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8

2001.06.14

‘WWW’는 가라 ‘그리드’가 온다

차세대 인터넷 연결 방식… 동시에 여러 곳과 연결, DB·첨단장비도 공동 활용

  • < 유회경/ 문화일보 산업부 기자 > yoology@munhwa.co.kr

    입력2005-02-02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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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W’는 가라 ‘그리드’가 온다
    요즘 IT업계의 최대 화두는 ‘그리드’(GRID)다. 정보통신부가 ‘국가 그리드 기본계획’을 수립, 2002년부터 5년간 핵심 기술개발에 435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면서 그리드는 우리 생활 속으로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그리드는 차세대 인터넷 기반이다. 인터넷으로 컴퓨터를 연결, 슈퍼컴퓨터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평면의 인터넷 브라우저도 3차원 멀티미디어로 바꿔준다. 그러나 월드와이드웹을 대체한다는 그리드의 개념은 일반 네티즌에게 아직은 선뜻 와 닿지 않는다. 그리드가 상용화할 경우 인터넷 환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WWW’은 용도 폐기하는 것일까.

    격자(格子)라는 영어 단어에서 유래한 그리드는 인터넷 확산에 공헌한 월드와이드웹(WWW)보다 더욱 발전한 인터넷 연결방식이다. 한 번에 한 곳에만 연결할 수 있는 WWW과 달리 신경조직처럼 작동하는 정보통신 서비스망이다. 뇌가 신경을 통해 몸 속 각 장기들의 정보를 모으고 다시 각 장기들에 명령을 내리듯, 그리드는 컴퓨터에 특정 소프트웨어를 설치해 세계 곳곳의 컴퓨터, 데이터베이스(DB), 첨단장비 등을 서로 연결해 개인 컴퓨터로 원격 조정할 수 있게 해준다.

    연결방식 또한 WWW과는 판이하다. 현재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담는 서버(인터넷 사이트)에서 인터넷 이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받아보는 수직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이 사이트에서 저 사이트로 쉽게 옮겨 다니며 여러 정보를 수집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여러 사이트와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리드는 인터넷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들과 수평적으로 직접 연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동시에 여러 곳에 연결할 수 있다. 인근 지역의 동료와 연결한 어느 인터넷 이용자가 동시에 지구 반대쪽 컴퓨터의 DB에 연결,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DB에서 찾은 정보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면서 한 사람의 설명을 듣거나 함께 설계도면을 그리는 일도 가능해진다. 아울러 한 컴퓨터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를 원격 조정해 복잡한 계산을 쪼개서 시킨 뒤에 다시 합쳐 결과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WWW’는 가라 ‘그리드’가 온다
    일례로 그리드가 상용화하면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PC로 포항공대의 광입자가속기를 동작해 얻은 각종 수치를 대전 대덕단지의 슈퍼컴퓨터로 보내 연산하고 그 결과를 다시 PC로 받아보며 연구할 수 있다. 그리드의 창시자인 이안 포스터 시카고대 교수는 “그리드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형태의 단일 자원만 이용하는 WWW과 달리 여러 형태의 데이터베이스(DB), 첨단장비를 공동 활용할 수 있는 정보통신 서비스”라 설명하고 있다. 그리드는 인터넷의 ‘공유개념’이 최고로 발현된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드가 상용화하더라도 현재의 WWW과 그리드는 상당기간 공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퍼, FTP 등 인터넷 초기 서비스들이 WWW이 등장하면서 웹 기반으로 수렴된 것과 마찬가지로 WWW도 좀더 진화한 그리드 기반에서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그리드 구축계획은 지난해 98년 처음 등장했다. 현재 미국·유럽·일본 등의 선진국은 2004년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슈퍼컴퓨터센터 및 정부출연 연구소를 중심으로 1998년부터 인간게놈지도 작성 사업, 항공기 통합 설계작업, 지진 예측분석 사업 등 다양한 그리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 각국의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연구시험망(155 Mbps)인 ‘`TEN-155’ 기반의 유로피언 데이터 그리드(기초과학 연구지원 사업), 유로 그리드(산업기술 연구지원 사업) 등을 1999년부터 활발하게 추진하였으며 일본도 오는 2006년까지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분자물리연구소(CERN)의 입자가속기와 연동해 고에너지 물리학 연구를 수행하는 그리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각국이 이렇게 그리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첨단 기초과학 연구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정보기술·생명공학·환경공학·미세공학 등 첨단산업분야는 물론 반도체·자동차·철강·기계 등 기존 산업에 그리드를 응용하면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드를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도 경쟁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에서도 벌써부터 현실감 있고 구동속도가 빠른 그리드 기반의 온라인 게임, 과학 연구를 위한 오픈넷 사업 등 그리드 활용계획이 나오고 있다. 그리드의 상용화가 본격화하면 이러한 움직임은 좀더 가속화할 것이다. 데이비드 세인즈버리 영국 과학혁신부 장관은 “그리드는 전자교육(eEducation), 전자과학(eScience), 전자산업(eIndustry), 전자상거래(eBusiness) 등의 기반이 되는 신정보통신 사회간접자본(SOC)”이라 평가하고 있다.

    앞으로 고성능 컴퓨터와 고가의 계측장비를 공동 활용할 수 있는 그리드 네트워크를 완성하면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생명공학(BT), 환경공학(ET), 정보기술(IT), 나노기술(NT) 분야의 각종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수행될 것이라고 정통부는 설명했다. 정통부는 이달 중 기획예산처와 협의를 거쳐 예산을 확보하고 올해 하반기 ‘그리드 포럼 코리아’를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중 그리드 관련 연구개발 및 표준화가 추진되면 내년 하반기부터 그리드 네트워크 구성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정통부 관계자는 “미국은 지난해 가상공간의 공동연구를 통해 2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절감했다”면서 “이러한 시스템을 국내에 적용할 경우 연간 2000억 원의 비용 절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정통부에 따르면 그리드는 크게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인터넷 기반의 고성능 정보통신망인 ‘그리드 네트워크’, 고속연산 능력을 갖춘 ‘고성능 컴퓨터’, 실제적인 산출물을 도출하는 ‘차세대 응용과제’ ‘과학전문인력’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요소를 적절히 결합해 최적의 인터넷 환경을 조성하는 게 그리드 계획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 나라에는 고성능 컴퓨터가 50여 대 설치되어 있다. 이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활용률은 40~80%에 지나지 않지만 그리드 네트워크 구성으로 CPU 활용률을 70~95%로 향상시키면 연간 100억~300억 원을 절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통부는 그리드 계획 중 3차원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구현할 수 있는 브라우저의 개발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황일선 실장에 따르면 현재 미국·유럽·일본 등의 선진국도 그리드 개발작업과 관련,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가는 단계다. 한국은 출발점을 막 벗어난 수준이다. 그렇다면 그리드는 언제쯤 일반인이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 황실장은 “2004년쯤 그리드를 활용한 각 분야의 연구 프로젝트 결과물, 비즈니스 모델, 네트워크 구축이 일정궤도에 오르면 이러한 그리드 환경이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응용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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