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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장거리 비행 자주 하면 뇌 작아진다?

시차로 인한 생체시계 뒤죽박죽… 승무원들 정상인보다 수축 기억력 감퇴

장거리 비행 자주 하면 뇌 작아진다?

장거리 비행 자주 하면 뇌 작아진다?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유럽이나 미주 대륙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에 가슴 부푼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휴가를 떠나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지 시간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활동해야 할 낮에는 졸리고 피곤하며 밤이 되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인다. 쉽게 피로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머리가 아프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체 내부에 있는 생체시계가 바깥 세상의 물리적 시간과 일치하지 않아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시차’(jet lag)다. 같은 장거리 비행이라도 대양주나 동남아 방향으로 가는 남북방향의 비행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시차가 없거나 있다 해도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비행기 여행이 주는 피로감은 시차뿐만이 아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탑승해서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장거리 비행은 승객과 승무원의 건강에 여러 가지 나쁜 영향을 끼친다. 특히 장거리 비행은 혈액이 엉기는 폐색전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코노미 클래스 신드롬’(상자 기사 참조)은 꾸준하게 지적되어 온 사실이다.

일주일 이상 휴식해야 시차 극복

최근 영국의 한국인 과학자 조광욱 박사(브리스틀 대학교)가 반복하는 장거리 비행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논문을 ‘저널 오브 뉴러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흥미롭게도 이 연구는 장거리 비행을 많이 한 사람의 뇌 일부분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구 결과는 ‘뉴사이언티스트’를 비롯한 국내외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되었다.



조사를 위해 조광욱 박사는 국제선에서 일하는 여승무원 20명의 두뇌 사진을 촬영하였다. 장거리 노선에서 5년간 근무한 승무원들의 경우, 뇌의 대뇌피질과 해마(hippocampus) 부분이 정상인보다 수축해 있었다. 바다생물인 ‘해마’와 비슷한 모양으로 생긴 이것은 학습과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뇌 기관의 하나다. 해마를 자극하면 창의력과 기억력이 좋아져 학습효과가 높아진다고 한다. 뇌과학 전문가에 따르면 해마는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는 아니지만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영역이다. 이 부분을 자극하면 짧은 순간에 오랫동안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7시간 이상의 시차가 나는 비행을 한 후 시차를 완전히 극복하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의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항공사 승무원들은 불과 2~4일을 쉰 후 다시 장거리 비행에 투입된다. 실험결과에 의하면 5일 동안 쉰 승무원의 대뇌피질은 2주를 쉰 승무원의 뇌보다 뚜렷하게 수축해 있었다. 이 결과는 장거리 비행을 반복하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와 비슷한 연구 결과가 지난해에 발표된 적이 있었다. 장거리 비행기에서 수년간 일한 여승무원들이 단기적인 기억력 감퇴를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항공사의 국제선에서 근무하는 62명의 여승무원을 실험 대상으로 한 이 연구는 장거리 노선에서 근무한 여성이 단거리 노선 또는 지상근무 여직원보다 단기적인 기억력이 감퇴하고 반응시간이 더 길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장거리 비행을 한 승무원은 실험에서 실수하는 수치가 약 9% 높았다.

장거리 비행 자주 하면 뇌 작아진다?
시차는 인간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의 몸에는 ‘생체시계’가 있다. 시간대를 넘나드는 여행객의 생체시계는 바깥의 물리적인 시간대에 계속 주인의 몸을 적응시킨다. 두 가지 시간대가 완전히 일치할 때까지. 그러나 장거리 비행을 반복하는 승무원의 경우는 이처럼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 두 개의 시계 시스템이 일치할 즈음 다시 시간대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생체시계는 어디에 자신의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거리 비행을 반복하면 생리적·정신의학적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가 커진다.

장거리 비행이 주는 스트레스 역시 단순히 심리적 문제가 아니다.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은 스트레스와 관련이 깊다. 이 호르몬은 아침에 최대치에 이르렀다가 밤중에 최저치로 떨어진다. 체내의 코르티솔 농도가 높다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처 시차에 적응할 여유 없이 계속 장거리 비행을 하는 승무원들의 몸에서는 계속 코르티솔을 분비한다. 신체가 밤낮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기 장·단거리 노선에 투입되는 승무원과 지상근무 직원의 침에서 코르티솔의 농도를 측정한 결과, 장거리 노선 승무원의 코르티솔 농도는 지상근무 직원보다 3분의 1 정도 더 높았다. 이에 비해 단거리 노선의 승무원은 지상근무 직원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자오선을 넘나드는 비행은 여승무원의 배란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장거리 비행을 하는 여승무원의 3분의 1 가량이 월경불순을 경험하였다.

국제선에서 근무하는 20명의 여승무원의 두뇌사진을 통해 얻은 이번 연구 결과는 항공사의 반대로 구체적인 항공사 이름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이코노미 클래스 신드롬이나 조광욱 박사의 조사가 말하는 공통점은 ‘장거리 비행은 인체에 여러 가지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영향의 정도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한층 심각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비행기 탑승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시간대를 넘나들지 않더라도 야간근무나 교대근무 등으로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들 역시 비슷한 위험에 노출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좀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1.06.14 288호 (p57~57)

  • < 이 식 / 과학칼럼니스트·이학박사 > honeysik@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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