김쌍기씨 … 지난해 부터 100여 점 제작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5-01-17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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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마도 못 막은 ‘장승깎기 열정’
    30℃를 우습게 넘겨 버린 더운 여름 한낮, 경남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 국도변의 넓지 않은 장승공원 주변에는 가득 들어선 100여 개의 장승들이 웃고 화내고 입을 삐죽거린다. 메마른 나무, 생명을 다해 더 이상 수액이 흐르지 않는 그 나무들이 살아 있다. 작은 옹이 하나, 남은 가지 하나가 그대로 표정이 된다.

    장승들 사이에서 조그만 컨테이너 박스와 비닐 천막을 작업장 삼아 나무를 다듬는 김쌍기씨(41)를 만났다. 길게 자란 머리와 단아한 개량한복이 평범치 않은 첫인상의 그는 ‘장승을 깎는 사람’이다. ‘공예가’ ‘조각가’ 같은 말들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서둘러 손사래를 친다. 인사를 건네며 목발에 의지해 자리에서 일어서는 오른쪽 다리 밑이 허전하다. 그는 버거씨병(Buerger’s Disease) 환자다.

    버거씨병이란 팔·다리의 작은 혈관들이 막혀 발가락이나 발이 썩는 병이다. 증상이 심해져 동맥이 막히고 피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면 괴사로 인해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 김씨가 처음 이 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난 88년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오면서 손가락·발가락은 물론 오른쪽 다리도 무릎 아래가 떨어져 나갔다. 생살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과 날이 갈수록 불편해지는 팔·다리에 시달려 온 지 어느새 13년째. 그러나 김씨는 “장승은 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나무에도 마음이 있습니다. 나무의 마음과 깎는 사람의 마음이 합쳐져 장승이 되는 거죠. 결국 솜씨나 손놀림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눈·코·입이 잘생겼다고 잘 깎은 장승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가 말하는 나무의 마음이란 결국 나무의 본 생김새다. 나이테의 방향·결·옹이 등 나무가 살아 생전 가진 성질을 거스르지 않고 그 위에 깎는 사람의 의도를 보태야 장승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표정 있는 장승이 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장승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병마도 못 막은 ‘장승깎기 열정’
    그가 장승을 깎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 살고 있는 율지리가 전통 가면극 오광대놀이의 발상지로 문화마을이 되면서 개최한 지난해 ‘탈·장승 축제’ 때 처음 망치와 끌을 잡은 그는 곧 장승에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고 말한다. “딱히 무엇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방안에만 파묻혀 힘들어한 시간이 끝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이었지요.” 행사가 끝나고 난 뒤에도 자리를 떠날 수 없던 김씨는 ‘장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멤버들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장승 수업에 들어갔다. 공원이 그대로 그의 작업장이 되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피가 배어나오던 다리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기 시작했어요. 통증도 거의 사라졌고요. 혼을 바칠 만한 무언가를 찾았다는 것이 몸에 주는 효과겠지요. 마을 사람은 농담 삼아 장승의 영험이라고 말하지만 말입니다.” 작업하는 동안 그는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옆에서 누가 떠들어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마음을 다해 열중하는 것,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일들을 잊을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가 장승을 통해 얻은 가장 큰 ‘효험’이다.

    장승 하나를 깎는 데는 보통 이틀이 걸린다. 집 앞에 세우기 위해, 전통 찻집 인테리어를 위해, 행사 기념조형물로 삼기 위해, 장승이 필요한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어디서든 사람의 마음에 남기를 바라는 김씨의 마음은 늘 한결같다. 개당 20만 원은 받아야 나뭇값이라도 빠진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사가는 사람의 사연과 형편에 따라 값은 늘 들쭉날쭉이다.

    몸이 한결 나아지면서부터 전국의 장승을 찾아 돌아다니는 일도 시작할 수 있었다. 장애인 표지를 붙인 승용차에 의지해 나선 길에서 만난 장승들이 모두 그의 스승이다. “많이 보는 것보다 좋은 공부는 없는 것 같습디다. 그래도 아직 그 깊이를 모르겠어요. 본 대로 따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장승을 위해서는 생김새보다 오히려 위치가 더욱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김씨는 말한다. 마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에 서 있는 장승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것. 그의 기억에 오래 남은 장승은 충남 칠갑산 장곡사 입구에 서 있는 대장군과 여장군이다. 크기는 물론이려니와 찾아온 사람을 계속 마중하는 모습이 인상에 오래 남았다는 소감이다.

    병마도 못 막은 ‘장승깎기 열정’
    그가 작업에 열중하는 작업장은 말 그대로 동네 사랑방이다. 토박이인 김씨에겐 동생이나 다름없는 후배들이 아이들의 손목을 끌고 놀러 오기도 하고, 허리 굽은 어르신들이 뜨거운 햇볕을 피해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한다. 몸이 불편한 김씨지만 어떻게 나무를 옮겨야 할지 난감해하는 경우는 없다. 앞길을 지나가는 수많은 ‘동생들’을 불러 도움을 청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고향이 있다는 건 그래서 좋은 거지요. 나를 아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과 끊임없이 교감할 수 있으니까요. 사람이 많은 곳에 서 있는 장승이 행복한 것처럼, 저도 외딴 곳보다는 사람이 많은 길가 작업장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

    김씨가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 것은 긴 투병기간 그를 괴롭힌 외로움 때문이다. 손가락·발가락이 짓무르며 병마가 짙어가던 89년, 아내는 그와 아직 코흘리개인 아들을 두고 집을 나갔다. 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다. 병든 남편의 육체를 지켜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늙으신 부모와 이제 한창 사춘기를 맞은 아이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아내를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언젠가 여기 장승공원을 찾아와 제가 만든 이 장승들을 둘러볼 날이 오겠지 믿고 있지요.” 작은 한숨이 그의 목구멍에 걸린다.

    “재목으로는 주로 창원에서 나오는 소나무를 씁니다. 사람에게 가장 익숙하고 향기도 친근한 까닭에 장승 재목으로는 소나무만한 것이 없지요.” 나무의 모양은 중요하지 않지만 겨울에 베어내 잘 마른 나무가 작업에 가장 좋다고 한다. 수액이 대부분 빠져 나간 겨울 나무라야만 본디 자기의 생김새를 쉽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나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사람도 삶에 대한 평범한 희망이 모두 사라진 후에야 새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거니까요.”

    사람들은 장승을 종교라고 말한다. 우상이라고도, 또 미신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김씨에게 장승은 사람과 나무가 만나 빚어낸 ‘표정’이다. 나무로서의 수명을 끝내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새로운 삶의 자리에 서는 장승.

    질병으로 인해 접은 평범한 생활인으로서의 인생 대신 또 다른 삶의 길을 찾아가는 김쌍기씨는 그대로 살아 있는 장승이었다.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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