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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살해범 이은석은 무죄?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심리분석 보고서 … 아동 학대와 폭력 사회가 만든 ‘희생양’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부모 살해범 이은석은 무죄?

부모 살해범 이은석은 무죄?
2000년 5월21일 일요일. 이은석은 방에 있던 망치를 들고 어머니가 자는 방으로 들어갔다. 머리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세 번 쳤다. 그냥 확인도 하지 않고 방문을 닫고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와 망치를 손에 든 채 약 4시간 동안 멍하니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위스키를 두 모금 마신 뒤 다시 아버지가 자는 방으로 가서 한 번 가격했다. 때는 오전 9시경. 그 후 한 시간 반 가량 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시체를 절단해 숨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열 조각, 아버지는 열 한 조각으로 분리했다. 사체를 오븐에 넣어 태우려 했지만 부피가 줄지 않자 시체조각을 신문지로 쌌다. 그것을 조금씩 비닐봉지에 담아 집 근처 하천, 지하철역 쓰레기통, 거리의 쓰레기통, 공원의 음식물 수거함, 빌딩 사이 쓰레기 더미 등에 나눠서 버렸다. 꼬박 3일이 걸렸다. 사건 발생 나흘 만인 5월25일 이은석은 경찰서에서 모든 사실을 자백했다. 이것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부모 토막살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은 중류층 가정에서 자랐고 평소 온순한 성격인 이른바 명문대생(당시 K대 산업공학과 2학년 휴학중)이, 특별히 부모를 살해할 만한 직접적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잔인하게 토막살해를 했다는 점에서 기존 패륜범죄 이상으로 세인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기자들이 은석의 형 ○석에게 소감을 묻자 “동생을 이해한다”고 답변한 대목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연세대 이훈구 교수(심리학)는 “부모를 토막살해한 동생을 이해한다고 한 형의 답변을 듣고 이 사건의 원인이 아동 학대임을 확신했다”고 말한다.

검거 직후 범인의 정신감정을 실시한 경찰청 범죄심리분석 자문위원회는 “범행 후 치밀하게 시체를 유기한 점 등으로 미루어 정신이상으로 볼 수는 없으나, 부모의 지나친 학대와 학창시절 친구들에게서의 소외 등으로 인한 피해의식, 만성적 우울증, 강한 현실도피 욕구 등이 순간적으로 불붙어 저지른 범행이다”고 결론지었다. 이은석은 존속살해 및 사체유기 혐의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지난 7월21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초기 반응은 “어떻게 이런 반인륜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는 개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정폭력, 학원폭력, 각종 미디어의 폭력, 인터넷 중독 등 이 사건의 총체적 배후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훈구 교수는 은석이 남긴 방대한 분량의 일기와 수감중인 은석과 그의 형 ○석과의 면담, 검찰이 소환한 은석의 친구들, 친척의 증언을 토대로 은석이 부모를 살해한 동기에 대해 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이야기 刊)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교수는 결론적으로 “은석의 범죄 의도 유무를 떠나 그는 무죄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는 사실상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심리학적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어머니 황○○ : 이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아버지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지만 많은 재산을 남겨 유복하게 자랐다. 야무지고 똑똑한 그녀는 명문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대통령 영부인이 되겠다며 그 꿈을 실현해 줄 인물로 엘리트 장교인 남편 이○○를 택했다. 그러나 남편이 대령 진급에 실패하고 퇴역하자 부부관계가 악화했다. 신경질적인 성격의 황씨는 신앙생활에 심취했지만 주변 사람에게 너무 있는 척, 아는 척해서 따돌림당했다.

부모 살해범 이은석은 무죄?
황씨는 두 아들을 스파르타식으로 키웠는데 큰아들은 어머니의 교육에 반항했다. 소극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은석은 그대로 따랐지만 마음의 상처는 컸다. 은석이 기록한 어머니의 학대 중에는 초등학교 때 운동화 끈을 못 묶는다고 때리고, 밥을 늦게 먹는다고 젓가락을 던지고, 책가방에 동화책이 있다고 혼나고(이것은 황씨의 어머니가 딸이 소설을 읽으면 야단쳤다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전화 메모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고 따귀 맞고, 키가 작아 사회생활이 힘들 것이라는 등의 모욕을 주고, 도시락을 안 싸줘 분식집 김밥으로 때운 때가 잦은 일 등 보통의 부모자식 관계에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아버지 이○○: 4남2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경제적으로 윤택했으나 이씨의 형이 사업을 하다 재산을 축내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맏아들에게만 끔찍하고 둘째아들에게는 무심했다. 이씨는 이런 아버지를 증오하며 점점 내성적이 되었다. 은석 또한 이런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다. 서울대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이씨는 취직을 해 상사에게서 능력을 인정 받았지만 다시 해군사관학교로 진로를 바꾼다.

이씨는 똑똑하고 자립심이 강한 사람으로 자신이 자수성가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자식의 양육은 아내에게 맡겼고, 군 시절에는 일선에서 근무했으며, 제대 후 지방에서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가족과 애정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자상한 아버지와는 거리가 먼 그는 자식들이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고 윽박지르는 쪽이었다. 유독 둘째아들 은석을 미워하고 큰아들에게는 관대한 편이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부모에게서 받은 그대로였다.

부부 관계 : 은석의 부모는 한집에 살면서 줄곧 각방을 쓸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황씨의 유품 가운데 남편에 대한 불만을 적은 수첩이 발견되었는데 99년 11월 기록에서 “저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며 사탄과 친한 자, 악의 업보다”며 극도의 증오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황씨가 남편에 대한 불만을 참고 참다가 수첩에 기록하고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을 가지고 남편에게 따졌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은석이 부모를 살해하기 10일 전 처음으로 자신의 불만을 적은 일기를 들이대며 어머니에게 학대 사실을 따진 것과 똑같다. 남편이 생사람을 잡는다고 아내와 큰싸움을 벌인 것과 마찬가지로, 황씨는 자신의 학대를 따지는 아들 앞에서 펄펄 뛰며 은석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형과의 관계 : 살해사건이 있기 10일 전인 5월11일 은석의 형은 부모가 얻어준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날 형의 이사를 도우면서 은석의 심리상태는 뒤틀렸다. 사건 1년 후 은석의 고백을 들어보면 “어머니 아버지가 형의 이사를 적극적으로 세심하게 신경쓰는 게 거슬렸다. 지난 10년 동안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대학에도 들어가고 군대까지 무사히 갔다 온 내가 지금 다 죽어가는데도 어머니 아버지는 지난 10년 간 하루가 멀다 하고 그들에게 대들고 싸워온 형한테 더욱 관심이 있는 거다. 치사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형이 이사한 날 은석은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그동안 자기에게는 관심도 두지 않고 못 살게 굴었다”며 대들었다.

집단 따돌림 : 은석은 특히 학창시절 4명의 이름을 거론하고서 자신을 괴롭힌 장본인인 손쭛쭛는 찔러 죽이고 싶다고 말할 만큼 증오했다. 중1 때부터 한 반인 손쭛쭛는 키가 180cm에 이를 만큼 큰 체격이었는데 반대로 키가 작고 운동신경이 둔한 은석을 원숭이라 부르며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러자 다른 학생도 덩달아 은석을 조롱했다. 군대에서도 소심한 은석은 ‘왕따’를 당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은석이 군대 한 달 후배인 K의 잘못을 지적하자 K가 이를 무시했고, 은석이 아무런 처벌도 하지 못하자 동료와 부하까지도 그를 우습게 여긴 것이었다. 군대 내 왕따는 은석에게 심한 피해망상과 대인기피증을 일으켰다.

영화·비디오·게임 마니아 : 은석은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 가기 전 2년 동안 456편의 영화를 볼 정도로 몰두했다. 사실 친구 한 명 없는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영화감상과 컴퓨터 게임이었다. 특히 감명 깊게 본 영화로 ‘택시 드라이버’와 ‘매그놀리아’를 꼽는다. ‘택시드라이버’는 창녀가 여러 사람에게서 착취당하는 것을 동정한 택시기사가 무참하게 복수하는 내용이고, ‘매그놀리아’는 아동학대를 한 아버지에 대한 영화다. 바로 은석의 삶과 밀착한 내용이다.

이훈구 교수는 ‘제2의 이은석’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아동학대’의 심각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은석의 삶이 망가진 것은 결국 부모, 특히 어머니의 학대 때문이었다. 남편과의 불화로 히스터리 증세를 보인 황씨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자식에게 퍼부어 해소하려 했다. 미국의 존속살해 연구 대가인 하이드 교수의 ‘왜 아이들은 부모를 살해하는가’에 따르면 부모 살해 청소년의 90%가 아동학대의 피해자였다.

또 가정에서의 학대만큼 심각한 것이 사회의 집단 따돌림이다. 은석의 경우 부모의 학대만 겪고 학교나 군대에서 왕따당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부모 살해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고 이훈구 교수는 분석한다. 여기에 컴퓨터와 비디오 중독은 더욱 은석을 자폐증으로 몰아갔다.

은석은 경찰서에서의 진술에서 최초로 어머니에게 반항하며 학대사실을 따졌을 때 어머니가 만약 “미안하다”고만 했어도 그동안의 일을 모두 잊었을 거라고 진술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나요”라는 그의 울부짖음에서 관계의 단절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비극을 절감할 수 있다.



주간동아 2001.08.09 296호 (p34~35)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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