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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빠진 ‘삼바축구’ 예고된 몰락

개인기만 믿고 전술 개발, 파워 접목 외면… 월드컵 예선 탈락 위기감 ‘충격의 브라질’

  • < 고진현/ 스포츠서울 축구팀 기자 > jhkoh@sportsseoul.com

힘빠진 ‘삼바축구’ 예고된 몰락

힘빠진 ‘삼바축구’ 예고된 몰락
브라질이 충격에 휩싸였다. ‘삼바축구’의 몰락이 가져다준 상처다. 축구로 해가 뜨고 해가 진다는 나라. 그들에게 축구는 스포츠가 아니라 종교였다. 지금까지 지켜온 세계축구의 최고봉이라는 아성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사회 전반에 전염병처럼 퍼지고 있다.

월드컵 역사상 브라질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까지 열린 16번의 월드컵에 모두 출전, 4번의 우승컵을 품에 안은 브라질이 어쩌면 본선 진출 탈락이라는 오욕의 멍에를 뒤집어쓸 위기에 놓였다. 브라질은 현재 남미 예선에서 우루과이와 나란히 승점 21점을 기록하며 골 득실에서 간신히 앞선 4위에 턱걸이한 상황. 남미에서는 예선 4위까지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쥐는데 지금 브라질의 전력을 놓고 볼 때 본선 진출을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브라질은 앞으로 남미 최강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파라과이, 칠레,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등과 5게임을 남겨두고 있다.

5월 FIFA 랭킹 1위도 내줘

‘검은 그림자’가 악령처럼 드리운 브라질 축구. 그런 상황에서 브라질 국민의 축구에 대한 비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외신들도 약속이나 한 듯 ‘브라질 없는 월드컵’이라는 제하의 기사로 추락하는 브라질 축구의 위상을 꼬집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배구 월드리그에서 우승한 남자 배구팀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브라질은 98프랑스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에 3 대 0으로 패한 이후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5월 7년간 지켜온 FIFA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프랑스에 내준 브라질은 2002년 월드컵 예선이 열린 이후 무려 세 번이나 사령탑을 갈아치우는 등 갈지자걸음을 걷고 있다. 지난 5월 대륙간컵에서 4위에 그친 에메르손 레앙 감독을 귀국 직후 전격 경질한 브라질 축구협회는, 난파선을 구할 새로운 조타수로 스콜라리 감독을 지명했지만 그 또한 한바탕 격랑에 휩싸이며 휘청거렸다. 첫 지휘봉을 쥐고 지난 2일 우루과이전에서 그동안의 부진을 털어내려고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냈지만 1 대 0으로 패한 것. 호마리우·히바우두·카프 등 불세출의 스타들을 다 동원한 ‘드림팀’을 가동하고서도 무릎을 꿇고 말아 충격은 더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라는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가상 시나리오’가 점점 가시화하는 현실에 브라질 국민은 아예 넋을 잃었다. 게다가 같은 날 세계청소년대회에 출전한 ‘아우’들도 준결승에서 복병 가나에 뒷덜미를 잡혀 브라질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에 빠졌다. ‘삼바축구’의 몰락은 98프랑스월드컵 이후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권불십년’이라는 고사성어가 브라질 축구라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단지 워낙 독보적인 아성을 쌓아온 터라 정상을 유지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었을 따름이다.



브라질 축구는 선수 개개인의 현란한 기술로 게임을 풀어가는 스타일을 지향한다. ‘볼을 제압하려 드는 게 아니라 볼을 친구처럼 대하며 즐긴다’는 브라질 기술축구의 힘은 실로 위대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그들만이 이런 ‘재간’을 구사할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인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한 것이 한계상황에 이르른 첫번째 원인이 되었다.

현대축구의 흐름은 포지션 파괴와 강한 압박을 골자로 하는 토털사커. 빠른 공수전환에 따른 스피드 전쟁에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다. 최종 공격수와 최종 수비수가 30m 안에서 그물망처럼 촘촘히 박혀 움직이는 플레이 방식이 자리잡았다. 따라서 체력과 기술을 겸비하지 않으면 전술이 꽃을 피우지 못한다. 흔히 얘기하는 포메이션도 공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수들의 위치에 지나지 않는다. 전원 공격과 전원 수비의 기치 아래 모두가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현대축구에서 힘과 기술을 겸비하지 않으면 반쪽 선수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동안 유럽은 토털사커를 구사하긴 했지만 힘과 기술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해 완성도가 떨어진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유럽축구는 최근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남미축구의 화려한 기술을 파워에 접목하면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프랑스의 ‘아트사커’가 바로 힘과 기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토털사커의 전형이다.

이제 남미의 기술, 유럽의 힘과 조직력이라는 양분법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프랑스의 경우 축구 스타일의 변화를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으로 착실히 수행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고 계단을 올라가듯 치밀한 계획을 세워 앞날을 준비하는 자세는 한국축구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오랜 정상의 자리에서 유유자적하며 도약의 기회를 놓친 브라질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프랑스가 최근 브라질을 제치고 세계축구의 정상에 올라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프랑스축구는 “98월드컵 우승 감독 에메 자케가 집을 짓고 나머지 인테리어는 현재 사령탑을 맡고 있는 로저 르메르가 마무리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002월드컵을 대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치밀한 계획 없이 임기응변식으로 감독 교체나 일삼는 브라질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도 ‘축구의 자존심’ 브라질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며 새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현재 남미 예선에서 단독 선두를 질주하는 아르헨티나는 독특한 축구 스타일로 변신했다. 브라질처럼 개인기 위주의 축구를 구사하다 유럽의 파워와 선이 굵은 플레이를 받아들여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현대축구는 유럽의 힘과 남미의 기술을 접목한 고도로 발전한 ‘퓨전 스타일’이 아니고서는 버텨내기 힘들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은 이번 ‘브라질 몰락’사태로 인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축구의 도도한 흐름에 뒤처졌다는 기술적인 원인 이외에, 최근 터져 나온 브라질 축구계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점도 슬럼프의 장기화를 예고한다. 선수 장악력이 떨어지는 지도자와 협회 행정력의 부재가 맞물리면서 브라질 축구의 몰락을 부채질한다는 분석이다. 개인기의 축구라는 브라질에서 개개인의 능력을 한데 모으는 지도자가 없다는 점이 가장 뼈아픈 부분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팀워크로 묶어내는 용병술은 축구 명가(名家)의 부활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난 94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이끈 페레이라 감독이나 98프랑스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자갈로 감독의 강한 통솔력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문제점이다. 게다가 이해관계에 따라 선수 선발을 좌지우지하는 브라질 축구협회의 전횡이 극에 달해 ‘삼바축구’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선수들의 정신자세도 풀어질 대로 풀어졌다. 어린 나이에 유럽 무대에 진출해 돈맛을 들인 터라 국가관이나 대표팀에 관한 자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스페인 세리에 A에서 뛰고 있는 히바우두나 호베르투·카를로스 등은 이중 국적을 취득하며 대표팀보다 소속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붉은 꽃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달도 차면 기운다. 적어도 브라질 축구에는 먼 나라 남의 얘기처럼 들리던 얘기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때 ‘아시아 최강’이라는 평가에 안주하다 일본에까지 밀린 한국축구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브라질의 사례는 또 하나의 뼈아픈 자극이다.



주간동아 2001.07.19 293호 (p72~73)

< 고진현/ 스포츠서울 축구팀 기자 >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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