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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분쟁 불씨는 ‘2개 국어 합의문’

한국어·중국어 별도 작성, 서로 해석 달라 … 남은 물량 수입키로 ‘울며 겨자 먹기’ 합의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마늘분쟁 불씨는 ‘2개 국어 합의문’

마늘분쟁 불씨는 ‘2개 국어 합의문’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불거진 한-중국 간의 ‘마늘전쟁’은 지난해 7월 중국산 마늘 수입 합의 당시 한국어와 중국어 합의서를 별도로 작성하는 바람에 사실상 정부가 자초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이하 외통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월23일 “당시 합의문이 애매모호하게 작성된데다 두 개의 합의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우리측은 한국어 합의문대로, 중국측은 중국어 합의문대로 해석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중국측 요구는 국제 통상 규범에 어긋난 억지 주장”이라는 그동안의 정부측 입장과 달리 정부 합의문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외통부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중국어 합의문에서 뉘앙스상의 차이가 있다 보니 중국측이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부분적이나마 중국측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합의서 해석상의 문제가 중요한 것은 이번 2차 마늘분쟁의 핵심이 바로 중국측이 요구하고 있는 3만2000t의 수입물량을 우리 정부가 전량 책임지고 수입해 줘야 하는 것이냐 아니냐는 ‘해석’상의 문제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외통부는 그동안 “최소 시장접근물량 (MMA) 1만2000t을 제외하고는 정부가 수입 의무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중국측은 “정부가 약속한 것이니 모두 사줘야 한다”며 우리 정부를 압박해 왔다.

‘영어 합의문 작성’ 관행 도외시

마늘분쟁 불씨는 ‘2개 국어 합의문’
원칙적으로 따지자면 MMA 물량은 WTO 규정에 따라 우리 정부가 국영무역 형태로 사들여야 하는 의무 수입량이지만 이를 제외한 관세할당(Tarrif Quota) 물량은 일종의 최고 한도(ceiling) 개념으로, 정부가 이 물량에 대한 수입 의무를 갖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해 1차 마늘분쟁 종료를 위한 합의에서 관세할당(TQ)물량에 대해 ‘민간이 수입하도록 한다’고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MMA 물량 1만2000t을 포함한 3만2000t 전량을 수입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다면 합의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해 왔다.



정부는 이러한 과정에서 지난해 한국어와 중국어 합의문을 별도로 작성해 오해를 초래했던 잘못을 인정해 지난 4월21일 북경에서 타결한 2차 합의문은 영어로 작성했다. 통상법이나 국제 거래 전문가들도 1차 합의 당시 정부가 양측을 모두 이해시키고 구속할 수 있는 영어 합의문을 작성하지 않은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합의문 해석상의 논란과 관련해 중국 베이징대학을 수료한 법무법인 태평양 김종길 변호사는 “한국어로 된 계약서를 중국어로 똑같이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 뒤 “대규모 한`-`중 무역의 경우 영어 문건을 기준으로 삼거나 영어와 중국어 계약서를 만들어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영어본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여태까지 한`-`중 간의 통상 협상 관련 문건은 모두 한국어와 중국어로 작성해 왔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측이 ‘중국과 비공개에 합의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지난해 7월 한`-`중 마늘 합의서의 내용은 대략 3가지 항목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번째 항목은 한`-`중 간에 합의한 수입 물량의 총량을 명시한 부분, 두 번째 항목은 이중 MMA 물량 1만2000t과 관세할당(TQ) 물량을 명시한 부분, 그리고 세 번째 항목은 ‘MMA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물량은 민간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수입한다’ 는 내용을 언급한 부분이다. 물론 이는 한글 합의문서이다. 이 한글 합의서에 따르면 당연히 우리 정부는 나머지 물량에 대한 수입 의무가 전혀 없다. 그러나 중국어 합의문 해석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정부 관계자의 말을 감안할 때 공개하지 않는 중국어 합의문에는 ‘정부의 약속’을 암시하거나 ‘정부의 의무’로 해석할 수 있는 해석상의 문구가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늘분쟁 불씨는 ‘2개 국어 합의문’
일부 통상 전문가와 농민단체들은 한`-`중 간 합의사항 내용 중 2만 t의 관세쿼터 물량을 정부가 수입하겠다고 약속한 바가 없는데도 2차 마늘분쟁이 불거진 이후 정부가 중국에 대해 지나친 저자세로 일관하는 점을 두고 ‘정부가 이면합의를 통해 중국측에 2만 t 수입을 약속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물론 지난해 합의서에 서명했던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면합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지난해 3만2000t 수입 합의 당시 이미 한`-`중 간에는 이 물량을 모두 수입해 주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해 정부가 대외적인 발표와 달리 이미 3만2000t 전량 수입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편 통상전문가들도 이번 합의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나타낸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통상법)는 “지금처럼 중국의 ‘떼쓰기식’ 요구에 끌려다니다 보면 앞으로의 대중국 통상협상에서도 불리한 상황을 초래할 것임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해 합의 이후 수입하지 않고 남은 마늘 1만300t을 오는 8월까지 수입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마늘값에 해당하는 73억원의 돈을 누가 낼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다. 추가 수입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온 외교통상부는 정작 마늘값 문제에 한해서만큼은 ‘우리가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또 농림부는 농림부대로 ‘농수산물 안정기금 사용은 절대 불가’라며 마늘 추가수입을 통해 이익을 보는 수혜자 집단에서 마늘값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휴대폰업체나 석유화학업계에서는 ‘마늘을 수입하는데 왜 우리가 돈을 내느냐’는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현재까지 정부의 입장은 ‘정부와 업계가 비용을 분담한다’는 수준. 이대로 가면 십중팔구 정부가 이익을 많이 내는 휴대폰 업계의 팔을 비틀어서 비용을 분담하도록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 지난해 7월 합의에 따르면 1차년도인 올해뿐만 아니라 2차년도인 내년에 3만3000여 t, 3차년도인 2003년에 3만5000여 t의 중국산 마늘을 추가수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그러잖아도 마늘 재고가 넘쳐나고 마늘 가격이 폭락하는 마당에 농산물 시장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결국 한번 단추를 잘못 낀 협상의 상처는 두고두고 남을 전망이다. 서울대 장승화 교수(통상법)는 “국제 규범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통상 현안을 풀게 될 경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뿐더러 나중에 제3국이 최혜국대우 위반을 문제삼을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주간동아 2001.05.03 282호 (p26~27)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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