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4

2001.07.26

안정환 이적 파문, 꼬인다 꼬여!

기업논리·명분·감정 얽힌 삼차방정식 … 안선수와 부산구단 양보만이 해결책

  • < 류재규/ 스포츠서울 축구팀 기자 > jklyu@sportsseoul.com

    입력2005-01-11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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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환 이적 파문, 꼬인다 꼬여!
    최근 축구계를 뜨겁게 달구는 안정환(25, AC페루지아)의 이적문제를 바라보는 축구계에선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은 안정환의 손을 들어주고 조금 아는 사람은 부산 구단의 입장을 옹호한다. 그러나 정말 깊이 아는 사람은 노코멘트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농담이 오간다. 선수와 구단의 입장은 물론 이탈 리아 세리에A의 속사정까지 감안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주장에는 진실과 억지가 뒤섞여 있어 어떤 시각을 갖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선 지난해 7월 안정환이 페루지아에 입단할 때의 계약조건을 살펴보자. 당시 안정환의 소속팀이었던 부산 아이콘스가 택한 구단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레알 라싱 산탄데르. 반면 안정환은 자신의 에이전트 (주)이플레이어(대표 안종복)가 추진한 세리에A 페루지아에 입단하겠다고 밀어붙여 끝내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전체 계약기간은 5년, 몸값(이적료) 총액은 250만 달러.

    당시 페루지아는 안정환의 기량을 검증하지 않았고, 병역을 마치지 않아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며 첫 1년 임대안을 관철했다. 1년 후 페루지아가 안정환을 계속 보유하려면 자동적으로 이적계약이 성립하고, 페루지아는 첫 해 임대료 40만 달러를 제외한 잔여 이적료 210만 달러를 부산에 지급하도록 했다.

    당초 페루지아는 완전 이적계약 여부를 첫 해 임대기간이 종료되기 한 달 전인 지난 6월30일까지 통보해 주기로 했다. 안정환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5월 말 페루지아가 당초 계약서상의 잔여 이적료 210만 달러 중 100만 달러밖에 못 주겠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부터. 그와 함께 페루지아는 1년간 50만 달러에 재임대하자는 안도 내놓았다. 안정환의 거부로 처음에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 이 안은 부산 구단이 수용의사를 보이면서 다시 주목을 받는다.

    페루지아가 태도를 바꾼 근거는 ‘1년 뒤 안정환을 계속 보유한다면’이라는 단서조항 때문이었다. 페루지아로선 몸값 후려치기로 인해 이미지에 손상을 받더라도 안정환을 보유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안정환을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한마디만 하면 모든 계약상의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같은 사실상의 불평등계약이 성립한 것은 월드컵을 앞두고 유망주를 유럽으로 보내야 한다는 당위론에 밀려 서둘러 맺은 계약, 한국 프로스포츠의 가장 큰 딜레마인 병역문제, 유럽리그의 선수계약 관행에 대한 무지 등 한국 축구계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다툼은 안정환의 이적을 둘러싸고 기업논리와 명분, 감정싸움이 삼중주를 이루면서 확대되었다. 5월 말 페루지아를 방문한 안종복 대표가 귀국해 협상결과를 설명하자 부산 구단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모 기업의 지원 없이는 당장 쓰러질 수밖에 없는 부산 구단의 입장에선 적자폭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가장 중요한 카드인 안정환을 헐값에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차액 110만 달러는 결코 만만찮은 돈이었다. 부산 구단은 또 계약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페루지아의 태도가 한국축구 전체의 자존심을 짓밟았다고 흥분했다.

    안정환 이적 파문, 꼬인다 꼬여!
    지난해 안정환이 페루지아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쌓인 감정의 앙금도 여전했다. 특히 안종복 대표에 대한 불신이 컸다. 안대표는 부산 아이콘스의 전신인 부산대우 단장 시절 서울기계공고에 다닌 안정환의 재질을 알아보고 대우의 연고 대학인 아주대에 진학시켰고 98년 안정환이 부산대우에 입단한 뒤에는 단장이자 후견인 역할을 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안정환에게서 ‘삼촌’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부산 구단은 그런 안단장이 안정환을 빼앗아 간 뒤 제3구단으로 이적시키면서 엄청난 차액을 독차지하거나 국내의 다른 구단으로 빼돌리려 한다고 의심했다.

    부산 구단의 주장에 맞서 안정환측은 자신의 이탈리아행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의 전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완전이적해야 한다는 것. 안정환은 “구단이 차선책으로 고른 재임대를 할 경우 투자의욕을 상실한 페루지아가 자신을 또다시 벤치에 앉혀 둘 것이다”며 “두번 다시 그런 고통을 당하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안정환은 2000∼2001 시즌 자신이 기록한 성적을 보면 페루지아가 제시한 100만 달러가 자신의 몸값으로 적절하다며 지난 1년 동안 부산 구단이 자신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이제 와서 선수의 앞날을 가로막느냐는, 다분히 감정적이지만 부산 구단을 코너로 몰아넣는 강경발언을 했다.

    그렇다면 페루지아는 왜 안정환의 몸값을 후려쳤을까? 페루지아가 안정환을 욕심내면서도 상도의를 벗어난 카드를 던진 것은 일차적으로 안정환과 부산 구단이 페루지아 외의 제3구단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양측의 갈등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세리에A에서 벤치신세를 지다 막판 간신히 주전자리를 확보한 안정환으로선 다른 팀을 선택해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거나 또다시 지루한 벤치생활을 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던 것. 부산 구단 역시 안정환의 위임장 없이는 다른 구단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페루지아의 어려운 형편 역시 크게 작용했다. 예산의 60% 이상을 모기업의 지원에 의존하는 국내 프로구단들의 입장에선 이해가 되지 않지만 외국 구단들은 자체 수입으로 수지타산을 맞추지 않으면 곧바로 파산이라는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다. 각 리그의 슈퍼 클럽들은 스타를 영입해 우승함으로써 얻는 상금과 관중 수입, 중계권료, 유니폼 스폰서료, 기타 각종 용품 수입 등을 구단의 주수입원으로 삼는다. 이들은 구단운영이 극도로 어려워지지 않는 한 스타 플레이어를 내다팔지 않는다.

    그러나 이같은 생존전략을 택하기 어려운 구단은 싼값에 선수를 영입해 잘 포장한 다음 비싼 값에 내다 파는, 이른바 선수 마케팅을 통해 수입을 올린다. 세리에A에서도 취약한 재정구조를 지닌 페루지아는 98년 나카타 영입에서 엿볼 수 있듯 아시아·남미·유럽의 마이너리그에서 선수를 사와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을 주된 수입원으로 삼았다. 지난 5월20일 기자가 페루지아 홈구장을 찾았을 당시 구단의 이같은 장삿속에 화가 난 관중들은 구단주인 가우치 부자가 경기장에 나타나자 일제히 “가우치, 가우치, 바팡쿨로(Vaffanculo : 이탈리아 욕설)”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따라서 가우치 가문으로선 선수 트레이드에 남다른 협상술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고, 안정환은 이같은 페루지아 구단 생존전략의 시범 케이스가 된 셈이다.

    올해 페루지아에게서 영입제의를 받은 가와구치를 비롯한 일본 선수들이 페루지아행을 거부한 것은 이런 생리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난 98년 페루지아가 지급한 100만 달러에, 일본 내 스폰서들의 지원금 230만 달러를 합친 330만 달러에 페루지아 유니폼을 입었다가 지난해 초 AS로마에 1700만 달러에 팔린 나카타도 AS로마행 당시 이적료 지분을 두고 페루지아, 일본 내 스폰서 등과 밀고 당기는 치열한 협상을 거쳐 진이 빠진 채 이적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현재 페루지아가 210만 달러를 모두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안정환이나 부산 구단이 취할 수 있는 대안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부산구단이 100만 달러에 안정환을 보내주는 것이다. 둘째, 안정환이 페루지아와 부산 구단이 원하는 재임대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셋째, 안정환이 해외 진출을 포기하고 부산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은 어느 한쪽이 백기를 들기 전에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 넷째는 절충점을 찾는 것인데 여기에도 2가지 안이 있다.

    먼저 안종복 대표의 구상처럼 국내 펀딩을 통해 차액 110만 달러를 모으거나 부산 구단이 100만 달러 완전 이적안을 받아들이고 안정환이 제3구단으로 이적할 때 지분을 인정 받는 것이다. 그러나 지분을 인정해야 할 페루지아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낙관적인 관측을 하는 쪽은 페루지아의 무반응이 지분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상대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고도의 협상전술이라 본다. 그러나 페루지아가 절충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모든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결국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양측은 지난해 안정환을 보낼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선수가 망가지는 일은 피해야 한다. 출중한 재능을 지닌 안정환이 월드컵이라는 꿈의 무대에서 제 역할을 못하면 국민적 숙원인 월드컵 본선 16강 진출이라는 꿈도 멀어진다. 또한 안정환 진출 이후 언제 다시 한국축구가 세리에A 선수를 배출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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