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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계’ 상도동 전철 밟나

정풍 회오리 속 위기감 고조… ‘DJ 마지막 기댈 언덕’ 되자는 결의도

‘동교동계’ 상도동 전철 밟나

‘동교동계’ 상도동 전철 밟나
민주당 내 동교동계 인사들은 요즘 말이 없다. 재선 출신의 한 인사는 “유구무언”이라고 말한다. 정풍운동은 여권과 동교동 주변에 변화의 폭풍을 몰고 왔다. 그 폭풍의 한가운데에는 세력재편의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정동영 최고위원과 소장파의 등장은 눈에 띌 정도로 두드러진다. 반면 동교동계는 이번 파동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수십 년 동지들의 신뢰와 믿음이 상처를 입었다. 위기감을 느낀 동교동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동교동계는 DJ 정권을 탄생시킨 주체세력이다. 동교동계에 부여된 권위와 카리스마는 정권을 탄생시킨 데 대한 훈장이자 자랑이었다. 소장파는 그 훈장을 짓밟았다. 당연히 동교동 정서가 좋을 리 없다. 동교동 출신 한 인사는 “무엇보다 국정농단 세력으로 몰려 개혁 대상으로 몰린 점이 뼈아프다”고 말한다. “지난해 정동영 최고위원의 권고문 2선 퇴진 발언과는 또 다른 충격”이라는 것이 이 인사의 소감이다. 그는 “앞으로 동교동계 내부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우선 동교동계 내부에 균열 현상이 엿보인다. 이전부터 감지한 분위기지만 정풍파동을 거치며 보다 확연해졌다. 안동선 최고위원 정균환 특보단장 이훈평 김방림 의원 등은 정면 대결론을 들고 나왔다. 이른바 사수대역을 수행한 것이다. 반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인사도 간혹 눈에 띄었다. “심정적으로 동교동을 지원했다”(동교동계 출신 재선의원)고 말하지만 옆에서 지켜본 이 인사의 입장은 관망에 가까웠다. 반대로 정풍 운동에 가세해 동교동계를 코너로 몬 인사들도 있다. 비서 출신인 이윤수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비선척결’을 주장하며 권고문을 겨냥했다. 정동채 추미애 의원 등 동교동과 가깝게 지낸 의원들의 정풍운동 가세도 동교동 인사들에게 큰 부담을 안겼다.

특히 “DJ가 어려운데도 청와대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한화갑 최고위원의 발언은 동교동 내부의 복잡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볼 수 있다. 한최고위원의 발언은 동교동 구파 출신의 청와대 비서진을 겨냥한 것이다. 자신의 발언은 곧장 ‘양갑(兩甲) 싸움’이라는 파워게임으로 비화하기 십상이라는 점에서, 발언을 극도로 자제한 한최고위원이었다. 한최고위원이 최근 청와대를 다녀온 것을 두고 그의 발언에 김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동교동계는 상도동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동교동은 다르다”며 동교동 우위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으로 보면 동교동이 상도동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기 어려울 듯하다. 권노갑 고문의 한 측근은 “결국 상도동 반면교사론까지 거론한 우리 역시 한계점에 도달한 느낌”이라고 토로한다. 왜 그럴까. 그는 동교동의 분화가 “사람과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 갖는 본질이자 속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난 97년 신한국당 경선 때 상도동의 몰락 과정을 지켜본 상도동 한 고위관계자의 설명도 비슷하다. “상황은 다르지만 임기 말 느슨해진 구심력에서 파생한 누수현상이란 점에서는 비슷하다. 아마도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할 것이다. 사자가 위엄을 갖추고 포즈를 취하면 덤비는 동물이 없지만 앓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누구나 덤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 인사는 몇 가지 근거를 제시하며 ‘동교동 몰락’의 가능성을 보다 구체화했다. 먼저 김대통령이 당을 통제할 효율적 수단이 없다는 것. 원래 집권자는 공천권을 비롯 당과 정부의 각종 인사권 정치자금 등으로 여당을 다스리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대통령은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쥐지 못하였다. 당연히 정치인들은 그런 대통령보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동교동은 물론 소속 의원들의 분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더구나 “김대통령이 국민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정치인들은 자기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게 이 인사의 주장이다.

동교동과 연이 두터운 한 야당인사는 “97년 상도동의 분열은 최형우 서석재 김덕룡 등 핵심 인사들의 욕심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동교동계의 위기는 밑으로부터 제기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 때문에 동교동의 분열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 인사는 “김대통령을 부정하며 ‘나는 김대통령과 가깝지 않다. 나는 동교동이 아니다’고 하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라고까지 전망한다. 지난 97년 비정한 권력의 속성을 먼저 경험한 한나라당 소속 한 인사는 “동교동을 덮은 먹구름은 필연적으로 김대통령의 후반기 통치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 김대통령의 후반기 통치구도의 핵심은 3당 연합을 통한 힘의 우위 확보, 김정일 답방 등과 관련한 남북카드, 경제 재건 등으로 집약된다. 이를 전면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세력이 동교동계다. 그런 동교동계가 무너진다면 김대통령은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당장 여권 내 대권 후보군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소장파 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놓고 대권 후보군 진영에서는 도상(圖上) 합종연횡이 한창이다. 더구나 대선 후보군에 대한 통제 관리역을 맡았던 권고문과 동교동계의 활동 중단이 현실화할 경우 대선 후보들이 조기에 자극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수도권 출신의 한 의원은 “김대통령에 호의적인 JP를 비롯해 민국당의 김윤환 대표나 YS 등도 의외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며 여권이 심혈을 기울인 이회창 포위론의 와해 가능성을 거론한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발걸음을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흐름 때문인지 내부의 자성 분위기도 있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동교동에 불어닥친 위기는 안이한 상환판단에서 비롯했다”고 진단한다. 이 인사는 “지난해 13인의 반란, 정동영 최고위원의 권노갑 2선퇴진 발언 등이 나왔을 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고 준비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충성만이 최고의 선이라는 동교동계 문화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동교동계지만 이번 사태를 외곽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한 인사의 지적도 비슷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 “DJ를 돕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선 것이 사실”이라는 동교동계 한 인사의 소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면 동교동계 특유의 조직력으로 난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힘의 논리에 기대를 거는 인사도 없지 않다. 한 인사는 “결국 김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할 사람은 우리밖에 더 있는가. 전시(대선)에 돌입하면 동교동계 만큼 몸을 던질 조직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정치는 조직’이라는 동교동적 시각의 일면이다. 동교동 인사들은 김대통령이 집권 말기 믿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부분 동의한다. 동교동계는 이를 자신들의 마지막 임무로 생각한다. 그러나 언덕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인다. 무엇보다 당장 동교동을 향해 다가오는 짙은 먹구름에 대한 대처방안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소장파가 국정쇄신의 깃발을 내건 지 10여 일, 동교동의 가슴앓이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1.06.14 288호 (p10~11)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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