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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빚좋은 개살구’ 자동차 리콜제

‘면피용 리콜’ 안전운행 위협한다

리콜 범위 모호·민원 급증 … 출고 1년도 안 된 차량 집중, 소비자는 시험대상(?)

  •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면피용 리콜’ 안전운행 위협한다

‘면피용 리콜’ 안전운행 위협한다
지난 99년 7월 현대자동차 그랜저XG 3.0을 구입한 지모씨는 작년 2월 초 충북 괴산군 3번 국도상에서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중앙분리대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그러나 에어백이 작동하지 않아 찰과상을 입은 지씨는 사고 직후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에 피해 구제 신청을 했다.

지씨의 요구를 받은 소보원측은 자동차기술 자문위원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그러나 지씨가 보내온 사고 사진을 판독한 자문위원은 “정면 충돌로 보기 어렵고, 정면에서 각도가 벗어난 충돌이며 프레임에 정확하게 전달한 충격력은 에어백이 작동할 만한 순간 충격력의 조건에 미흡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에어백 결함이 아니므로 자동차 회사에 보상을 요구할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지씨처럼 충(추)돌 사고시 에어백 미전개로 인한 상해 및 재산상 손해를 이유로 피해 구제를 신청한 건수는 99년 114건, 작년 199건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 소보원 관계자는 “에어백 관련 민원이 늘었지만 에어백 자체의 결함인지 여부를 판단할 독립적인 기구나 전문기관이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관리법상 에어백에 대한 안전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에어백 결함을 발견하더라도 이것이 안전 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조차 없고, 실제 지금까지 에어백을 리콜한 적은 한번도 없다. 소보원 관계자는 “에어백은 충돌 사고시 인체를 보호하는 2차적인 안전장치이기 때문에 에어백 장착을 의무화하고 이에 대한 안전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자동차 타이어도 마찬가지. 주행중 타이어가 파손한 것과 관련, 소보원에 피해 구제 신청을 요청해 온 건수는 99년과 작년에 각각 97건과 125건에 달한다. 이런 사고가 타이어 자체 결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정비 불량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능 시험을 해봐야 하지만 소보원으로서는 한 차례 시험에 2000만~3000만 원의 ‘거금’이 소요하므로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타이어는 사소한 결함도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자동차 부속품. 그런데도 지금까지 타이어 리콜 실적은 99년 11월 한국타이어가 자사의 주력 제품 ‘옵티모 클래식’ 두 종류를 자발적으로 공개 리콜한 게 유일하다. 한국타이어는 조사 결과 ‘205/60R15’ 와 ‘205/65R15’ 모델의 타이어 옆면에서 균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발견해 리콜을 실시했다.

타이어 리콜 실적이 한 건에 지나지 않는 것은 국내 타이어 업체의 품질관리가 그만큼 철저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이어 업체 관계자들마저 타이어 안전 기준이 낮다는 지적을 하는 상황이고 보면 제도적인 허점 때문에 타이어 리콜 건수가 거의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소보원 관계자는 “타이어 안전기준 항목을 규정한 품질경영촉진법상 타이어는 사전 검사품목에서도 빠진 상태다”면서 “타이어 안전기준을 현재보다 강화해 자동차관리법에 통합해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보원에 접수한 피해 상담 가운데 주행중 시동 꺼짐 현상 역시 거의 모든 차종에 걸쳐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자동차 안전운행에 치명적이지만 현행법상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가 이런 현상이 자동차 제작과정상의 결함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성능 시험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런 종류의 결함이 ‘다수’의 자동차에서 발견될 때에야 비로소 성능 시험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결함정보란 수집하기 어렵고 실제 사고가 일어나기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런 규정은 제도적 허점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다수의 자동차에 결함이 있다고 여겨질 때에는 이미 그 결함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후이므로 1~2개의 결함 정보에 의해서도 동종 차량에 제작결함이 있는 것을 확인한 때에는 관련 차량을 모두 리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한다.

리콜이란 소비자 보호제도의 하나로, 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상품의 결함으로 소비자가 위해(危害)를 입거나 위해를 입을 염려가 있을 경우, 상품의 제조사나 유통업자가 스스로 또는 정부의 명령에 의해 공개적으로 결함 상품 전체를 수거해 위해 방지 조치를 취하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 역시 상품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 법의 적용을 받긴 하지만 특별히 자동차 안전과 관련한 리콜은 자동차관리법 규정에 따라 건교부가 담당하고 있다. 반면 대기환경보전법에 의해 자동차 배출가스 관련 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리콜은 환경부가 담당하고 있다(27쪽 기사 참조). 이밖에 소보원도 자동차와 관련된 소비자 상담 및 피해 구제 요청 정보로부터 결함 정보를 수집 분석 및 평가해 제조업체에게 리콜을 권고하거나 건교부에 리콜을 건의하고 있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현행 리콜은 ‘자동차 제작 등의 과정에서 비롯된 사유로 인해 안전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하거나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이 다수의 자동차에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교부 장관은 자동차 회사가 자발적인 리콜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 리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실시한 리콜은 대부분 건교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자동차 회사가 자발적으로 실시하는 형태였다.

건교부가 정한 ‘자동차 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제작 자동차 등 안전기준이 가속제어장치, 계기 패널, 조향장치 등 38개 항목에 걸쳐 규정되어 있다. 이 기준에 맞지 않게 자동차를 제작해 결함이 생긴 경우 자동차 회사는 벌금을 물고 리콜을 실시해야 한다. 반면 이 기준에는 부합하지만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결함에 대해서는 리콜만 실시하면 된다. 또 안전과 직접 관련이 없는 품질 결함에 대해서는 자동차 회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

‘면피용 리콜’ 안전운행 위협한다
자동차 리콜은 92년 9월 자동차관리법 개정에 따라 도입한 이후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소득 수준 향상으로 자동차의 안전도 및 제작 결함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증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자동차 동호회, 자동차 회사의 안티그룹 등의 활동 공간이 넓어지면서 리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리콜이 증가하는데도 리콜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여전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리 나라 자동차 안전기준이나 리콜 제도가 미국 등 선진국보다 여전히 미비한 상태기 때문이다. 국민대 정태용 교수(기계·자동차공학과)는 “리콜 제도가 미비한 것은 자동차 산업 발전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보호조치’ 때문이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의 리콜에 대한 불만은 무엇보다 앞에서 예로 든 경우에서 보듯 리콜 범위가 명확히 정립하지 않은 데서 비롯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교통안전공단 윤경한 책임연구원은 “소비자는 모든 구조 및 장치의 결함에 대한 리콜을 요구하는 반면 자동차 회사는 안전과 직접 관련된 장치 및 구조만 리콜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같은 인식 차이로 인한 민원과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에서 리콜제도를 도입한 지 10여 년 만인 1970년대 말부터 정착 단계에 접어든 미국의 리콜 사례는 부럽기만 하다. 오랜 리콜 역사로 리콜을 담당하는 교통부 산하 국립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건수별로 리콜 사례를 관리, 리콜의 한 기준으로 삼는 실정이다. 이런 사례를 보면 미국 정부가 자동차 안전에 관해 얼마나 신경쓰는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운행중 자동차 내부 램프가 예기치 않게 점등할 가능성이 있는 자동차의 경우를 보자. 우리 나라에서는 이에 대해 리콜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지만 미국은 98년 2월 대상 차량에 대해 리콜 조치를 취했다. ‘갑자기 내부 램프가 점등할 경우 운전자를 놀라게 해 조향감각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연방자동차안전기준(FMVSS) 101 ‘제어 및 표시’ 요건에 미달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또 어린이 안전시트를 장착한 미니밴의 안전벨트 잠금장치가 더러울 경우 어린이가 벨트 풀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벨트 잠금장치를 청소하도록 리콜 조치를 취한 적도 있었다.

리콜을 실시하는 자동차 회사들의 행태나 태도도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 가운데 하나. 출고한 지 1년도 안 된 차에서 집중적으로 리콜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소비자를 시험 대상으로 삼는 듯한 자동차 회사의 안이한 자동차 개발 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리콜을 ‘면죄부’로 이용하려는 태도 역시 문제라는 것.

자동차 회사 관계자들은 “최근 들어 자동차 리콜이 증가하는 것은 자동차 회사의 서비스가 향상했기 때문이다”면서 “선진국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리콜을 실시한다”고 말한다. 또 소비자들이 리콜을 많이 한 회사에 신뢰를 보내야 자동차 회사들의 자발적 공개 리콜이 활성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 최근 리콜 대수는 1년에 1700만 대 안팎으로 전체 보유 대수의 15% 수준이다”(교통안전공단 윤경한 연구원). 반면 우리 나라의 경우 작년 자동차 등록 대수 대비 리콜 대수 비율은 5% 이하기 때문에 선진국일수록 훨씬 많은 리콜을 실시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얘기다.

업계의 주장대로 국산 자동차의 리콜 증가를 서비스 향상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자동차10년타기 시민운동본부 임기상 대표는 “현대자동차 미니밴 트라제XG나 기아자동차 레저용 차량 카렌스2.0 LPG의 경우에서 보듯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차를 리콜하는 것은 소비자들을 시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고 말했다. 두 차종이 각각 카니발과 레조를 의식해 서둘러 출시하다 보니 충분한 시험과 생산 준비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임기상 대표는 또 “카니발의 경우 매연 과다 발생으로 인한 리콜 실시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문제를 반복하는데도 카니발Ⅱ까지 나온 상황이다”면서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카니발 매연 문제는 리콜 조치를 취했으므로 더 이상 문제가 없다는 듯한 기아측의 태도야말로 리콜을 면피용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충분한 준비 없이 리콜 실시를 발표하는 자동차 회사들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소비자도 많다. 사이버상에서 카렌스의 주행중 시동꺼짐 현상에 대한 문제를 집중 제기한 ‘안티 카렌스’ 운영자 양인철씨는 “리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어렵게 지정사업소에 예약한 다음 막상 도착해 보면 ‘부품이 없다’는 이유로 헛걸음한 적도 있다”면서 “자동차 회사는 이제 애국심에 호소하던 시대가 지났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교통사고 예방을 통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제작 결함 예방을 위한 철저한 품질관리 및 제작 결함 자동차의 조속한 시정이 요구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는 이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 국산 자동차의 안전도를 확보하고 품질을 개선하는 길만이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1.08.09 296호 (p22~24)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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